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常有感 - 3.
매일 같이는 아니지만 카페나 도서관을 가지 않고 집에서, 그것도 침대에 걸터앉은 채 - 정확히는 등방석을 대고 앉아 두 다리를 쭉 편 뒤 무릎 위에 블루투스 키보드(여러분들, 키보드랑 특히 마우스는 좋은 거 써야 하는 거 아시죠? 저처럼 손목 아작나기 전에, 꼬옥이요 ㅠ-ㅠ)를 올려놓고서 - 몇 시간씩 ‘이야기’를 쓰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길면 하루에 8시간 넘게도 가능해졌다. 물론 그런 날은 실신한 듯 잠에 들고 다음날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뻗어 있어야 하지만(책상에 앉으면 괜스레 의무감이 느껴져서, 침대가 지겨워지면 그때에야 이용한다).
어쨌든 퍽 장시간의 ‘몰입’을 벗삼아 일 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보내오고 있다.
몰입, 그것이 내가 향유하는 기쁨이요 행복임을 다시금 알았다. 나 혼자만의 시간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그 어둠은 혼자만의 시간들이, 외로움이 만든 것이다. 갑갑하면 동네마실을 다녀오면 되고 사람이 그리울 때는 동생네와 절친이 틈틈이 놀아주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수술 후 일 년 정도가 지난 뒤 다시 시작된 생리통으로 배를 끌어안고 온몸을 새우처럼 구부려야 할 때면, 나의 꿈들이 또다시 헛된 꿈이 될까 봐 우울해졌다. 이렇게 날려야만 했던 시간들이 평생으로 치면 몇 년의 시간이련가.
그런데도 몸이 멀쩡할 때 온 힘을 다해 살지도 않았었다. 생리통 때처럼, 언젠가 자전거를 타려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면서 어지럽기까지 하여 겨우 집으로 돌아왔던 날처럼, 원치 않아도 의지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그저 버텨야만 하는 시간들이 있는데도 몸이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 - 거의 대개 순간의 쾌락 - 에 빠진다. 그러다 그 결과와 마주 서게 되면 도망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것이 스무 살 이후 반복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잘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자기만족적으로나 모든 기준에서 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은 거다. 그러한 내 욕심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우연일 뿐이고 나 역시 특별하지 않는데 헛된 꿈을 꾸어 스스로를 옥죄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갖는 삶이란 없다. 적어도 내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몇 가지를, 최우선 목표를 정하였고 그에 집중할 요량이다. 나는 도저히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잘 해낼 수가 없다. 나는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버거운 종류의 인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부디 현실은 평온하기 그지없되 폭풍은 내 상상에서만 - 이야기 안에서만 - 불어다오. 나는 생명이요 동물이되 인간이다. 그 중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고 그리하여 나는 광대한 이 /우주/의 /다락/방에서 사유하는, 좁고 작은 곳에서 넓고 크게 생각하(려 노력하)는 /지구인/으로서 살어리랏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