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만나는 것'과 '나와 만나는 것'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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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나, 약속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도로의 적막함과 마음의 외로움이 온 몸을 감싼다. 그래서 보통 애인과 전화를 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옮긴다. 그러다 가끔 애인이 피곤해서 먼저 잠들거나 어떤 일로 연락을 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이면 혼자서 길을 걸어가는 것이 두렵다. 20분정도만 걸으면 되는 길인데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처럼 멀게 느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핸드폰이라도 쳐다보고 싶고 빨리 뛰어서 집으로 갈까하는 생각도 한다.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왜 그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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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것, 혼자 밥먹는 것, 혼자 있는 상황을 분명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혼자 밥 먹는 것을 하루의 중요한 일과로 생각하고, 혼자 걷는 것은 사유를 충만하게 해주는 소중한 행위였다. 사유를 하기 위해서 일부러 옷을 갈아입고 조깅을 하러 뛰쳐 나갔던 날도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맞는 낭만을 즐기기 위해 우산도 없이 바람막이 하나로 몸을 감싸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일들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정확하게 언제 어떤 사건을 계기로 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문뜩 길을 걷다가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두려움의 이유와 계기가 있다. 그것은 내가 사람과 접촉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부터이다. 혼자 있는 것을 즐겼던 과거의 순간에 나는 수업시간부터 학회와 집회, 뒤풀이까지 항상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있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었고, 나는 의식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고 그것을 즐겼다. 내가 활동을 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매우 일정한 시간에 정해진 사람들만 만났다. 사람들에게 둘러쌓이는 경우는 매우 드문일이 되었고, 집에서 혼자 있거나 카페나 도서관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이전에 비해서 매우 늘어났다.


혼자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람을 '고파하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다. 과거에는 두렵고 힘들어했던 사람들에게 쌓여있는 기분을 이제는 다시 느끼고 싶다. 행사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나에게 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즐거움도 함께 주었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모든 일들을 줄여나가면서 즐거웠던 일마저 줄였다. 이제는 그 즐거웠던 일들을 다시 하고 싶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즐거운 기분을 느끼고 싶다. 이는 내 몸과 마음이 사람에게 상처받아서 사람을 피해만 다녔던 휴식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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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 다른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 잘지내기 위해서는 자신과 단 둘이 있는 '고독'의 시간을 잘보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현재의 고독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한다. 이러는 내가 사람이 그립다는 이유로 사람과 만난다고 다시금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독과 두려움을 피하려고만 댓가로 다시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사로잡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많은 이들의 말처럼 '고독'의 시간이 '타인과의 만남'의 선행 작업으로서 필요하다면, 우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려고 하는 시도가 아니라 고독의 시간을 잘보내기 위한 연습이다. 혼자 집에 가는 길에 자신의 몸과 생각에 집중하고, 혼자 밥 먹는 시간에 자신이 밥을 먹는 순간에 집중하고, 짝지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이나 짝지와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순간을 풍요롭게 즐기는 연습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꼭 '고독'을 선행작업으로서 가져가야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타인과의 풍요로운 관계와 함께 고독을 즐기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짧은 생각 속에서도 '타인과의 만남'과 '고독'은 우선순위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둘을 동시에 시도하고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자신과 살아감과 동시에 타인과도 살아가는 인간이 어떤 것 하나를 선행해서 이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더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과 자신과의 만남인 '고독'을 동시에 연습하고 즐길 수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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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지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러가고 혼자 카페에서 이런저런 글을 쓰고 카페 레시피를 외우고 있었다. 갑자기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몸을 가눌 수 없을 것 같고,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평소에 연락도 안하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고, 짧게라도 대화를 나누고 약을 먹었다. 잠시나마 안정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뒤에는 공허함과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사실, 고독의 상황에 놓여지면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사람과 공간만 끊임없이 바뀔 뿐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성급하게' 연락하거나 약을 먹거나 성적으로 풀어내는 것 외에는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의 방법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성급한 연락이나 성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그 이후의 또 다른 부작용들을 야기했다.


"스스로와 만나면서 타인과도 만난다."는 간단해보이지만 어려운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나 노하우가 필요할까. 주변에 그것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만나서 물어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사람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나와의 만남을 잘하기 위해서는 명상을 하거나 책을 집중해서 읽거나 '순간에 집중하는 연습'이 해답처럼 보인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실천해보되, 하나에 빠지지는 않기로 하자. 일단 시도하면 최소한의 실마리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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