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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Mar 25. 2018

유년기의 시각.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마크 허만.

출연 에이사 버터필드(브루노), 잭 스캔론(슈무엘), 도몬코스 니메스(마틴), 베라 파미가 등등.


유년기는 이성의 어두운 시간이 자라기 전에 소리와 냄새와 시각에 의해 재단된다.

-존 베처먼(1906~1984)


영화는 영국의 시인 겸 작가의 말로 시작을 알린다. 우리는 유년기의 과연 어떤 필요에 의한 기억을 간직한 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일까? 가끔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떠오르는 기억들은 지금의 내 모습, 사물을 바라보는 생각을 규정하는 잣대가 되진 않나 생각해 보곤 한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이 영화는 히틀러의 독일이 유대인을 탄압하는 사건을 간접적이고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시각은 8살 소년 '브루노'로서, 브루노가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히틀러 통치 독일군 장교의 아들인 브루노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년이다.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기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다만 브루노의 가족이 유대인 수용소 근처 저택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만.


친구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집에 머물던 브루노는 창밖 멀리 보이는 농장을 발견한다. 브루노가 농장으로 부르는 그곳은 유대인 수용소였다. 소일거리를 찾는 부르노는 결국 수용소로 향한다. 수용소를 농장으로 생각하던 브루노에게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유대인은 이상한 존재였다. 영화는 곳곳마다 독일군과 수용소 유대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브루노를 보여주면서 또 다른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브루노와 유대인 소년 '슈무엘'은 수용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친구가 된다. 철조망은 두 소년들의 경계선이었다. 다가가지도 다가오지도 못하는 경계선 앞에서 서로를 마주 본 채 대화를 나누는 두 소년들의 우정은 다가올 결말의 비극을 예상치 못하게 한다.


종종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피어오를 때마다 맡아지는 역겨운 냄새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부르노와, 그 냄새의 정체를 알아버린 부르노의 엄마, 그리고 냄새의 정체를 숨기는 부르노의 아빠. 유대인을 산채로 화장할 때마다 나는 역겨운 냄새와 검은 연기의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부르노는 슈무엘의 아버지를 함께 찾기 위해 줄무늬 죄수복을 입고 수용소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하지만 두 소년의 우정은 맞잡은 손과 함께 한 줌 재가 되고 검은 연기는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에 의해 씻겨진다.  


피아노 음색과 함께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혼란스러운 감정은 무엇일까. 독일군과 유대인의 관계를 넘어서서 두 소년의 영혼을 바라보는 나는,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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