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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Mar 12. 2022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온 잡 오퍼

연애사업을 제안하는 로맨티스트

퇴사한  지 곧 90일


대선 연휴 전날 지도교수님으로 추정되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대구에 디자인 기획 파트 자리가 있는데 적임자가 너이니, 관심 있으면 문자 달라는" 내용이었다. 2년 전 휴대폰을 잃어버려 대부분의 전화번호를 유실했었는데... 문자의 번호가 지도 교수님이 맞으신지? 긴가민가 했다. 휴대폰 번호의 중간 번호를 보니... 맞는 것 같기는 했다. 끝자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간 번호는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확실히 지도교수님이 맞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양반은 돗자리 까셨나...?...(소위 점집) 차리신 거 아녀!!!" "퇴사하고 구직 활동하고 있는 건 어떻게 아시고..."  


알다가도 모를 인생사.

돌아보니, 나는 2016년에 졸업했다. 졸업한 지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간 참 빠르다. 30대 초반에는 어딘가 괜찮을 직장을 다니거나, 해외 유학길에 올라 석사학위 취득을 위해 매진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 통장 잔고는 천만 원 정도를 이제야 간신히 머금을 수 있게 되었고, 당연히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가정도 없으며, 자동적으로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다. 심지어, 직장도 없는 "이직 준비생"이라는 타이틀을 간신이 얻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득과 실

대선 연휴 "대구로 가서 정착하며, 직장을 가지고 삶을 이어가는 것에 생각해 봤다. 이 거대한 방향 전환에 (득)은 첫 째. 삶의 질이 상승할 것, 둘째. 주거 비용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 셋째. 보다 안정적인 고용환경에서 디자인 관련 업무를 할 수 있을 것 등으로 보였다. 여러 가지로 내게 손해 볼 것 없는 옵션들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는 조건들이다. 


그렇다면, 


(실)은? 첫 째. 서울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문화, 최신 트렌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 둘째. 지금까지 서울에서 쌓아온 나의 인적 네트워크가 축소되어, 대구에서 다시 새로운 네트워크를 쌓아야 한 다는 것. 셋째. 지난 4~5년간 서울에서 정든 사람들을 나를 아끼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


대선 연휴 다음날 아침 나는 교수님께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잘 지내시죠? 저는 잘 지냅니다. 우선, 주신 제안 정말 감사합니다. 대선 연휴 고민해 봤습니다. 서울 생활이 여러모로 어렵지만, (아직)은 서울 생활을 접고 완전히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오후 5시 문안 전화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후 5시 지도교수님과 통화 중> 


나 : 교수님!!! 잘 지내시죠!!! 


지도교수님 : 누구세요~~ ㅎㅎ. (웃음) 


나 : 저, 이샤샤입니다. 기억하시죠. ~~ ㅎㅎ (웃음)


지도교수님 : 잘 지내냐!! 여전하구나! 너는!! 


나 : 저 잘 지내요!! 요즘 일 쉬고 있고, 자리 알아보고 있었어요. 여전한 건 어떤 걸 의미하는 건데요? 


지도교수님 : 여전하다고! 좋은 말이야!! 대구에 00이라는 디자인 업체가 있는데, 괜찮은 프로젝트도 많이 하고, 자리 있는데, 네가 생각나서 문자 보냈다. 우리 한, 5~6년 만이지!! 돈을 좀 벌었냐!! 역시... 아직 내려오기 싫지!! 


나 : 돈... ^^ 돈은 올해부터 벌려고요! 돈을 벌면 제가 자꾸 쓰더라고요!!.(사실, 돈을 벌면 인생의 중대소사가 생겨서, 돈이 모일 틈이 없었다. 남들하는 그 연봉 협상도 난 해본적이 없다.) 저 그리고, 밍기적 거리고 있으면 주변 대표님들 와요... 그냥 제가 요즘 겁나서 계속 뭉게고 있어요. 곧 자리 잡겠죠.(웃음)(웃음)(웃음)


지도교수님 : 이제 연예 사업해야지!!! 나이가 몇 개니!! 너 올해 몇 살이니!! 진짜 시간 빠르다.... 


나 : 언제 졸업했는지? 아시잖아요. 산술계산해보세요.(웃음) 지나가는 시간 잡을 수 있나요!! (웃음)(웃음)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교수님!!!  저, 근데 연예는 소질이 없는 거 같아요... 


지도교수님 : 아이,... 세상의 절반이 남자야!! 어디든 니 짝은 있어!!!!! 무튼, 또 통화하자! 00 디자인 회사 대표한테는 구원투수로 이샤샤 쓰라고 내가 말해두마, 가끔 프리랜서도 필요한 것 같더라! 고맙다. ^^ 


나 : 제가 더 감사하죠. 제안 주셔서... 연애 관심 없는 거 아시잖아요!!! (웃음)(웃음)(웃음)


지도교수님 : !!!!!


나의 지도교수님은 운명을 만나면, 광명이 비치면서 '종'이 친다며,... 운명 같은 사랑을 믿는 로맨티시스트였다.(내가 기억하는 지도교수님의 이야기에 의하면) 실제로, 미국 유학시절 친구가 미국으로 여행 온 사촌 여동생을 마중 나갈 수 없어, 그 친구를 대신하여, 친구의 사촌 여동생을 pick up 하러 공항에 나갔다가, 친구의 사촌 여동생을 보는 순간 운명이라 생각되어, 종이 치고, 광명이 비췄다나... 그 후, 국제전화로 연애를 이어가셨고, 당시(90년대) 국제전화 요금이 200만 원 나와서,... 그 돈을 확보하기 위해 아버지께 편지를 섰다. 는 과거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리고 결국 결혼 성공!! 


ps. 

교수님. 운명 같은 사랑은 믿지 않지만,...


(결혼은 결국, 가까이 있는 사람과 하게 되는 것이고, 그 것을 운명같은 사랑이라고, 착각하며 사랑이라고 믿으려는 인간의 사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극심한 '현실주의자'이다.) 


노력은 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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