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공포, 무기력, 우울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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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시 다니고 있다. 4학년 2학기 마지막 수업을 듣는다. 원래 12학점만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자유선택까지해서 총 15학점을 듣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빡센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빡세다고는 했지만, 사실 추석연휴까지 딱 한번 수업을 들어가고 수업을 들어가지 않았다. 첫주는 OT라는 핑계로 들어가지 않았고, 추석연휴는 연휴니까 수업을 안했다. 수업을 들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공포'때문이었다. 이제 단 1명도 아는 사람이 없는 학교에 혈혈단신으로 돌아가서 수업을 들으려니 무서웠다.

어쩌다가 재수없게 조별과제라도 있는 수업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공포가 시도때도 없이 머리를 때렸다. 1년 전이었던 지난 학기에도 조별과제 하는 것이 무서워서 친구랑 절연하고 수업을 들어가지 않았던 전례가 있어서 더욱 무서웠다.


더군다나 나의 과는 내가 입학했던 철학과가 아니라 철학의료생명윤리라는 해괴망측한 이름으로 변해버려서, 수업도 내가 전혀 듣고 싶지 않은 수업들 투성이라 더욱 듣기 싫었다. 내가 관심도 없는 임상실험윤리를 왜 들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대학을 무사히 수료라도 하고 싶으면 참고 들어야하겠지만 대학을 수료하던 말던 큰 상관 없는 삶을 살 것 같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계속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한 동안 피시방에 가서 갑자기 디아블로3를 했다. 정말 갑자기 였다. 대학 들어와서 거의 4년을 넘게 게임을 안했다. 그러다가 습관처럼 피시방을 다시 찾았다. 정복자렙으로 900렙을 넘게 찍고, 한 시즌을 끝내고 다음 시즌까지 즐겼다. 하루에 5시간은 꼬박 피시방에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요즘 피시방은 시간을 끊을 때도 직원과 마주하고 이야기할 필요없이 무인 기계가 있어서 혼자 가기에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직원과 계속 이야기하고 얼굴을 봐야했다면 피시방도 안 갔을 것 같다. 저녁은 피시방 바로 밑에 있는 미스 사이공에서 무인기계로 뽑아서 먹었다. 직원과 이야기하고 주문하는 것이 긴장되고 두려운 나에게 무인기계는 너무나 좋은 현대 문물이다. 이런 생활을 한 달 꼬박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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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대한 공포가 삶을 지배하면서 온갖 것들의 리듬이 엉망이 되었다. 잘다니던 정신과도 오들오들 떨다가 가지 못했다. 다시 예약을 해야하는데 그것도 전화하고 다시 예약하기가 무서워서 한달이나 못갔다. 덕분에 다시 불면증과 우울증 불안장애가 다시 강하게 등장했다. 군연기도 한참 전에 했었어야 했는데 연기가 안될 것 같은 막연한 공포가 두려움 때문에 떨다가 얼마 전에 겨우 했다. 내년 2월까지는 군대에 끌려갈 걱정은 없을 듯 하다. 이것도 혹시 연기가 안되었으면 어떻게하지 하는 공포때문에 전화해서 한번 더 확인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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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포나 불안이 생기면 폭식을 한다. 한동안 애인과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온갖 뷔폐만 찾아다니면서 매일매일 배가 터질듯이 과식을 했다. 덕분에 살이 엄청나게 쪘다. 그래도 하루 돈을 써서 밥을 마구마구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하지만 과식을 하면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새벽에 해가 뜰 때까지 고통받다가 겨우 잠들어서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러고는 피시방에가서 게임을 하고 저녁 늦게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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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즈막한 여름에 감기에 걸렸고 한 달 반 정도를 앓았다. 감기에 더불어서 가을이 되면서 알레르기 비염이 함께 등판했고, 어떻게든 알바는 해야할 것 같아서 일하려고 먹은 판콜에이와 비염약, 정신과약이 무슨 문제를 일으켰는지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은 증세가 반복되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뇌졸증으로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공포에 떨었다. 어질어질한 상태에서도 사다리를 타고 일을 해야해서 떨어져 죽을 까도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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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시작한 일을 끝까지 뭐라도 해보자는 것이 목표였는데 거의 다 실패했다. 이것저것 하다가 중간에 무기력타이밍이 몰려와서 모든것을 내팽개쳤다. 활동을 할 때부터 잠수타고 사라지는 것이 늘 힘들었는데 여전히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내팽개친 일들이 나중에 나의 발목을 잡을 것 같지만 당장에 무기력이 너무커서 무엇을 하기가 어렵다. 이런 것들이 나의 병때문에 고쳐지지 않는 것이라면 그냥 무기력을 예상하고서 삶을 설계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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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고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언제까지나 외롭다고 누군가를 찾아다니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혼자 저녁을 나가서 먹고 혼자 커피를 마시다가 집에 혼자 돌아오는 길에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내 주위에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내탓이든 누구의 탓이든 이 감각에 익숙해지고 무뎌질때 까지 버티는 것이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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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보니 온통 무서움과 공포, 외로움과 우울함 그리고 무기력이 가득하다. 실제 나의 상태긴 하나 사람들이 나의 이런 상태를 보고 지쳐서 더 멀어질까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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