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이름, 특별한 생일 by.청새치
나를 소개하면서 말하는 내 이름이 왜 창피하다고 생각했을까?
친구들에게 날 소개해야 하는 유치원 때부터, 나는 내 이름이 내 거 같지가 않았다. 내 이름은 뭐랄까, 더 귀여우면서도 특이하고 예뻤어야 했다. 예를들면 정선금처럼. 당시에 가장 친했던 정선금은 얼굴이 귀엽게 생겨서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다. 발표회에서도 오디션을 거쳐 주인공인 흥부 마누라를 맡는 바람에 어린 맘에 너무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그 친구는 자기 이름이 촌스럽다고 좋아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선금이로 처음 만났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지윤이가 됐다. 이름을 바꿨던 거다. 이름을 바꿨다는 점 마저 특별해 보였다. 정 씨는 일단 정이 많아 보이고, 이응 받침으로 끝나서 부드러운 어감에 귀여운 느낌도 있고, 정 뒤에 어느 글자가 오더라도 잘 어울리는 그런 성씨라 나는 그 친구가 선금이든 지윤이든 예쁘다고 생각했다.
근데 나는 조 씨였다.
성을 바꿀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난 왜 조 씨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을까? 조 씨는 여자 이름 붙이기 좀 투박하지 않나? 물론 예쁜 조 씨 성 남자 이름도 딱히 떠오르진 않지만 어쨌든 조 씨는 생긴 것도 이상하고 (의문의 대칭이 싫었음) 받침도 없었다. 정이 안 갔다. 내가 아는 예쁜 여자 연예인들은 다 한 씨, 유 씨 성을 갖고 있었고 조 씨 성을 가진 연예인은 없었다. 특이한 성씨를 가졌거나 이름이 예쁜 친구들은 학기 초에 선생님들이 장난을 치면서 주목을 받기도 하고, 친구들도 별명을 가지고 놀리고-때리러 가면서 친구도 잘 사귀는 것 같아서 부러웠던 것 같다.
근데 조 씨는 뭘 붙여도 안 예쁘잖아.. 태어난 성은 내가 선택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어서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는 11월 10일에 태어났다. 내 이름을 싫어했던 것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내 생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9월부터는 아침저녁 뜨거운 여름 기온이 가라앉고
10월부턴 낮마저 으슬으슬 찬 기운으로 나뭇잎 색이 바뀌기 시작하는데,
11월 넘어갈 때는 공기마저 퍼레진다.
11월은 늦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서있다. 그래서 11월이 쓸쓸하게 생겼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그 쓸쓸한 느낌이 좋았다. 10월은 October. 영어 이름이 문어같고, 12월은 너무 춥고 크리스마스에 묻히는 느낌. 11월은 영어 이름 November마저도 멋있게 생겨서, 그래서 11월이 좋았다.
10일은 숫자 그 자체로 생긴 게 쿨하다.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에 묻히기도 하고, 1이 너무 반복되다 보니 너무 뻔한 느낌이다. 9일이었으면 허전하고 11일이었으면 재미가 없었다. 11월 10일은 그냥 보면 하나가 모자라는 듯 보이지만 10이라는 숫자에서 완결성이 느껴지기 때문에 소설로 치면 절정에서 깔끔하게 완결된 느낌이 든다. 내 생일에 케이크를 먹어서가 아니고, 선물을 받아서가 아니고 그게 내가 11월 10일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공무원이었던 아빠는 너무 바빠서 내가 태어났을 때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내가 몇 시에 태어났는지 잘 모르겠다고도 했다. 엄마한테 가서 물었더니 저녁 7시나 7시 반 쪼금 넘어서 태어난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네 언니 때문에 너도 수술해서 낳았잖어. 내가 혼자 병원가서 이 날 낳을게요 하고 가서 낳은거여~”
내가 엄마 배를 가르고 나온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고른 날이 내 생일이라니… 내 생일을 좋아하는 이유가 너무 완벽해졌다.
- 사랑받는 기분인 청새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