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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cos Jul 29. 2020

왜 나는 이런 작은 일로도 마음이 상하는지

가족은 어렵다 by.청새치

 25살 이후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언니 회사에서 여름 휴가비 지원을 받게되어 기회가 생겼다. 성수기인 데다 너무 늦은 계획이라서 좋은 숙소는 이미 다 마감되었거나 하루 자는 데에 30만 원이 넘었다. 나오는 곳은 1) 더럽거나 2) 낡았거나 3) 너무 비쌌거나.. 이 셋 중 두 개 이상 충족했다. 결국에는 아무 데도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기를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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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친구들과 휴가를 다녀왔다. 나흘 여행 중 사흘은 날이 궂었지만 깔깔 웃었고, 좋은 여행이었다며 잔을 짠 부딪혔다. 그러던 중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아빠랑 장어 먹으러 옴

지들은 친구들이랑만 맛있는 거 먹고 놀러 가고ㅋ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가족이 생각난다던데, 엄마는 그게 딸들이었나 보다. 좋은 곳에 와있으면서 아무 생각 없던 나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내가 휴가지를 다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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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언니한테 전화해서 휴가를 가자고 했다. 언니한테 숙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가, 언니가 귀찮아하는 것 같아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찾아봤더니 딱 좋은 호텔이 나왔다.

 

근데 또 이 모양이다.

결국 아무 데도 안 간단다.


이 번에도 똑같았다.
휴가 얘기가 나온다 -> 강원도도 좋고 대천 바다도 좋고 하루만 놀러 갔다 오자고 호응한다. 만약에 엄마가 가자고 했는데 내가 그 이후 액션을 안 취한다? 그건 내가 게을러서 못 간 거고, 본인 친구는 딸들이랑 이런 데 갔다더라 비교하고 두고두고 욕먹는다. -> 그래서 열심히 숙소와 맛집, 적당한 관광지를 알아보고 이렇게 가자고 전달한다 -> 돈 아깝다, 등의 이유로 발을 뺀다 -> 실망+화가 난다.  


나는 이거에 하도 많이 당해서 엄마가 어딜 가자, 뭘 하자고 했을 때 기대하지 않는다. 그럴 생각 없으면서 그냥 해본 말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엄마가 정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노력했는데 또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별과제를 하다가 과제 제출 직전에 문제가 터져서 다시 하고 또다시 하는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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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짜증이 확 나서 알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무리하는데 눈물이 났다. 그때 엄마 카톡이 왔다.


주말 하루 자는데 28 원이면  아까운  사실이고, 너는 평일에 휴가  낸다며~  지금 휴가 갔다 와서 피곤한데 알아봤다고 생색내니?


이 카톡을 보자마자 나도 하고 싶은 말을 우다다 쏟아내고 가족 단톡방을 나오고(화났다는 표현임) 전화를 껐다. 발등에 불 떨어진 기분으로 휴가를 알아보고 열심히 찾았다며 생색낸 것은 사실이었다. 3년 전 아빠가 퇴직한 뒤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가고 싶으니 찾아봐달라고 했을 때 괌, 홍콩, 호주 등등 열심히 알아봤으나 휴가를 맞추기 힘들어 결론이 안 났다. 그런 와중에도 친구랑 하는 여행은 거리낌 없이 잘 진행되어 1년에 2-3번씩 친구들 그룹 바꿔가며 잘만 다녔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때문에 1년 내 해외는 못 가는 상황까지 와 버리고 나니, 그제야 그때 아빠랑 홍콩에 가는 걸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결국 드는 생각. 나는 친구밖에 모르는, 가장 중요한 가족들은 놔두고, 밖에서만 좋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회한.그 이후로 가족을 최우선해야한다는 의무감이 계속 남아있었다.



모든 실망은 기대에서 온다. 나는 누구에게도 기대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도 애정은 기대를 데려온다. 친구에게 삐지고, 연인과 싸운다. 그러니 그중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기대하는 마음이 집채만 했고, 한 번 무너질 때마다 집이 무너지는 듯 흔들렸나 보다. 가족에게 세상 모질게 말하면서도 결국에는 그 가족들과 다시 집을 지어야 한다. 매 번 큰 상처를 받기 때문에 내 집은 계속 더 쉽게 무너진다.




-제 얼굴에 침뱉는 기분인 청새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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