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하고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회사 분위기와 의사결정 체계였다. 이전에는 직급이 없는 회사에 다녔기에 '직급체제'가 너무나도 어색했다. (1). 직급으로 부르는 것도 어색했지만, (2). 직급에 따른 업무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가 가장 어려웠다.
(2) 번은 지금도 헷갈려서 가끔 실수(?)를 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전 회사에서는 직급이 없었기에 모든 일을 혼자, 스스로 해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직급이 없다고 해도 연차가 높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상사처럼 느껴지기 마련인데 전 회사는 그런 것이 없었다. 따라서 업무를 대표님께 보고하거나 업무 절차를 정하는 데 있어서 오롯이 내가 주인이 되어 1부터 10까지 해내면 되는 프로세스였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업무가 구분되어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팀장이 해야 할 일과 사원이 해야 할 일이 나뉜다. 조금 당황스러웠던 부분은 내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업무의 프로세스를 팀장님이 정해주는 것이었다. 이 부분으로 인해 조금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기에 업무 진행에 있어 팀장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생각 조차를 못했고, 팀장은 이에 대해 본인이 해야 할 업무까지 사원이 하고 있으니 조금 답답하게 느꼈던 것이다. 팀장님의 생각을 눈치챈 뒤로는 업무 스타일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은 예전 업무 스타일이 나와서 혼자 일하고, 혼자 수습해 버린다.
2. 새로운 (회사) 사람들과 친해지기
사실 이 문제는 이직을 하던, 첫 입사를 하던 고민하게 되는 문제인 것 같다. 특히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회식도 안 하고 재택근무도 오래 하다 보니 처음 입사한 사람들은 기존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도 11월에 입사하였지만 팀에서 정식으로 회식을 한 적은 아직 없다. (점심 회식만 가끔 했다..)
회사 사람들과 친해지는 범위에 있어 사람마다 갈리긴 하는데, 그래도 업무적 관계와 개인적 관계를 4:6 정도로 놓고 친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개인적 관계가 업무적인 관계보다 1 정도는 높아야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길 때 내 업무를 우선적으로 잘해주기 때문이다... ㅎㅎ
회사에서 우리 팀 외에 친밀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1). 업무를 빌미로 같이 점심 먹기 (2). 같이 출장이나 파견 나가면서 친해지기,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은 (3). 입사 동기와 친해지기이다.
(1) 번의 경우는 프로젝트를 좀 길게 하면서 점심 몇 번 먹고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는 뒤풀이로 저녁을 먹으면서 친해지는 스텝이라 상대방도 어느 정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방법이다. 다행히도(?) 현재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4개 정도 있어서 (1) 번의 방법을 통해 2명의 다른 팀 팀장님과 조금 친밀감을 갖게 되었다.
(2) 번의 경우는 좀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에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을 텐데, 우리는 주기적으로 센터에 지원을 나가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한번 갔다 오면 입사 동기처럼 친해진다. 그날 하루만큼은 센터 동기가 되는 것이다. 특히나 비슷한 나이 때의 사람들과 함께 센터를 가게 되면 같이 점심도 먹고 가끔은 저녁도 먹으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동료가 될 수 있다.
(3) 번의 경우가 가장 최고의 방법인데 이직에는 입사 동기가 없을 수도 있기에 이 또한 모두에게 적용되는 방법은 아니다. 입사동기는 말 그대로 '입사동기'라는 묘한 끈끈함을 느끼며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는 것 같다. 여럿이서 들어와서 누가 누군지 모르더라도 나중에 회식 자리에서 '언제 입사하셨냐~' '저도 그때 입사했다~' 하면 입사동기라는 주제 자체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
다행히도 (1)~(3)의 방법이 모두 실현 가능한 회사라 그래도 꽤 여러 명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아직 우리 팀장님과는 어색하다는 것이 정말 미스터리다.
3. 어딜 가던 도라이는 있다.
사람이 다섯 명 모이면 그중 1명은 도라이라는 말이 있다. 도라이가 없다면 그 도라이는 '나'라는 말까지 있으니 어딜 가던 도라이는 있는 법이다. 고로 회사의 20%가량은 도라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도라이에도 '급'이 있다는 것이다. 내 기준 크게 상/중/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도라이)는 본인의 도라 이적인 기질이 업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람이다. 진짜 그냥 혼자 도라이인 것이다. 업무적으로는 아무 이상 없기 때문에 도라이인 것을 모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대화를 조금 하다 보면 '어? 이 사람 좀 재밌네?' '이 사람 좀 도라이네?'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하(도라이)다. 고로 하(도라이)들은 긍정의 기운이 있는 도라이들인 것이다.
중(도라이)부터는 슬슬 업무에서도 도라이 기질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중(도라이)부터는 사원에 별로 없고 윗 직급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내가 만난 중(도라이)들은 앞에서 알겠다고 하고 뒤에서 자기가 다 고치고 말 안 하거나, 보고를 하러 갔을 때 중요한 부분이 아닌 곳을 굳이 집어서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업무적으로 그다지 큰 이슈는 없지만 (공유 안 하는 거 빼고) 묘하게 이 사람 이상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등급이다.
사실 진짜 도라이들은 상(도라이)다. 이 회사에도 한 명 있는데, 문제는 그 사람이 경영지원실을 꽉 잡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상(도라이)의 특징은 그들의 히스테리와, 스트레스, 몇 년간 다져온 도라이 기질이 업무를 하는데 나온다는 점이다. 업무 진행에 A-B-C-D의 프로세스로 진행한다 치면 이들은 일부러 A-C-D-B와 같은 거지 같은 순서로 알려준다. 그리고 본인들에게 계속 질문하게 하고 모르면 혼낸다. 애초에 순서를 잘 알려주면 될 것을, '정말 저 사람 또 ㅈㄹ이네...' '아 진짜 저 ㄸㄹㅇ같은 ㅅㄲ'라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등급이다. 이 외에도 서류 던지면서 주워오라 하기, 면전에 대고 일 못한다고 쌍욕 날리기 등등 여러 케이스가 있지만 길게 말하진 않겠다. 이런 도라이들은 어디든 있지만 업무적으로 엮이지만 않으면 그래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낯선 곳에 적응한다는 것은 어른이 돼서도 어려운 일이란 것을 30살이 다 된 시점에 또 한 번 느끼고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런 어려움이 아직까진 배움의 과정이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 느껴진다는 것이다. 3년 뒤에도 또 이직 생각이 들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마음가짐으론 계속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