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scos Jul 31. 2020

느닷없이 월급이 까였다

선택도 강요도 없이 흘러간 사건의 전말

사건 발생 하루 전.

늘 바쁜 회사생활 중에서도 유난히 바쁜 하루였다. 점심은 삼각 김밥과 삶은 계란으로 해결하고 하루 종일 시간에 쫓기며 일한 것도 모자라 퇴근길 지하철에서 까지도 노트북을 꺼내 업무를 했었다. 어려워진 회사의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기존보다 두배 이상 속도를 내야 했기에 앞으로 몇 달 간은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외식 시장 전체가 크게 위축됐고, 지금까지 보다도 더 부정적인 전망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업무량이 늘어나는 것은 감수하고자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팀원이 다 그랬고, 적어도 이번 여름이 끝날 때 까지는 연차도, 휴가도 쓰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사건 발생 다섯 시간 전.

그 일은 어떠한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며칠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 돌이켜보니 낌새가 전혀 없지는 않았었는데, 그게 이런 결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그땐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 날은 중요한 전략을 공유한다며 갑작스럽게 회사 전체 인원을 소집한 미팅이 예정된 날이었다. 모든 부서를 한 자리에 모으는 흔치 않은 미팅의 전적상 심상치 않은 일이긴 했다. 그래도 늘 그렇듯 일 얘기겠지 했었는데, 출근을 해보니 이미 자율적으로 전 직원이 동참해야 한다는 무급 휴가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의 모순만큼이나 당황스러웠다.


사건 발생 세 시간 전

직원들 사이에서 혼란과 걱정을 담은 메시지가 오가던 중 회사 대표로부터 메일이 날아오면서 소문의 실체가 밝혀졌다. 소문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고 앞으로 삼개월간 희망자에 한해 일주일에 몇일씩 무급 휴가 신청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여전히 “자율적”이라거나, “선택”, “신청서” 같은 조심스러운 표현들이 있었지만 회사 생활의 경험 상 선택지는 무급 휴가를 신청하거나, 더 많은 무급휴가를 신청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건 발생 두 시간 전

오후 두 시에 예정된 긴급 미팅에서 공식적인 소통과 신청서를 나눠줄 것이라는 내용이 확인되었다.


사건 발생 한 시간 전

미팅을 위해 외부 일정이 있었던 팀장님이 사무실로 돌아왔고, 다짜고짜 앞으로 일정을 문제없이 소화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다.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주 4일 근무를 하게 될 것임을 확실시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일정에는 변화가 없을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바빠서 연차도 못 쓰고 있던 상황에 이게 무슨... 더불어 미팅에 들어가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신청서를 작성해 내야 하니 볼펜을 챙겨가라는 말도 해주었다.


사건 발생

미팅은 무급 휴가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의 시간이었다. 회사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숫자로 심각성을 강조했지만, 무급 휴가 제도의 실행을 통한 재무적 효과는 "큰 금액은 아니겠지만 고통을 나누기 위해 동참해줬으면 한다"는 말로 대체되었다. 직원들의 월급을 덜어내 모은 그 돈이 회사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긴 한 건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을 의식한 발언이었지만, 그 의문을 해결해 주진 못할 것 같았다. 이어서 신청서를 나눠주고, 작성하고, 걷어가는 순서가 이어졌고, 나는 주 1일의 무급 휴가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신청서를 작성해서 내게 되었다. 결코 자발적이지 못했다고 여기지만, 어떠한 강제의 근거 또한 없는 일이었다. 이로써 나는 회사가 정해준 대로 월요일마다 “자율적” 무급 휴가를 가지게 되었고, 법적으로도 완벽히 그렇게 되었다. 상황 종료다.


.

.

.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월급이 오르진 않아도 떨어지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고정 수입은 이렇게 깨졌다. 월급이 정확히 얼마나 줄어드는 거지?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진다. 그래도 이제 월요병은 없겠다. 그런데 4일 안에 일주일의 일을 다 해낼 수 있을까? 당장 다음 주 월요일을 쉬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꼭 끝내야 하는 일들이 걱정이다. 회사에서야 어떻든 월급도 줄어든 마당에 집에서까지 일하진 않을 거다 절대. 쉬는 날은 뭘 해야 하지?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고 싶은데….

.

.

.

지금과 다른 상황이었더라면 너무나 행복했을 4일 일하고 3일 쉬는 꿈같은 회사 생활을 나는 이렇게 맞이하게 되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신발끈 씀



작가의 이전글 왜 나는 이런 작은 일로도 마음이 상하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