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들은 죄가 없다

日常有感 - 4.

by 지구인



JTBC의 2020년작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두 번째로 정주행했다.


다시 봐도 지선우는 느끼할 정도로 우아하면서도 때로 충동적이고, 이태오는 정말 ‘예쁜 쓰레기’ 아니고 ‘잘생긴 인간쓰레기’이다. 이제는 인기스타가 된 한소희 배우는 개성 있고 매력적인 외모에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도 인상적이고.


그런데 왜 이렇게도 선우와 태오의 아들 준영이가 눈에 들어오는지. 그 아이의 반항과 방황이 너무도 당연하다. 부모 사이에 끼어 비틀거리는 아이를, 엄마만큼 키 커버린 아이를, 내 아이도 조카도 아닌 그 아이를 왜 이렇게 안아주고픈지.


사실 준영은 역시 부모의 이혼을 겪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예민한 여덟 살 슬기보다도, <품위 있는 그녀>의 주인공 아진의 똘똘한 초딩 딸보다도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자기중심적인데, 이는 그 아이가 발달이 상대적으로 느린 남자아이인 것과 그 아비 태오의 기질과 양육방식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성인인 아비도 충동적이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질풍노도의 시기인 준영이에게 침착하고 차분한, 소꿉친구 노을이와 같은 태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우에게 준영은 살아가는 이유일지 몰라도 그 아들은, 아비를 닮았다.


김희애 배우의 전작 <내 남자의 여자>의 경민이 절로 떠오른다. 경민은 준영과 비슷한 또래인 중1로 나오는데, 준영에 비하면 아주 순하디 순하고 착한 아들이다. 이는 <부부의 세계>에서의 주양육자가 태오였던 것과 달리 경민은 착하다 못해 ‘호구’ 기질까지 있는 엄마 지수의 ‘독박육아’로 자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대하던 시부모를 정성껏 받들어 마침내 사랑받는 며느리가 된 지수의 품성과 사랑으로(심지어 시아버지는 아들이 싫다면 며느리와 손자만 시가에 들어와 살라고 한다), 경민은 아버지의 외도에 상처받지만 잘 이겨낸 편이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와 외갓집 식구들의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전적인 엄마 편으로 보인다. 물론 자라며 쭈구리 신세 된 아비를 긍휼히 여기며 나름 잘 챙겨줄 것 같기도 한데, 이는 아들에게 배다른 형제만은 만들어주지 않으려 내연녀 마음에 대못을 박고 결국 버림받은 준표가 나름 마땅히 가져갈 몫이기도 할 듯.


자신을 배신한 배우자를 꼭 닮은 아이를 보고 키우면 무슨 생각이 들까. 분명 내가 배 아파 낳았고 심지어 혼자 키우다시피 했는데, 아이는 내가 아닌 그를 빼닮았다면. 거기다 남편의 기질마저 그대로 닮았다면. 나자신도 꼴보기 싫을 때가 있는데, 자식이라고 항상 예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선우는 전남편 태오에게 미련이 있고 그건 태오도 마찬가지다. 밉지만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는 남편을 닮은 아들이다. 그것도 잘생긴 남편 못지않게 잘생긴 아들이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편의 몫까지 메우고자 선우는 일에 매달렸고 그 결과 아들은 아빠를 더 따른다. 태오의 폭행을 유도해 아들을 데려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2년의 시간이 흐르고 (장인의 자본에 힘입어) 영화제작자로 성공해 돌아온 아빠에게 아들은 마음이 흔들린다. 물론 자신이 아니면 엄마가 고산을 훌훌 떠나 새출발할 수 있을 거라는 다경의 말에 흔들린 것도 있지만.


준영은 경민과 달리 사랑으로 가득한 ‘바른’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엄마는 바빴고 아빠는 본받을 만한 품성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물론 엄마도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또한 준영은 형제처럼 가까운 사촌도 없고 푸근한 조부모도 없다. 엄마는 십대에 부모를 동시에 잃은 사람이고 아비는 바람난 아버지 탓에 홀어머니 손에 자란 것으로 보인다. 태오의 모친은 병석에 눕기 전에는 아들과 함께 손자를 많이 돌봤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극중에서 준영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보이지 않는다.


준영은 엄마에게서도 아빠에게서도 안정을 찾지 못한다.


<부부의 세계>의 세계는 모래성 같고 깨지기 쉬운 유리창 같다. 푸른빛을 띠는 차가운 화면 때문일까, 물리적으로는 화려하고 잘 정돈되어 있는데 정서적으로는 황폐하고 공허하다. 값비싼 옷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외모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내면은 얄팍하고 이악하고 유치하다. 겉만 자랐지 속은 사춘기 준영이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태오는 말할 것도 없고 선우도 그 우아한 태도와 말투가 오히려 더욱 외로워 보이고 짠해 보인다.


<스카이캐슬>의 사람들도 비슷하지만 그 작품은 블랙‘코미디’ 장르라 등장인물들이 귀여워 보이는 지점들이 많았다. 그러나 <부부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다들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어른 옷을 입고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을 추켜올리기 바쁜 아이들 같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얼굴에는 표정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 올려져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준영은 집에 돌아왔다. 일 년 넘게 집 밖에서 지내며 준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앞날은 부모 중 누구와 더 닮았을까. 그는 장차 어떤 어른으로 자라며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걱정되고 궁금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