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by 이상현


여자는 무너진 나무 조각들을 하나씩 치워나갔다. 괴인은 정신을 잃지는 않아 고개를 돌려 자신의 다리에 깔린 나무 조각을 치우는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부러진 나무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던져 장작더미 같은 잔해 속에서 괴인의 몸을 빼냈다. 나무 계단이 썩고 메말라 생각보다 괴인의 부상은 심해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급한 대로 이불보를 찢어 괴인의 다리에 붕대를 감아 응급처치를 했다. 하지만 괴인은 어딘가에 심하게 부상을 입었는지 연신 미간을 찡그렸다. 괴인은 여자에게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여자도 괴인에게 아들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여자와 괴인은 그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주변의 공기가 팽창하며 고요와 적막의 어느 지점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남자가 한 손으로 팔꿈치를 부여잡고 절뚝이며 여자를 찾았다.

"엄마, 엄마. 여기 좀 봐봐."

"응. 기다려. 어디, 얼마나 다쳤는지 보자."

여자가 몸을 돌려 남자를 찾았다. 그 사이 괴인은 무너진 나무 조각들 사이에서 기다란 작대기 하나를 찾아 목발 삼아 걷고 있었다. 딱, 딱, 딱...... 땅이 갈라지는듯한 목발 끄는 소리에 여자의 시선이 괴인에게 향했다.

"이봐요. 그 몸으로 지금 어디를 가려고 하는 거예요?"

괴인이 현관 앞에 우뚝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여자와 남자를 말없이 쳐다봤다. 여자는 남자의 몸을 살피면서 다시 괴인을 응시했다.

"이봐요. 말 못 해요? 그 몸으로 지금 밖으로 나가 쓰러지면 얼어 죽어요. 우린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잠자코 집에 있어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모르겠네......"

여자가 괴인을 부축해 자리에 눕혔다. 얼굴의 반이 수염으로 가득한 괴인. 어두컴컴한 곳에서 보면 괴수 같아 보이지만, 괴인의 몸은 깡말라 가볍고 눈은 맑게 빛을 머금고 있었다. 여자는 괴인을 부축하다 괴인의 맑은 눈빛에 놀라 내동댕이치듯 내려놓고 말았다. 괴인은 부상당한 부위에 통증이 있는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움찔했다. 여자도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주정뱅이 남편에게 매 맞던 여자였기에 실수로 내동댕이 쳐진 괴인이 화를 낼 줄 알았다. 하지만 괴인은 모로 누워 아무 말도 없었다. 여자는 멍하니 괴인을 쳐다보다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여전히 괴인은 누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모로 누운 괴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당신에게 누를 끼쳤어요. 그리고 제 아들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괴인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여자는 괴인의 깡마른 몸이 안쓰러웠다. 혼자서 이 집에서 얼마나 지낸 걸까. 나무 계단이 썩고 무너질 정도로 방치할 정도면 정상적인 생활을 못했다는 거겠지. 하긴 수염이고 장발이 저런데...... 여자가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괴인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거대하기만 하던 존재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고립된 존재.

여자는 소문이 무성하던 자신이 도망치려 해 도달한 곳은 어디일지 매일 생각해 봤지만, 정확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여자가 찾으려는 답이 저기 누워 있는 괴인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자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여자는 괴인이 부상당한 곳을 치료해 주었다. 붕대를 감아주고 약을 지어다 먹였다. 처음에 괴인은 여자의 모든 손길을 거부했다. 말을 하지 않았기에 괴인은 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는 식으로 여자의 치료를 거부했다. 하지만 여자는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이 집에서 떠나더라도 괴인을 치료해 주고 나가기로 마음먹은 여자였다. 여자는 붕대를 새로 감아주고 약을 물에 개어 괴인의 입에 수저로 떠 넣어주었다. 괴인을 간호하는 일은 주정뱅이 남편을 감당하는 일보다 어렵진 않았다. 아이를 달래는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치료를 거부하던 괴인이지만, 남자가 다가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눈을 뜨고 지긋이 바라보며 약을 받아먹었다. 남자가 괴인 주변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여자는 그런 남자와 괴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괴인의 부상당한 부위를 여자가 손으로 슬며시 만졌지만, 괴인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제 괴인은 목발 없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괴인은 여전히 말은 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런 괴인의 뒤를 강아지처럼 따라다녔다. 아버지를 찾지 않는 아이가 괴인을 따라다니는 모습에 여자는 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괴인의 치료도 끝나고 날씨마저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제 이 집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몇 벌의 옷과 가방을 챙겨 남자를 찾았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동거였다. 괴인의 집에서 괴인과 여자와 남자는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이상한 친밀감을 느끼며 지냈다. 괴인은 괴인이 아니었다. 괴인은 더군다나 괴수도 아니었다. 그저 남자와 눈빛으로 친밀감을 교환하는 말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알 수 없는 사람이구나. 여자는 남자를 찾았다. 남자는 괴인과 방 안에서 같이 누워 있었다. 여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남자를 불렀다.

"가자. 우리 이제 이 집에서 나가야 해. 아저씨한테 인사하고 가자."

"응? 엄마. 우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우리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돼요? 아저씨 하고 같이 살면 안 돼요?"

여자가 남자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끌었다.

"안돼. 우리는 이제 떠나야 해. 여기는 아저씨 집이야. 아저씨한테 인사해."

"난 안 갈 거예요. 여기서 살 거예요. 아저씨 하고 살래요."

그때 누워있던 괴인이 천천히 일어나 여자와 남자에게 다가갔다. 맑은 눈에서 빛을 뿜으며 여자와 남자를 쳐다보더니 동굴 속에서 울리는듯한 어눌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머물다....... 가요......"

"네? 지금 말을 한 거예요? 말을 할 수 있었네요."

여자는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을 바닥에 놓치고 말았다. 남자는 괴인에게 다가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뒤로 끌었다.

"엄마, 여기서 살아요. 아저씨도 같이 있자고 하잖아요."

괴인이 손을 들어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처음 괴인을 보고 겁을 집어 먹었던 여자는 이제 눈앞의 괴인을 피하지 않았다. 여자는 괴인의 맑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괴인도 여자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조금 더, 여기...... 머물러요......"

또박또박 얘기를 하려는 괴인의 말이 갓난아이의 옹알이처럼 들려 여자는 미소 짓고 말았다. 고향을 떠나오고 난 뒤 몇 년 만에 보이는 여자의 미소였다. 동시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박복한 년이 이보다 더 박복할 수 있을라고. 여자는 갓난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괴인의 팔을 잡아 다독였다. 그 사이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식사부터 해요."

여자는 스스로도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조금 더 이 집에 머물러도 괜찮다고 괴인의 맑은 눈이 말해주는 듯 반짝이며 빛났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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