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더 이상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았다. 가끔 잠이 들 때면 여자를 괴롭히던 악몽도 차츰 줄어들었다. 하늘이 반으로 쪼개져 무너지고 손가락질받으며 쫓기던 악몽. 언젠가 악몽을 꾼 여자는 꿈과 현실을 분간할 수 없는 경계에 다다른 적도 있었다. 현실이 악몽과 다를게 뭐가 있나 싶으면서 쓴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고단함에 쭈그려 앉아 단잠에 빠지면 영영 깨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여자가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와 나란히 누워 편안한 잠에 이르는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자라면서 이목구비가 주정뱅이 남편을 닮아갔다. 핏줄은 못 속이는 걸까. 이목구비뿐 아니라 걷는 자세와 종종 여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말투도 닮아있었다. 그래서 가끔씩 잠에 취한 여자는 창너머 햇살 위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주정뱅이 남편의 모습으로 착각한 적도 있었다. 여자는 눈앞에서 비죽이 웃는 남자의 얼굴을 손으로 밀치며 덩달아 웃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버지를 찾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미안함보다는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아침마다 남자는 괴인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제 아버지를 찾듯이. 괴인도 아버지는 아니지만 남자의 아버지 같았다. 어쩌면 괴인은 누군가의 아버지로 지냈는지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의 남편으로. 이윽고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을 괴인의 모습이 여자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자는 괴인의 수염과 어깨까지 오는 장발을 잘라주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햇살만 가득한 날이었다. 봄의 기운이 세상에 만발하고 있었다. 한사코 거부하던 괴인을 의자에 앉혀 면도를 하고 이발을 하기 시작했다. 말끔해진 거울 속 사내가 우수에 찬 눈빛으로 여자와 남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사내가 괴인이었던 사람이 맞나 싶은지 놀랐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사내의 장발을 마저 잘랐다. 사내는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다 회한이 따라오는지 쓸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머리를 자르고 털고 다시 자르길 반복했다. 사내의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털어내자 바닥에 수북이 쌓여갔다. 남자는 머리를 자른 사내가 신기한 듯 사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저씨, 머리가 엄청 짧아졌어요. 그런데 왼쪽보다 오른쪽 부분이 더 길어요."
"그래. 어떤 거 같아? 아저씨 하고 같이 이발할까?"
"나는 머리 안 자를 거예요."
남자는 비명을 내지르듯 말하며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사내도 남자를 쫓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평생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가슴이 무언가에 콕 찌르듯 찌릿했지만,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달콤한 기분마저 들었다. 맑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여자는 피붙이 보다 못한 가족보다 오히려 사내가 더욱 가족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