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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과 활동가의 먹고 살기

노회찬의 죽음에서 본 진보세력 활동가들의 삶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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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원내대표이자, 정의와평화 모임 초대 원내대표를 지낸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자택에서 투신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최근 특검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 돈은 받았지만 불법정치자금은 아니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진보정치의 아이콘과도 같았던 그에게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정치권 인사들과 그의 동료들과 시민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평소에 노회찬의 행보에 비판적이던 사람들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보니 그가 진정으로 진보정치의 아이콘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 사상으로는 나눌 수 없는 무거운 무게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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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정당 운동을 했지만 노회찬 의원과는 직접 만나거나 이야기했던 적은 없다. 과거에 진보정당의 역사를 공부할 때 '노심조'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만 공부를 했던 것이 전부다. 그외에 가끔 유투브나 페이스북으로 그의 유쾌한 '비유'시리즈를 탐독하면서 정치에는 유머가 반드시 필요함을 배우기도 했다. 사상적으로도 정의당의 의원이었던 노회찬 의원과 노동당의 일개 당원이었던 나는 많이 달랐다. 다른 시민들이 보기에는 그나물에 그밥이겠지만 나름대로는 그의 노선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나의 노선을 취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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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언론들과 사람들이 도대체 '노회찬은 왜 죽어야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정치자금법'에 관한 것이다. 노회찬이 받았다고 하는 돈 몇천만원은 그 자체로 불법이 아니라, 노회찬이 당시에 의원이 아니어서 후원회를 열 수 없었기 때문에 '불법화'되었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현직 의원이 아니면 후원회를 열어서 후원을 받을 수 없다. 원외에 있는 정치인들은 후원을 받을 수도 없이 자신의 조직을 관리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선거 자금을 만들어내는 것까지 오로지 개인기에 의존해야한다. 한국 정치가 인물 정치 중심인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구조적으로 인물 정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왠만한 사람이 아니면 자신의 개인기로 조직을 관리하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선거에까지 출마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노회찬과 심상정은 한국 진보정치에서 그 개인기가 유독 뛰어난 사람들이었고 덕분에 진보정치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그들이 오랫동안 이런 제도 아래서 의원으로 지내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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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노회찬도 결국 원외에 있던 시절에 지인으로 부터 현행 제도로는 받아서는 안되는 돈을 받았고, 불법정치자금 논란에 연류되어서 스스로 생을 달리했다. 노회찬 정도 되는 인물도 제도적인 압박을 이겨낼 수 없어서 이런 선택을 했다면 다른 정치인들은 더 대놓고 돈을 받았거나, 그외에 정치신인들이나 원외 정치인들은 가난과 빚에 찌들어 사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 내가 노회찬이라고 해도 원외에 있는 상황에서 몇천만원의 돈을 쉽게 거부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 만큼 한국에서 소수정당 정치인, 원외 정치인에 대한 정치적인 압박, 패널티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키우기는 커녕,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 것이 죄인 것처럼 선거 제도가 그에 대한 처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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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죽음은 결국 정치 제도적 살인에 가깝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서 원외의원이나, 소수정당 의원들도 후원회를 열고 득표수에 따라 국고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패널티를 완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노회찬의 죽음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결국 이런 제도들이 생겨도 장기적으로 많은 정치인들이 생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범위를 좀 더 넓혀서 정치활동을 이어나가는 '활동가'로까지 범위를 넓히면 실상은 더욱 참담하다.


내가 속해있는 정당인 노동당의 대부분의 시도당에 1명정도의 상근자/반상근자를 유지하고 있는데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거나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고 일한다. 그나마도 당내 파동이 있거나, 탈당이 많이 이루어지면 유지가 힘들어서 사무처에 상근자도 한 명 없는 시도당이 수두룩하다. 상근을 하다가 상근을 반강제로 그만두게 된 활동가들은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진다. 정당에서 상근을 하다가 갑자기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한국에서의 정당과 노조에 대한 반감 때문에 다른 곳에 취직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일을 구하더라도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본인이 속해있는 정파가 거대 노동조합이나 산별노조를 장악하고 있다면 그런 곳에라도 취직해보겠지만 노동당에는 그런 경우도 거의 없으니 상근을 하다가 길거리에 나오게 되면 당장에 손가락을 빨게 되는 형국이다.


나같은 청년활동가들도 대학시절이나 20대까지는 청년정치활동을 알바를 하면서 하지만 30대가 되면서 돈이 필요해지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자금도 절실해지는데 당에 상근을 기대할 수는 없고, 스스로 새로운 단체를 만들거나 후원을 조직해서 살아남는 법 밖에 없다. 한달에 1만원 내는 사람이 200명이 되어야 1명분의 순수 최저임금이 나온다. 그 200명을 모은 다는 것이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20대에는 활동을 하더라도 30대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활동을 그만두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든다. 변절이니 배반이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도저히 대안이 없어서 먹고 살길이 없어서 떠나는 것이다.


나도 당장 군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에 돌아오면 바로 먹고 살 길이 없다. 한 동안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텨야하는 상황이다. 아는 형과 머리를 마주하고 먹고 살길은 도모해보고는 있지만 쉽게 떠오르는 것도 없다. 진보정치의 위기와 청년정치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청년정치활동의 저조함을 연일 언론에서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런 매우 현실적인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진보정치의 가치는 무엇이고, 청년정치는 왜 필요하며, 청년정치활동의 유지와 확장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고민하려면 최우선으로 고민해야할 것은 그 청년들을 어떻게 먹고살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카페를 차리든, 공간 대여를 하든, 노조에 취직을 하든 일단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고 가치를 논하고, 필요성을 고민하고, 유지와 확장을 시도해야한다. 그것에 대한 고민이 최우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조직이나 단체는 냉정하게 말해서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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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회찬의 죽음에서 내 선배의 좌절과 실패를 보고, 나의 굶주림과 가난을 미리 보았다. 진보정치, 진보세력을 미래를 논하려면 활동가들의 밥벌이와 먹고사니즘에 관한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사회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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