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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Feb 23. 2022

현실에서 살아가기

카페 창가 자리

퇴사한 지 66일


영하 12도의 마지막 추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3개월 동안 미뤄진 전기요금을 납부했다. 2달 넘게 고정수익이 중단된 터라, 통장 잔고가 걱정스럽다. 확산세가 좀처럼 꺾기지 않는 코로나처럼 슬그머니 일상을 조여 온다. 당장 4월 전월세 인상을 목전에 두고 나는 이 파도를 어떻게 무마시키며 앞으로 나아가게 될까?


어젯밤 10시, 코칭을 공부하고 있는 5년 지기 지인의 '무료 코칭'을 받았다. "1시간, 코칭이 끝나면 얻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과 "당장 하고 싶은 게 뭐냐는?"질문에도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얻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 행복해지길 원하면서도, 당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입 밖으로 말할 수 없는 아이러니함


1시간의 대화에서 내가 발견한 나의 마음은 첫째) 우여곡절 많았던 내 과거가 다시 반복될 것 같은? 아니, 반복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과 두려움


막연한 확신과 두려움


5년 지기 지인 : 

샤아 ~, 저도, 샤샤처럼 소진적으로 모든 것을 헌신해서 일한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공허했던 적이 있어요. 그즈음, 긍정 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게 됐는데, 긍정 심리학의 요지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 이래요. 과거는 지났어요. 현실에서 살아가야 해요. 샤아 ~, 샤샤를 믿어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ps. 샤아~ 는 나의 친구들이 나를 부르는 또 다른 애칭이다.)


현실에서 살아가기


드립 아메리카노

재정감축 체재라 꽤 오랫동안, 카페 가는 것이 꺼려졌다. 분쇄 원두를 인터넷에서 구입하고, 다이소에 들러 드리퍼 2000원, 여과지 100장 1500원 총 3500원을 지출하여 구매했다. 3일 만에 마시는 커피, 환상적이다. 왜? 드립 커피의 진심인 맛을 이제야 알았을까? 


3초의 추억

커피를 먹으며, 은은하게 과거를 회상한다. 일찍 집을 나서 회사 근처 꽃시장에 들러 3000원 ~ 5000원 안쪽의 꽃 1단을 구입하여 회사로 향하곤 했다. 철마다 나오는 꽃들을 화병에 꽂아 내 자리와 사무실을 꾸미며, 그 꽃들에 둘러싸여 회의를 하는 동료 직원들의 모습을 볼 때면, 세상 행복할 수 있었다. (미래에 정원을 가꾸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그래서 자연 속에 있는 사람들의 관경을 보면 행복할 수 있는 것 같다. 현재진행형의 소망)


아참. 작년 12월 퇴사한 회사의 대표님은 정규직 신분으로 3번째 만난 창업가였는데, 그는 회사 1층 카페 창가 자리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혼자 그리고 조용히 업무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 습관을 알았던 터라, 꽃을 한 아름 안고, 설레는 걸음으로 출근하는 날이면 카페 통창을 사이에 두고 우린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곤 했다. 3초의 추억이 그렇게 쌓였다. 그는 정치가 없고, 비정규직이 없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했다.


아침 9시 20분, 꽃 한 다발을 안은 채로 내가 손을 뻗어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꽤 먼 거리에서 먼저 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던 창업가. 세상의 잔인함에 비해 무척이나 새하얀 오너십을 가졌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다.


퇴사한 회사의 창업가와

1층 카페 창가 자리에서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밤 10시 40분 ~ 11시 10분 씀 (30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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