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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Nov 25. 2018

취향이 아닌 인식

비교 아닌 비교가 되겠지만 때로는 사실을 말하는 게 보다 더 올바른 판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나라 한 가구당 가지고 있는 책의 수량은, 외국에 비해 한참 부족한, 100여 권이 안된다고 언론에서 기사로 나온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요약이었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쉽게 빌릴 수도 있고 인터넷으로도 쉽게 활자를 접할 수 있다. 그래서 방금 언급한 내용을 어디까지 받아들이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물론 책을 좋아하는 나는 책을 읽을 때 넘기는 종이의 질감이 좋아 책을 구입해 읽는 편이다. 하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가만히 훑어 보고 있으면 나의 책 읽는 범위가 넓지는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좋아하는 작가의 베스트셀러나 유명세를 치르는 책을 골라 읽는 것이 그 이유다. 책을 읽는 시야가 넓지 않으니 생각은 한정적이게 마련이다.


왜 책을 쉽게 읽을 수 없을까. 생활이 바빠 여유가 없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요즘 쉽게 들을 수 있는 단어 가운데 N포 세대가 있고 욜로족이 있다. 열심히 살아도 가망 없어 보이는 참담한 미래를 빗대어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 든다. 그만큼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것 또한 배부른 자의 소리가 아닐까.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의 한 나라 국민은 그 국민의 절반 이상이 문맹이라고 한다. 그들도 삶을 대하는 자세는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인데, 그 아프리카의 국민들은 참 열심히 하루를 사는데, 도무지 생활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 글을 읽는 행위는 그야말로 사치 중에 사치인 것이다.  


글을 쓰는 자와 읽는 자가 있다. 요즘엔 글을 쓰려는 자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또 책을 읽는 자는 자국 작가의 책보다는 외국 작가의 책만을 읽는 이도 많다. 책은 작가가 사유한 활자를 인쇄한 문장들의 나열이다. 작가의 취향이 반영된 글을 읽는 내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취향보다는 인식에 대한 문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떠한 사유를 인식해 적어 내려간 문장을 읽을 수 있는 인식. 본질적으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메꾸려고 하는 시도 중 하나가 글이 될 테니.


글에 대한 인식을 무엇이라고 정의해 딱 집어서 말하기엔 내가 글을 쓰는 필력이 부족하고 시야가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려는 내 욕심의 무게는 한정된 시간만큼 더욱 묵직해지고, 또 그러길 스스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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