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지나 달이 바뀌어 12월이 되었다.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12월. 그리고 겨울, 추위와 지난 시간.
첫눈이 내렸다. 첫눈처럼 첫눈 같은 느낌의 뽀샤시한 느낌보다는 엄청난 폭설. 어느 지역은 아직도 제설작업을 해야만 하는 첫눈. 어렸을 적의 난, 그러니까 그 당시 국민학교라 불리는 지금의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나이의 꼬마 아이였다. 소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아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의 꼬마 아이. 당시의 난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아이 중 하나였다. 남아 있는 사진 몇 장을 찾아보면 탐탁지 못한 표정의 나를 볼 수 있다.
왜 사진을 찍기 싫어했을까.
첫눈은 아니었다. 그 당시 겨울, 함박눈이 펑펑 내려 온 동네가 하얗게 뒤덮인 날이 있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세상이 온통 하얀 그런 나라. 그랬다. 그리고 연탄 한 장이면 충분했다. 그걸 가지고 나와 굴리면 금세 커다랗고 둥근 배불뚝이 눈 사람을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집은 마당이 있었다. 동생과 내가 눈덩이를 하나씩 굴려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이면 눈사람을 세울 수 있었다. 그 눈사람은 몇 날 며칠은 마당 한편을 지키고 있었다. 저절로 녹아 흘러 사라지기 전엔... 그때는 내가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고 싶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밝은 미소도 저절로 지어가며, 그 기운을 내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꼬마 아이의 그런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으로는 남아 있지만, 그 기억마저 희미해져 간다면 조금은 아쉬울 수밖에.
오히려 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학창 시절 미술 과목 점수가 좋아 다른 과목의 모자란 점수를 메꿀 정도였다. 평균점수를 미술 과목으로 메꿨다. 미술 과목은 항상 거의 100점 왔다 갔다 했다. 미술 학원 다니지 않고 좋아해서 하는 미술이 점수마저 잘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운동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다른 학생들 공부할 때 축구클럽에 가입해 축구화를 신고 공을 차고 뛰어다녔다. 반쯤 축구에 미쳐 있었다. 냉정히 알고 있었다. 내가 프로 축구 선수는 못되어도 변방의 축구 선수가 되어 한 단계 한 단계 오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수능을 봐야 했다. 수능. 대한민국 고삼은 수능이라는 입시, 그것이 한파다.
국문과에 지원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때의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서는. 수능을 봐서 소신껏 원서를 지원해 중앙대 국문과 예비학격. 그때 만약 내 앞의 대기번호가 빠지고 중앙대 국문과 학생의 신분이 됐다면 나의 인생은 지금 바뀌었을까. 그럴 일은 역시나 상상 속의 일이다. 아무 대학이나 가고 뒤늦게 글을 쓰겠다 준비하지만, 삶이 주어진 운명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마주 서고 있다. 글을 쓴다는 갈증에도 염증이 찾아와 하루를 견디는 나는 거울 속의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을 찍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