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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cos Jul 25. 2020

테이크아웃 컵은 어쩌다 쓰레기가 됐을까

재활용이라는 판타지 by.신발끈

혼자 살아도 쓰레기는 참 많이 나온다. 오히려 혼자 살게 된 이후로, 오롯이 내가 만들어 낸 쓰레기들만 모아서 버리다 보니 그 양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까진 내가 버리는 쓰레기들 중 대부분이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라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겼었다. 재활용 쓰레기라면 어딘 가에 다시 쓰일 테니까 말이다.


정말 어디에 쓰이고 있을까?


쓰레기가 모이면 종류별로 분류하고, 깨끗이 씻고, 그러고 나면 녹여서 새로운 병이나 통 같은 걸 만들겠지. 그 이상은 궁금해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일요일 밤,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누워서 별생각 없이 틀었던 텔레비전의 한 채널에서 이게 얼마나 현실과 거리가 먼 예쁜 상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선 쓰레기를 재활용하려면 같은 종류끼리 분류를 해야 하는데, 그 분류부터 쉽지가 않다. 샴푸통의 펌프에는 스프링이 끼여 있고, 우산은 비닐, 플라스틱, 철이 섞여 있고, 요구르트 병에는 알루미늄 껍질이 붙어 있다. 또 말라붙은 음식물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어제까지의 나는 이런 귀찮은 일들을 쓰레기 처리장에서 해주겠지 했다. 그런데 쓰레기는 많아도 너무 많고, 집에서 귀찮아서 안 한 일들은 그곳에서도 미처 다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끝까지 해결되지 못한 쓰레기들은? 다시 쓰레기가 되는 거다. 재활용도 못 할 쓰레기가.


겨우겨우 분류를 끝냈다면, 거기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플라스틱이나 캔은 엄밀히 말하면 같은 원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중에서도 PET인지, PP인지, PS인지, HDPE인지, PVC인지 등등 동일한 재질끼리 나눠줘야 한다. 여기서 큰 문제를 만나게 되는데 요즘에는 독창성을 발휘해 여러 가지 원료를 섞어 만든, 한때는 “상품”이었다 지금은 “쓰레기”가 된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원료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아 알 수 없는 건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수많은 테이크 아웃 컵들이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재활용 처리장에서 버려져 쓰레기 소각장으로 가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홍시 주스를 테이크아웃해서 다 마시기까지는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다. 그 짧은 쓰임을 뒤로하고 튼튼하고 투명했던 그 컵은 불태워진다.


마지막 반전은 어렵게 선택받아 정말로 새로운 제품으로 재생산되었다 하더라도, 예전만 못하다는 거다. 1등급이었던 플라스틱은 한번 다시 만들면 2등급으로, 그다음엔 3등급으로 이렇게 점점 더 품질이 나빠져 결국 또 소각장 행이다.


그러니까 재활용은 재활용 마크처럼
빙빙 돌아가는 사이클이 아니라,
낮아지고 낮아져 결국 끝이 나게 되는
내리막길이었던 거다.


이것들은 어쩌면 조금만 깊이 생각해봤더라면, 조금만 더 관심을 주었더라면, 충치가 충치 벌레들의 공격이 아니라, 화학반응의 결과물인 것처럼 당연히 알 수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렴풋이 알면서도 외면했던 일 일지도 모른다.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쓴다. 이 편리함 넘치는 세상에서 감히 ZERO WASTE, NO PLASTIC을 외치긴 여전히 두렵지만, 앞으로 작게나마 변화를 실천해 보려고 한다. 다음엔 그 후기를 들고 오게 되기를, 그리고 누군가에겐 이 글이 작게나마 새로운 울렁임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분리수거도 제대로 못하던 신발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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