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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Feb 24. 2017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기억.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자정이 넘었습니다. 창 밖에는 구름에 반쯤 걸린 달이 눈이 내린 세상을 차갑게 비추고 있습니다. 깊은 밤, 이 시간에 누군가와 대화가 하고 싶어 졌습니다. 눈이 오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한 밤중에 어떤 말을 해야 마음이 서늘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대화 상대도 또 말을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당신에게 써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우리는 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편하게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스스로를 좀 특별하게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 저의 기억들 때문일 겁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여기고 있는 제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 그 기억들을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는 않겠지요?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실은 이른 저녁을 먹고 영화를 한편 봤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들어는 봤는지요? 아니 이 영화 보았습니까? 몇 해전 여름, 태양이 무섭게 내리쬐는 어느 날 이 달달 할 것만 같은 영화를 끈적이는 땀을 흘리며 보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기다리고 기다려 겨울의 한파가 몰아치는 바람 부는 저녁에 보았습니다. 영화는 제 마음을 뜨겁게 아프게 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문제아 소년과 공부 잘하는 예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학창 시절의 두 소년과 소녀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소녀를 보며 각자의 행복한 추억으로 남은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저의 젊은 날의 연애를 소비하게 만들었습니다. 평소 영화를 보면 사랑에 관한 한 새드 엔딩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슬픔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그리고 세상 모든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봅니다. 슬픔 속의 소중함은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안타까움의 하나가 아닐까요? 

 다른 사람들도 있는 추억, 저의 기억. 추억이라고 붙여야 하는 저의 기억을 부정한다면 지금의 제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제 그때의 기억은 기억으로 남지만 헤어지길 잘 했다는 생각인데, 행복하지 말기를 하는 못난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듭니다. 내 마음이 아프니까, 아픈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행복하게 지낸다는 건 상대방을 속이기도 하면서 기만하는 행동이겠지요? 정리가 되지 않는 생각들이 글로 조금밖에 써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써 내려오니 가슴이 조금은 진정되면서 맥이 풀려버립니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군요. 저요. 당신에게 글을 써보니 노력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유리로 된 가슴을 가진 제가 할 수 있는 건 글을 써 내려가는 저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따뜻할 수 있는 겨울을, 하얀 눈이 가로등에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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