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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omi Aug 31. 2021

아우디 대신 아반떼

쿨렁거리는 첫차를 보내고 새차를 샀다.

24만 킬로를 달린 01년산 이에프 소나타를 보냈다. 나의 첫차는 이모부에게 양도 받은 중고차였다.

서른살이 될 무렵 차를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양도받아 연수를 받고 몰게 된 차가 길버트였다. 길버트는 내 첫차의 애칭이다.

 그후 몇년의 시간이 지나 올해 새로운 차를 장만했다. 1년에 1천 킬로미터도 안 뛰는 동네 드라이버였던 나에게 차는 사치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빙의 기분을 느낀 뒤로 차없는 뚜벅이의 생활은  맛있는 메뉴를 발견했는데, 먹지 못하는 기분과도 유사한 상황이었다.  

거의 4개월 가량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고 차의 활용도가 낮은 나에게 적합한 모델이 뭘까 고르고, 중고차 사이트도 들어가서 여러 차를 봤다.

원래 길버트 이후 내가 바라던 차는 독일의 Au**디 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돈이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중소형 세단 현대차 아*떼였다.

차를 뽑기 위해 드린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서, 난 차를 꼭 바꿔야만 했다.

정기적으로 사이트에 들어가서 옵션을 추가해보고 차를 확인해보고 하던 노력은 가관이 아니었다.

아우디 홈페이지에서 인용

 

2개의 옵션만 넣어도 2천 만원이 훌쩍 넘는 차를 산다는 것은 집 만큼의 지출이 아니더라도 사실 큰 소비재는 맞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명품백 하나 없이 살아오고 고가의 브랜드는 지양하는 나에게 사치재에 속하는 자동차를 구매한다는 것은 엄청난 결정이었다.

 

 더군다나 교통 체증이 매우 심한 서울에 살면서 일주일에 얼마나 차를 몰게 될지도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차는 긴급한 상황 혹은 가정에 1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남자가 없어, 종종 장거리를 가야 하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할 때면 운전의 필요성이 새삼 느껴졌다. 그리고,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혹은 쇼핑백을 잔뜩 들고 버스를 타는 것보다 내 차에 짐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묘한 설렘을 느껴본 뒤로 중고차라도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비용을 고려하여, 또다시 1천 만원 미만의 그럴싸한 중고차를 장만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주변 어른들은  "중고 물건을 갖게 되면 당신의 인생도 중고 인생이 된다"는 얘기를 하며 새 차를 꼭 뽑으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 부터인가 내 인생은 누군가를 대체하는 일이 많아지며 대체재가 되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여 중고 인생은 되고 싶지 않고 나만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좋은 차 하나를 뽑고자 했다.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하다 급격한 노화를 맞은 길버트를 더 이상 커버하기 힘들어 폐차를 했다. 예상치 않은 폐차를 통해 고철값도 두둑히 챙겼다. 길버트가 폐차가 된 사진은 차마 마음이 아파 얻지 않았지만 차가 말소되었다는 증서를 보기만 해도 6년의 추억과 길버트에 태웠던 사람들과 순간 순간의 추억이 스쳐가며, 눈물을 흠쳤다.


 앞서 말했듯이 첫 차의 이름은 길버트였다. 그 이름인즉 소설 빨간머리 앤에서 나오는 앤의 첫사랑의 이름에서 따온 애칭이었다, 종종 운전을 하며 길버트를 부르곤 했다. 차 자체가 오래되어 언제부터인가는 끼익끼익 소리도 나고 하부가 녹슬고 약해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함을 안고 운전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내 초자 초보의 시절 든든한 노령 길버트가 잘 커버해줘서 초보딱지를 3년만에 뗄 수 있었던 거 같다.

아날로그 차다 보니 자동차에 아무런 센서가 없었고 없어 오로지 백미러와 룸미러에 의지해 운전을 했다. 그래서 내 운전은 매우 굼떴다. 내 몸보다도 무겁고 커다란 이 차를 끌고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있을 때 길버트와 발휘한 팀웍은 순간순간 짜릿한 기분을 주었다.

 

길버트로 인해 드라이버의 자격을 얻게 되었지만, 실상 평소에는 차를 몰지 못했다. 회사가 복잡한 강남권이기도 했고 하루 3만원 가량의 주차 비용을 내근직인 내가 감당하기엔 벅찼다,그리고 교통 체증을 겪을 바엔 그냥 마음 편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겨 졌다. 그렇게 차를 방치 하니 운전은 2주에 1번 혹은 1달에 1~2번 가량밖에 못했다.

 

 이게 문제였다. 차를 몰지 않아, 스트레스는 덜했지만, 차를 방치할수록 노화된 길버트는 더욱 급속도로 노화모드에 돌입하게 된 것이었다.나중에는 심지어 브레이크 페달이 완전 녹슬어버렸다. 물건을 아끼면 x가 된다는 말이 맞았다. 차는 적당히 몰아줘야지, 그냥 방치하게 되면 오히려 손해인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차를 얻었는데 차를 매입하는  과정에 들어 갔던 금액보다 더 많은 수리비가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고차를 통해 자동차를 하나 둘 배워갔다.


 국지성 호우로 전방 50미터도 잘 보이지 않는 올림픽 대로에서
와이퍼가 멈춰 앞이 보이지 않은 채로 운전해본적이 있는가?


  금속소음기가 터져서 오토바이 소리와 매연이 자욱한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려본 적이 있는가?
운전 중에 갑자기 백미러가 스스로 접히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브레이크를 밟는데 끼익끼익 쇳소리가 나고, 차가 덜컹덜컹 하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




 

길버트를 통해 난 매우 위험한 순간을 직면하기는 했지만, 그 아찔한 순간들을 직면하고 자동차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운전이 조금 익숙해진다고 생각될 무렵

차는 더 이상 몰면 안되는 수준으로 노쇠했고, 그렇게 새차를 맞이했다.

 

중소형 세단형의 자동차였지만, 공을 들이고 여러 번 비교하고 스스로 들인 노력이 있어서 그런가? 3개월 가량 걸쳐 양도 받은 새차를 처음 마주한 날의 그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교회 동생이자, 예전 셀원이기도 했던 지인을 통해 차를 계약하고 많은 부분에서 조언을 얻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센스있게 선틴을 해주고, 블랙박스며 시트까지 잘 구비해줬다.

아반떼 cn7 내부 인용 현대차 홈페이지

 

평소에는 1주일에 1번가량 몰던 차량을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서성거리고, 그렇게 차를 바라보다 느닷없이 차를 끌고 강남권 출근을 시도해보기도 했다.차를 몰고 가지 않는 날도 꼭 차키를 챙겨서 퇴근 후 집에 들어오기도 전에 차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기대하지도 않은 엄청난 설렘이 내게 찾아왔다.

길버트를 보내면서 눈물을 훔치고 작별을 고하던 내가 있기에 지금 얻게 된 그리즐리 (회색곰을 지칭하며,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의 맏형 곰 이름) 를 방치하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운전하게 된거 같다.


 


깜박이를 켜면 들리는 똑딱똑딱 소리도

핸드폰과 바로 연결되어, 플레이리스트를 바로 선곡할 수 있는 시스템도

차문을 잠그지 못하고 주차타워에 주차를 해두었는데 원격으로 차 문을 잠글 수 있는 신기한 기능도.. 무엇보다도 주행 중 타이어 공기압을 체킹할 수 있는 것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기하다.

 

그리고 구지 차로 가지 않아도 될 거리도, 차를 몰고 드라이빙을 즐기고 있는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거리가 생긴 것도 변화이다. 아마존 그레이 컬러의 이국적인 컬러로 종종 외제차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기분이 좋다.

 

비단, 새 차여서가 아니라, 수 년간의 시간 클래식한 차를 타며, 자동차에 대해 하나둘 고생하며 배워갔던 부분이 있어서 지금의 그리즐리가 더 특별하게 여겨지는 거 같다.

무엇보다 개처럼 벌어서 모은 목돈으로 한번에 현금 결제하여, 장만한 차라 더 애틋한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좁은 곳에서 난 여전히 주차는 못하고, 고속 도로에서 엑셀 밟기를 주저하는 사원말 대리초급의 운전자이지만, 그래도 내 차라는 공간의 소중함은 충분히 알겠다. 한평도 안되는 작은 차라는 공간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된다.

 

회색곰 그리즐리 grizzly

나에게 설렘을 주는 첫 새 차, 그리즐리로 인해 올해의 하반기는 특별했다. 뭐든 처음부터 너무 좋은 것을 얻게 되면 감사할 줄 모를텐데, 처음에 여러 고생을 해봤기에 지금의 환경이 감사한지 알게 되는 거 같다. 비단 차여서만이 아니라 사람도 회사도 마찬 가지인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는 항상 조심할 것. 안전 운전 할 것. 늘 방어 운전할 것. 남들이 빵빵 대도 내 페이스대로 갈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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