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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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였을까.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 나의 상태, 나의 꿈, 나의 미래를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 삶을 살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동아대학교라는 지방에 있는 사립대학교 철학과에 가서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그 때 뉴라이트(본인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국사 선생은 그것을 "미친 소리(내 기억으로는)"라고 했다. 나는 눈물을 감추며 부들부들 떨었고, 다시는 나의 꿈을 입 밖에 내밀지 않았다. 누군가 동아대학교 철학과를 왜 갔느냐고 물으면 '성적 맞춰서' '전과해서 공무원 시험치려구요..' 등등으로 나의 꿈을 속여서 답했다. 또 누군가 나의 꿈을 짓밟고 무시하는 것이 무서웠다. 내 꿈이 '교수'에서 '사회운동가'로 바뀐 뒤로는 내 꿈과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대학교 때 친구따라 들렸던 괴상한(?)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마음먹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 표현을 쓰는 것이 사실은 스스로에게 부끄럽다. 나는 지식인이라고 부를 만큼 학술적인 능력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놀라운 실천력이 있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 되고 싶었다. 책을 읽고, 공부하고 사람들과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어서 연결하는 것으로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공부모임을 만들고 사람들과 토론하고 '노동당'을 자신의 인생 마지막 정당으로, '기본소득 운동'을 자신이 '새롭게' 시작하는 운동으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홍세화 선생을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들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사회운동가는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부터 시작해서, 나조차도 잘 모르겠는 "사회운동을 하면 어떻게 먹고살아요?"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질문의 열차들은 관계가 깊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아르바이트 이력서에는 철학과 사회복지 복수전공이나, 사회복지로 전과했다고 작성한다. 만나는 사람에게는 시민단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하는 사람으로 자리잡는다. 그들은 내가 성격이 착한 사람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간다.
군대를 다녀왔냐는 질문에도 '사회운동 하느라 군대를 미루다가, 정신질환이 있어서 군대를 미루고 병원 다니면서 치료받는 중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냥 동생한테 들은 군대이야기를 말하면서 최전방에 어디를 다녀왔노라고, 예비군은 얼마 전에 다녀왔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나를 위한 알리바이의 퍼즐들을 하나하나 맞춰간다. 이는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한 일이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 내가 감당해야할 스트레스는 이에 비할바 없이 거대하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업장에서 '알바노조 조합원이고, 노동당 당원이고, 페미니스트를 지향하고, 민주노총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일자리를 잃을 만한 위협이기도 하고 하나하나가 주위를 뒤집어 놓을 만한 자극적인 멘트들의 총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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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경우에 나의 거짓 프로필은 무난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취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나는 거짓말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진심어린 사람들의 고민 속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취직 준비를 위한 스펙을 이야기하지만 브런치에 글쓰고, 정당정치에 대해 고민하고,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 유일한 미래에 대한 대비이고 삶의 풍요를 위한 노력인 나에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능력치인'스펙'에 대해서 이야기할 꺼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책 읽고 글써요 ㅎㅎ'정도가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이런 소외를 견디는 것은 꽤나 외로운 일이다. 일을 하면서도 내가 병이 있어서 지금 불안장애 약을 좀 먹고 와야겠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를 한계에 부딪히게 한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머금고, 몇번의 우울과 좌절을 억지로 딛고서 겨우 약 한 알을 넘기고 조금 괜찮아져서 겨우 남은 일들을 마무리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조차 이야기할 수 없는 나의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나'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
나도 얼른 내가 꿈꾸는 미래의 일이 지금 나의 직업이 되어서 살고 싶다. 사람들에게 나의 직업을 이야기하고, 명함을 나눠주고 내 삶에 대한 이해를 받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의 정당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나의 삶과 일에 후원을 이야기하고 싶다. 눈에 뻔히 보이는 어려움을 함께 바꾸어 나가고 싶고, 내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어중간한 신분상태로 과도기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지금의 내 삶은 나에게 비틀거리더라도 버텨내는 것을 연습시키고 있지만, 스스로에게는 부끄럽고 타인에게는 수치스러운 것들 투성이다. 책을 읽다가도 무슨 소용인가 싶어 덮어버리기 일 수다. 당장 시험칠 수도 없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아니라, 시험이라도 칠 수 있는 공무원 시험 책이 나의 삶을 더 가치롭게 할 것만 같다.
지금이라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노선을 변경해야하나 진지하게 몇번씩 고민도 한다. 그럼에도 몸과 마음이 그것을 거부해서 겨우 원래 궤도로 돌아오고, 다시 삶을 살아간다. 내가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들어온 궤도와 기차가 된 나의 몸과 마음이 나를 탈선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누군가에게 '기차와 궤도'는 억압적이고 획일화된 삶이겠지만 나에게는 관성으로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고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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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어려움과 고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과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도 응원과 찬사를 보낸다. 나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 모두 참으로 감사하다. 다른 사람들 속에서 외롭지만 또 다른 사람들 속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 앞으로는 더 많은 시간을 소외보다는 풍요 속에서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