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남은 에너지에 관해
토요일 입니다. 벌써 수개월 세탁하지 못한 이불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분명 처음에 침실에 들였을 때는 새하얀 흰색이었는데, 오늘 따라 유난이 회색으로 보였답니다. 이불 세탁도 정말 큰 맘 먹고 해야 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죠. 이런 증상을 현대인들은 '번아웃'이라고 부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 목요일 출근하는 아침 늘 타는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향했답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 몸이 너무 가볍더군요. 네 맞아요. 분명 손에 들고 있어야할 노트북이 ... 제 손에 없었습니다.
심장이 정말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버스에 노트북을 두고 내린 것인지? 아니면, 집에서 노트북을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인지? 조차. 확실하지 않더군요. 급하게 길을 건너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버스에서 물건을 잃어 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내가 타고 내린 버스는 어느 버스 회사 소속인지? 그 회사는 분실물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혹시, 버스 기사가... 버스 운행 중 분실물 확인을 해줄 수 있는 지? 등 등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고, 내가 타고 내린 버스의 회사 분실물센터에 상황을 설명할 때 즈음 택시가 집앞에 도착했고, 저는 집으로 뛰어 올라가, 문을 열었습니다.
노트북은 무사히 있더군요. 다행히. 그리고 다시 회사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 타고, 출근 인정 시간 오전 10시 1분 전에 출근 버튼을 눌렀습니다.
하,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며칠 전 부터 [퇴근 후 에너지]라는 제목의 일기를 저만 알고 있는 장소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 저녁 있는 삶'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퇴근 후 저녁 있는 삶'을 누리기에 너무 힘든 경우와 환경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하루 최소 8시간 묶여 있는 회사에서 매일 소진적으로 하얗게 불태우고 잿빛이 되어 집에 오는 데, 저녁있는 삶을 즐길 수 있기는 한 걸까요?
목요일 그날. 아침. 그 난리를 치고, 저는 또 퇴근 30분 전, 협업 팀으로 부터, 내일 오전에 나가야 하는 디자인 오브제들이 있으니, 혹시 작업 가능하겠냐?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날 오전에 받은 요청과 퇴근 30분 전 받은 요청을 모두 들여다 보니, 내일 오전에 나가야 하는 디자인 오브제가 40개였고, 오후에 나가야 하는 디자인 결과물이 22개였습니다. 당시, 이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내야하는 팀장은 오후 5시 태권도를 마치고 귀가하는 6세 남아(아드님)을 케어하기 위해 노트북을 열어둔 채로 퇴근하신 상태였습니다.
노트북을 열어둔 것으로 보아, 그녀도 퇴근 할 때 마다, 팀원들의 그리고 함께 일하고 있는 회사 사람들의 눈치를 꽤나 보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퇴근 후, 1시간 정도 쉬고, 저는 없는 애너지를 쥐어 짜내어, 내일 오전 중으로 마무리 되어야 하는 일의 60%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집에 와서 회사 노트북은 정말 열어보기 싫은데 말이죠. 그리고 다음날. 금요일 또 아침 1시간 일찍 출근하여, 업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 별일 없이 금요일이 마무리 되면 좋았겠지만, 그냥 지나가는 팀장이 또 아니겠지요!
제 상황을, 그리고 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팀장은 (네, 알아요. 내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만큼, 당신 또한 저를 비슷하게 퍽이나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겠죠. 다, 알고 있어요! 웃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언제 끝나며? 왜 이렇게 속도가 느리며? 당신의 그 느린 작업 속도 때문에 팀웍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등 등의 말을 해주시더군요!
네, 맞습니다. 각자 자기 세계에서 사는 겁니다. 팀장님 눈에, 제 작업 속도가 느려 보일 수도 있겠죠. 느리다.적당하다.빠르다. 뭐 판단은 개인의 묷입니다. 그래도. 적어도. 집에가서 잔업을 해도 티내지 않는 부하직원을 두고, 이렇게 대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을 해드리고 싶지만, (전,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제 입만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팀장님. 당신은 그져. 딱 한 명 잡고 털어서 괴롭힐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저는 대략 압니다. 팀장이 저의 업무 처리 속도와 방식 그 모든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이유를요! 아마, 앞으로 아주 지속적으로 질리도록 '업무 속도'에 대해 지적하시겠죠. '업무 방식' 심지어 '커뮤니케이션 방식' 그 모든 것들을요. 저도 매우 기대가 됩니다. 당신의 태도, 언어, 표정 그 모든 것을 분석해서, 제가 편한 방법으로 저 또한 당신을 길들이겠죠. (그럴 겁니다.) 정말 다행이지 않나요? 저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유형의 사람이고, 당신은 사고 또는 생각보다 행동과 감정이 먼저 나가는 사람인 것에 대해서. 분명. 저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고, 당신은 글보다 말이 편한 사람일 겁니다.
참. 어디가서, 어디 회사 다닌다고 말하고 다니지 않지만. 저 처럼 쓸데 없이 '지 성격에 지가 못이겨서, 핵핵거리고 다니는 팀장과 함께 일하게된 부하직원이 있다면, 팀장이 부리는 히스테리 너무 괴념치 마시기 바랍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어차피. 인사권 가지고 있는 것은 인사팀이지! 팀장이 아닙니다. 아, 그리고. 할 수 있다면 해봅시다. 부하직원인 우리도, 우리가 편한 방식으로 팀장을 길들일 능력과 가치가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녀, 그의 무례함 속에서 안전지대를 찾아가 봅시다. 할 수 있어요! ^^
그래요. 맞아요 팀장의 그 쓸데없는 히스테리. 전 이제 그만 반사하려고 합니다. 현재 제가 소속된 사업부에서 10명 이상의 팀장이 있지만, 당신처럼 업무적으로 무안주는 사람은 또 처음이라...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런데, 그건 아셔야 합니다. 당신 눈에 저의 업무 속도가 느려 보일 수도 있지만, 요청받은 협업에 대한 마감일 지키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아. 그리고. 업무 하실 때, 목소리 크고, 감정적이며, 본인도 본인 행동이 컨트롤 되지 않는 팀장님들 꽤 있으실 텐데요. 누가 일을 열심히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등 등은 팀장 위의 '상급자' 눈에 또 빤히 보입니다. 이게 또 꾀 신기합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은 흥망성쇄여서... 가급적 척 짓지 마세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정말 알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