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명과 이름짓기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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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니?"사람은 누구나 이에 대한 대답을 하고 싶어한다. 되도록이면 더 화려하고, 누구나 인정할 만큼 대단한 사람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나는 자신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근원적인 욕구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근원적 욕구는 '이름' 생기면서 처음으로 해소 된다. 이름이 생기고 난 뒤에 사람은 처음으로 자신은 누구인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름을 시작으로 해서 사람은 계속해서 자신을 설명할 언어와 세계를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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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동안 계속 힘들었지만 힘든 것들의 이름과 언어가 없어서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했다. 분명 힘들었지만, 누구에게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나서 나의 힘든 것에도 '우울증'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힘든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어려움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기뻤다. 이 때의 기쁨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었을 때의 기쁨과 비슷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내가 성취하고 만들어해온 것들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고, 언어를 만들어서 인정받아온 역사는 있었지만 내 존재의 상태에 이름을 붙이고 언어로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최초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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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모든 것을 이 이름과 설명에 맞추려고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저 나의 성격일 수도, 다른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 이미 설명된 이름으로 통합하려고 한다. 실제로 이미 존재하는 나의 언어와 설명 그리고 아직 설명할 언어가 없는 일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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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고, 힘든 것을 이야기하고 연결하려는 노력. 그것이 끊임없이 나에게 새로운 언어와 나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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