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환장 대잔치 였던 고가평가
복직하고 벌써 2주가 흘렀습니다. 어영부영 잉여스럽게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습니다. 사실 팀원이 복직하면 인사를 나누고, 식사라도 하는게 정상인데요. 저의 팀장 사람은 그런 것이 없으시더군요. 뭐 딱히 '밥 먹으러 가자고 먼저 제안 했었어도, 됐다고! 딱 잘라서 거절했을 테지만요!'
저의 공식 조직 이동은 1월입니다. 2월이 될지도 모르구요! 돌아가는 형세를 보아,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서 아직 논의 중에 있으신 것 같습니다. '팀 이동이 안 되면 어떻하지?', '팀장의 사사로운 시비를 또 어떻게 감당하나?'하는 걱정에 꽤나 불안 불안 하고 있었습니다. 3개월 동안 아주 푹 쉬고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단 1도의 반성도 안하고 지 잘난맞에 사는 팀장과 변화하지 않는 환경과 다시 마주하니, 아뿔싸!! 몸이 먼저 반응하더군요. 너무 두려웠습니다. 다시, 문해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감퇴하고... 머릿속이 안개낀 것 같고...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할까? 정말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계속 직장 생활은 할 수 있을까? ... 걱정의 소용돌이가 머리를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오돌 오돌한 떨림이 임원님께 들킨 것인지?... 임원님께서 알아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원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옆 자리에 앉히고는 복직한지? 이틀 됐는데, 어떠냐고 먼저 물어봐 주셨습니다. 그리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임원님 방의 어느 구석 코너를 쳐다보며, 애써 눈물을 참으며, 한 마디 토해냈습니다.
< 임원님과 나의 대화 >
나 : 유쾌하진 않은 것 같아요. 너무 두려워요... 어제 팀장과 하반기 평가에 대한 고과 평가 면담을 했는데, ... 도대체 그냥 지나가는게 없어요. 정말 미칠 것 같아요.
임원님 : 출근하신지? 이제 이틀 되셨는데, ... 3개월이나 쉬고 오셨는데, ... 다시 우울해 지시면 안 돼요.
"다시 우울해 지면 안 돼요."라는 말에 두 눈에서 눈물이 폭포 처럼 흐릅니다. 매일 달리고, 요가를 하고, 태국까지 가서 쉬고 왔는데, ... "다시 우울증이 심해지면 나는 어떻게 할까?"라며 혼자 조마 조마 하고 있었는데, ... 그런데....
임원님 : 물에 빠졌는데, 당연히 무섭죠. 물에 또 빠질까봐요. 과거는 지나 갔어요. 미래는 저도 모르구요. 현재에 있으셔야 해요. 업무적 긴장감과 불안을 해결을 못 하셔서, 3개월 쉰 건데... 복직한지 이틀도 안 되셔서, 이렇게 긴장하고, 불안해 하시면, ... 너무 걱정 됩니다. 조금 편하게 있으면 안 될까요? 연말이고, 바로 10일 뒤면 1월이에요.
서러움이 계속 몰려 왔습니다. 눈물을 뚝 뚝 흘리고, 눈에 휴지까지 묻혀가며 울고, 눈물을 딱아냈습니다.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임원님 : 복직하시고, 병원 다녀오셨나요? 제발 조금 저희를 믿어주시면 안 될 까요? 악어가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찾고 있어요. ... 업무도 하시던 업무와 동일하구요!
나 : 병원은 계속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어요. 복직하고, 우울증 검사 점수가 올라가고 있어서, ... 너무 무서워요.
임원님 : 저런, 나을 수는 있나요? 더 큰 병원을 가야하는 건 아닌가요? ... 병원에서 보기엔, 심한 상태가 아니라서... 모니터링만 하시겠지만, ... 조금 편안하게 있으셨으면 해요. 제발.
나 : 임원님이 아파보세요. 새로운 팀에 가고, 새로운 업무를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전혀 기대가 안 된다구요.
임원님 : 악어, 팀 이동하시면, 지금 팀장이랑 팀원들과 마주칠 일 없어요. 그렇게 될 꺼에요. 스트레스 받으시면 안 돼요. 절대적으로 편안하게 있으셔야 해요.
사실, "임원님이 아파보세요!"라고 말하며 울기만 했던, 그날의 제 자신에게 스스로 조금 놀랐습니다. 슬픔 속 자유로움이 이런 걸까요? 그 어떠한 가면 없이 마음속의 웅어리들을 눈물로 쏟아내기만 했습니다. 다 큰 30대 초반 여자 직원이 임원님 앞에서 울기나 하고, ... 이게 무슨 일일까요? 임원님 방에서 눈물을 세바가지 쏟아내니 눈물이 더 이상 눈에서 흐르지 않았습니다. 훌쩍 훌쩍거리며, 임원님과 대화를 마무리 합니다. 노곤 노곤 피곤함이 몰려옵니다.
그날 이후, 제게는 진상팀장의 업무 지시가 없어졌습니다. 밤, 낮 가리지 않고 괴롭히던 그녀의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거리는 메시지도 없습니다. 평화로운 나날입니다. 더 이상 미친여자와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이 너무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마음이 절로 편안합니다. 수요일 오후 3시 졸음이 몰려 왔습니다. 잠시 쉬고 싶어, ... 8층에 마련되어 있는 휴게 공간으로 향했습니다. 폭신한 쇼파에 몸을 기댑니다. 눈만 감고 잠시 누웠다가 자리로 돌아가야지! 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저,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온전히 저의 숨소리에 집중했습니다. 눈을 뜨니, 20분 정도 잔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개운합니다. 단잠이 이런 걸까요! 너무 행복합니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갑니다. 메일함을 열어보니, 하반기. 고가평가에 대한 결과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저를 7개월 동안 미치도록 괴롭혔던 팀장의 평가 내용이 보였습니다.
"연차에 비해서 작업 속도가 느리고, 다른 팀과는 유연하나, 팀원과 리더의 피드백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팀내 협업을 방해했습니다." 라고 적혀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끔찍했던 팀장년이 저에게 때린 고가평가는 하위등급이었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팀원과 같이 편 먹으시고, 팀원 하나 왕따 시킨 사람이 누구시더라! 머리가 둔하면, 착하기라도 하던가! 팀원과 리더의 피드백을 부정적으로 받아 들인다는 건, 니 말 안 듣겠다. 라는 건데, 그 이야기는 님 께서 팀장으로서 화학작용을 잘 못 했다는 거야! 병신아!
병신아!!!
전, 사실. 팀장이라는 사람이 임원에게 받은 고가평가 내용이 궁금합니다. 어디 버릇없이, 고가평가에 저런 상스러운 언변을 투척하실 수 있으신 건지? 팀장의 고가 평가에 대해 저는 아래와 같은 의견을 남겼습니다.
"팀장의 미성숙한 리더십으로 인해 팀 분위기가 타팀 대비 배타적임. 이에 따라, 팀 만족도가 급감하였으며, 업무 또한 단순 제작에 그쳐, 업무 만족도 또한 낮아졌음"
당하지 맙시다. 미성숙한 리더십을 미성숙 하다고 하지 뭐라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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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저는 다음주 팀장이 삥뜯은 1만원을 받아낼 예정입니다. 일전에 우연히 만난, 어느 작은 회사의 대표님이 말씀하시길. "사업은 쉬워! 산수야. 산수!!"라고 하셨는데, 참 이 말도 명언입니다. 어차피 하위 등급 받고, 우울증 진단까지 받은 제가 뭐가 두렵겠습니까! 우울증 진단까지 받은 팀원이 성과자에서 저성과자가 됐는데, 누구를 탓할까요? 이 또한 팀장 역량이었겠죠! 아주 칭찬해!
지옥에나 가세요. 밤 길 조심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