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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Jan 13. 2019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모험, 그리고 모험.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토니 레볼로니, 시얼샤 로넌 등등.


 오프닝에서 작가의 코멘트로 영화는 시작된다. 자신이 발간한 책. 그리고 그 책은 한 소녀의 손에 들려 있다. 이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책의 내용을 따라 여행을 떠나 듯 화려함이 수놓은 화면은 어느 한 장면만을 특징지어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영화 말미에 떠오른다.


 로비보이 ‘제로’와 ‘구스타브’의 모험이라고 해도 될까. 

 제로와 구스타브의 만남에서 어떤 기교적 장치가 있지 않다. 지극히 평범한 둘의 관계를 이어주는 장소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금발의 백인들 사이에서 보여주는 제로의 행동은 그저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 평범함, 어디에나 있을법한 아이 제로가 로비보이를 하면서 그의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는 슬픔마저 영화는 화려한 색으로 볼거리, 끊이지 않는 음악으로 귀를 간질이고 음유시인이 내뱉는 듯 대사 하나하나 쫒아가기 바쁘다. 슬픔과 비극 사이에서 영화는 위트를 잃지 않는다. 대놓고 위트를 연발하는 영화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지만 결코 경박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마담 D. 의 살해 사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시대이건 재화, 즉 돈이 우선시된다는 점이다. 마담 D. 가 누구의 손에 독살되었는지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세계 최고의 부호라는 마담 D. 의 재산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은 그녀의 죽음 뒤 찾아오는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의 친척들이 강당에 가득 찬 장면이 보여주고 있다. 살아있을 때의 마담을 찾은 적이 없는 친척들은 고인의 명복을 빌어준다는 명목으로 찾아와 유산을 탐내는 이 장면은 씁쓸함마저 사치스럽게 여겨진다.


 마담 D. 가 구스타브에게 남겨놓은 그림 한 점.

 사과를 들고 있는 소년을 차지하기 위해 마담의 아들 드미트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담이 남긴 유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변호사와 그 외 사람이 죽거나 희생된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드미트리가 그 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한 에곤 쉴레의 작품을 부스는 장면이 나온다. 죽어서야 인정받은, 지금은 소장할 수도 없는 에곤 쉴레의 그림을 그토록 하찮게 여긴 그 시대는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제로와 아가사의 만남.

 노인이 된 제로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쪽방에서 머무는 이상한 행동은 영화의 말미에 그 이유가 나온다. 제로는 언제나 로비보이 제로로서 남아 연인 ‘아가사’를 지키고 있었다. 아가사는 제로에게 현대에는 일주이면 완치 가능한 병으로 죽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제로의 마음에는 언제나 로비보이 제로로서 아가사를 그리워하며 이제는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는 그랜드 부다패스트 호텔을 지키고 있다. 그랜드 부다패스트 호텔은 제로에게 과거를 언제나 현실 안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장소였다. 어떻게 보면 과거를 살며 현재를 소비하는 제로이지만, 현재를 소비할 수 있는 그 순수한 마음마저 구스타브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어서 가능하지는 않았을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 영화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여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슬픔과 비극을 위트 있게 포장해, 마치 멘들의 케이크 상자처럼, 솜씨 좋게 마무리한 영화로 여기기에는 마치 삶의 언저리 어딘가를 꾸욱 찌르는 허무함이 뒤 따르는 여운이 남는다. 영화이지만 한 편의 책을 쉬지 않고 본 기분이다. 어른들이 봐야 할 그런 동화 같은 책.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여유가 생긴다면, 꼭 한번쯤 유럽 어딘가에 비슷한 호텔이 존재하길 바라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어딘가에 나만의 안식처가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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