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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Jul 15. 2018

종이달. (紙の月, Pale Moo, 2014)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

출연 미야자와 리에, 이케마츠 소스케, 오오시마 유코, 다나베 세이치, 고바야시 사토미 등등.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았던 영화 종이달. 포스터를 보며 왜 종이 달이 제목일까 궁금증을 자아냈던 영화다.  


평범한 주부의 거액 횡령 사건. 영화는 오프닝에서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자리 잡은 타국의 아이 사진과 돈, 그리고 그 돈과 사진을 바라보는 한 여학생을 보여준다. 모든 것의 시작은 이때부터였다고 생각 든다. 


1994년, 평범한 주부 '리카(미야자와 리에)'의 일상은 단조로움을 넘어서 권태롭기까지 하다. 파트타임이었던 은행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고 남편과는 큰 문제없이 지낸다. 하지만 리카의 내면에는 무언가 공허함이 가득해 보인다. 어느 날 리카는 까다로운 고객의 손자인 '코타(이케마츠 소스케)'와 인사를 하고 우연히 지하철 역에서 코타를 다시 만난다. 리카를 쫒아가던 코타, 코타를 찾은 리카. 둘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이어진다. 리카는 코타가 학비가 없어 대학교를 그만 둘 처지임을 알게 되고 고객의 예금에 손을 대 등록금을 마련해 준다. 200만 엔을 건네며 리카는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라고 코타에게 말한다. 리카의 이 말은 코타와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주는 행복을 깨뜨리고 싶지 않은 자기 암시가 아니었을까.  


사실 리카는 코타를 만나기 전 은행 고객의 돈에 손을 댄 적이 있다. 무심하기만 한 남편에게 값싼 시계를 선물하고 남편은 중국 출장 갔다 오면서 고급 시계를 리카에게 선물한다. 물질적인 상실감을 느낀 리카에게 남편은 말한다. 리카가 번 돈은 좀 더 편하게 써도 상관없지 않겠냐고. 그리고 외근을 마치고 백화점에 들른 리카는 계획에 없던 화장품을 구매하면서 부족한 값을 가방에 넣어두었던 고객의 돈을 사용해 지불한다. 곧바로 인출기에서 돈을 찾아 고객의 돈을 채웠지만 흔들리는 리카의 내면은 어쩔 수 없었다.


코타를 만나면서 리카의 무미건조하던 표정은 고객의 돈을 횡령해 자신을 꾸미는 것만큼 밝아진다. 리카가 바라는 행복에는 도덕적 관념이 사라져 있다. 그 시작은 어린 학생이었던 리카가 타국의 아이에게 기부를 하기 위해 아빠의 지갑에 손을 댄 그날이었다. 


은행에서 도망치는 리카. 가야 할 곳으로 간다고 말한 리카가 향한 곳은 어린 시절 기부했던 아이의 나라이다. 그곳에서 리카는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과일 파는 남자를 만난다. 기부금을 보냈던 사진 속 아이임을 직감한 리카는 사과처럼 보이는 과일을 베어 물며 흔들리는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본다. 종이달, 추측이 무성한 마지막 장면은 리카가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할 것임을 암시하는 모습이라고 감독은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한다.     

리카가 쫒는 행복은 영화를 보며 마냥 부정하기도, 그렇다고 수긍할 수도 없는 자책만이 남는다. 영화에서 '달'은 한 장면 나온다. 새벽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을 리카가 집게손가락으로 지우는 장면이 리카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은 아닐까.   


"왜? 어떻게 달이 사라질 수 있지"
"가짜니까. 행복했어요. 그때. 행복했지만 언젠가 끝나겠지 생각한 적도 있어요. 슬프지 않았어요, 당연하죠. 가짜니까. 진짜같이 보여도 진짜가 아닌, 처음부터 모든 게 다 가짜. 가짜니까 망가져도, 그리고 망가뜨려도 상관없잖아요.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각색한 영화, "종이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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