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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Mar 05. 2017

그리움을 알게 된 날.

첫사랑,  그리고 어머니.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밤, 창 밖을 내다봅니다. 낮게 깔린 바람 사이로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의 엔진 소리가 가로등의  불빛을 가르고  있습니다. 그 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잠을 청하기엔 이 시간의 고요함이 너무 달콤합니다. 괜히 집안을 서성거리다 티브이를 틀어 케이블 영화에 채널을 맞춰봅니다. 예전에 극장에서 상영했던, 한번 보았던 영화들이 나와 곧 싫증을 느끼고 마는 저는 문득 어린 시절의 단상이 떠오릅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 하지만 어려웠다고 느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저는 방 한 칸에 가족이 누워 하루를 마치고 잠을 자는 게 행복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던 그 무렵의 일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 저는 다른 가족과 극장에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 극장에서 우뢰매나 태권브이를 보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떼를 썼을 겁니다. 그러던 찰나,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녀석의 가족과 극장에 가게 된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극장 가는 길 내내 들떠 있던 저는 극장 앞에서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나와 사람들에게 보이는 많지 않은 돈을 봅니다. 창피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저는 두 입술을 꼭 다물고 말았습니다.


우뢰매였던가. 그때의 한 시간 조금 넘는 상영 시간. 주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상영관의 좌석에는 어른이 없었습니다. 또래의 아이들만이 가득 찬 상영관에서 우뢰매가 하늘을 날아다녀도 저는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상영시간 내내 어머니를 찾았던 저는 그리움을 알았습니다. 우습지 않나요? 그토록 바라던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보며 그리움을 느꼈다는 것.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극장이 어디에 있었는지, 극장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렇게 제 첫사랑은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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