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 대처하기 by. 청새치
가족 단체 톡방에 아빠가 입을 벌리고 있는 사진이 전송됐다. 어금니가 깨져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가 그 사진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빠, 나도 넘어졌을 때 앞니 깨져서 임플란트 해봤잖아~ 주말에 집에 가면 나랑 치과 가서 임플란트 하자’ 급히 아빠를 위로하는 톡을 보내고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평소 너무 튼튼해서 황금니라고 놀리듯 말했던 치아였다. 멀쩡하던 이가 깨지다니 진짜 우리 아빠 나이가 다시 한번 실감 났다.
주말에 집에 도착하니 아빠는 이상하게 기침을 많이 했다. “아빠 왜 저렇게 기침을 해? 감기 걸렸어?” “아니 네 아빠 그저께 수면내시경 하고 와서부터 저래, 그러니까 그냥 일반 내시경 하지, 괜히 수면 내시경 하면 값만 비싸고 시간만 더 걸린다고- 의사들은 자는 사람 목구멍을 쑤셔가지고 저렇게 된다니까-” 아빠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글쎄 목구멍이 조여지지가 않는 것 같어 뻥 뚫린 것 같아서 자꾸 음식이 씹기도 전에 그냥 안으로 넘어가버려” “당신 늙어서 그래 병원에 전화 좀 해봐”
눈 내리던 그날 밤인가, 나는 꿈을 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솔로 콘서트를 보고, 밖에서 그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는데 막상 나온 것은 다른 멤버였다. 꿈에서 나는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변했다는 것이 어리둥절했지만 곧 경호원에 둘러싸인 그가 엉엉 울면서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곧바로 마음이 아파져서 함께 울었다.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다른 야외 공연장이었다. 그는 가수 석에 앉아 노래를 시작했다.
난 그대가
날 보는 눈을
거두지 않았으면 해
한참을
눈 마주치고
눈싸움 하고파, 음-
그 노래를 듣는 순간 현실에서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깨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아파서 서럽게 울 수밖에 없었다. 괜찮은 날도 있었고 전혀 생각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난생처음 갑작스럽게 겪었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이렇게 뜬금없이 날 다시 찾아왔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급하게 그의 노래를 찾아 듣곤 했다. 그의 노래는 한겨울 오두막의 벽난로처럼 따뜻했지만 곧 내 현실은 눈보라 치는 깊은 산 속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뒤, 다시 잠이 들었다.
며칠 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운영하던 가게가 손님이 줄어 걱정하더니, 결국 건물주가 바뀌어서 꼼짝없이 3월까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장사가 안됐어도 내가 손해 보는 거 감수하고 운영해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그만둬야 된다고 하니까 눈앞이 깜깜해 죽겠어. 안되더라도 할 때까지 하다가 내가 정리했어야 하는데... 너무 슬프고 화가 나서 죽겠어”
엄마는 입버릇처럼 우리 가족은 이제 내리막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고 했다. 실제로 난 엄마 아빠에게 전화가 오면 어디가 아프진 않은지 내 앞니가 깨졌던 날처럼 혹시 어떤 사고 난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들기도 한다.
삶을 살아갈수록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잡고 싶어도 내 손을 떠나가는 것들이 있었다.
- 청새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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