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

by 이상현


작은 마을에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간밤에 여자가 갓난아이를 둘러메고 산길 오르는 걸 본 사람이 있었다. 누렁이와 이웃집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 때문이었을까. 여자의 조심스러운 걸음을 지켜본 마을 아낙은 다음 날 마을 주민들에게 혀를 끌끌 차며 입을 놀리고 만다. 불이 붙는 발화점은 작은 지점의 부주의에 일어나듯 여자가 간밤에 산에 올라간 일은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만나면 여자의 안부를 묻는 듯 하지만, 사실 하나의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한 겹 한 겹 더해진 소문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가 마당 한가운데 서서 익숙한 풍경을 바라봤다. 어린 시절 내내 보던 익숙한 풍경. 익숙하다 못해 지겹다고 느껴져 하루라도 빨리 고향집을 떠날 수 있기만을 바라던 여자는 지겹고 익숙한 풍경이 실은 평화로운 세계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여자는 더 이상 고향집에 머물 수 없었다. 다시 이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여자는 마을 사람들의 저주에 걸려 낙인찍히듯 도망치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산을 오른 간밤의 일은 사실이었다. 여자만 아는 비밀을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 손가락질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엉킨 실타래의 매듭을 스스로 풀어낼 수 없던 여자는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싶었지만, 저주와 같은 낙인은 여자의 가슴 깊은 곳에 굳어져 버렸다.

고향을 떠난 여자가 돌아갈 곳은 없었다. 갓난아이를 안고 하염없이 걷던 여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마른하늘에 태양은 여전히 반짝이며 빛을 뿜어내고 있으며, 숲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목덜미를 간지럽게 감싸주었다. 고향집에서 바라본 하늘과 산과 숲이었다. 하늘에는 언제나 태양이 떠오르고 산에는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는 단순한 사실을 여자는 뒤늦게 깨달았다. 하늘과 태양과 산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쉬어가도 좋을 곳을 내어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여자가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잠시 앉아 쉬어갈 겸 갓난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향집에서 밤낮으로 울어대던 아이가 맞나 싶었다. 갓난아이는 여자의 손길이 닿으면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한숨이 나오던 여자도 갓난아이의 웃음에 피식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아기야. 우리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아기야, 네가 한 번 말 좀 해봐."

여자가 갓난아이의 이마와 코를 집게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갓난아이는 여자의 손가락을 잡으려고 손을 허공으로 쭈욱 올렸다. 여자가 한 숨을 다시 한번 내쉬었다.

"가자. 가보자. 아기야. 네 아빠한테 가보자. 너도 태어났는데 술 주정뱅이로 계속 살려고 하겠어. 그러면 안 되지. 마음 단단히 먹고 이제 가보자."

여자는 처음으로 갓난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갓난아이를 단단히 고쳐 멘 여자는 힘 있는 걸음으로 산길을 내려와 주정뱅이 남편이 있는 도시로 떠났다.


여자가 남편과 머물렀던 집에 도착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방에는 빈술병만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당장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해도 될 처참한 광경이었다. 방에 걸린 거울은 둥그렇게 깨져 반이나 주저앉았고 가구들은 전부 부러지거나 경첩째 떨어져 있었다. 여자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등에 업은 갓난아이는 가슴 안쪽으로 당겨 안았다. 여자는 집 안 상태를 보고 경악해 남편이라는 작자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여자가 집 밖으로 나가려고 까치발을 하고 마당을 가로질러 걷는데, 대문이 쾅하고 열렸다. 한 손에 술 병을 들고 나타난 남편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더벅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의 몰골은 짐승 같았다. 남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해 여자는 짐승처럼 달려들어 갈기갈기 물어뜯겨 죽음으로 내몰리는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남편이라는 작자는 거칠게 내쉬던 숨을 고르다 손에 든 술병을 마당 한가운데로 던지고는 여자에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돌아왔구나. 이년이, 갈 곳이 여기밖에 없을 줄 알았다. 너 돌아왔다고 마을 입구에서부터 소문이 파다하게 났더라."

여자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갓난아이만 꼭 끌어안을 뿐이었다. 남편이 씩 웃으며 한 발 한 발 다가왔다. 여자는 뒷걸음질 쳤지만, 뒤에는 시멘트 벽이 여자를 막았다.

"아이는?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하고 눈 맞아서, 이제 딴살림 차리다가 아이까지 데리고 돌아왔어?"

여자는 어느새 두려움은 잊고 되려 남편을 쏘아보았다.

"니 아이다. 니 새끼란 말이다. 입 뚫려 있다고 말 함부로 하지 마! 니 새끼 아홉 달 내 배속에 있을 때 넌 술만 퍼 마셨지 한 게 머가 있어?"

여자가 악다구니를 하며 남편을 쏘아보았다. 그제야 남편은 갓난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마치 처음 본 사내아이처럼 갓난아이를 좋아했다. 자신의 자식 이라며. 하지만 남편의 술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막일을 하며 술을 마셔 화근을 불러 사고를 일으킨 남편은 불구자가 됐다. 동네에서 여자는 남편 잡아먹는 귀신같은 여자로 소문이 났다. 여자는 어디에도 마음 주지 못하고 하나뿐인 자식, 사내아이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아이는 해마다 자라지만 여자는 아이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밖에서는 남편 잡아먹은 귀신같은 여자고 집에 돌아오면 불구인 남편의 술주정을 받아내야 했다. 여자는 피폐해져 갔다. 한 밤중 마당에 서서 달을 올려다보면 노랗게 보이지 않았다. 달은 노랗지 않고 붉게 물들어 퍼져 보였다. 여자의 눈에 달은 붉은 피가 서서히 일렁이며 퍼지듯 보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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