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떤 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이전에 함께 학회를 하던 사람을 만났다. 학회를 하면서 내가봤던 그사람은 매우 모범적인 사람이다.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기업입사를 준비했고 그 와중에 우리 학회에서는 가장 상식적인 시선으로 사회적 문제를 보고 이야기했다. 키도 크고 운동도 좋아하고 사람들과 잘 친해지는 외향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학회가 사라진 뒤에도 그는 사회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모임을 다른 사람들과 이어갔고 지금은 포스코라는 한국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해서 일을 한다. 자서전을 써도 잘팔릴 것 같은 참 모범적인 인간이다.
난 그사람이 영화제에 온 것을 보고 이내 매우 불편해졌다. 내 앞에서 보이는 잘생긴 뒤통수에 온통 시선이 가서 불편했다. 영화상영이 끝나자마자 머쩍은 인사 한마디만 나누고 나는 서둘로 자리를 피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내내 왜 불편했을까 고민했다. 고민의 결론은 나는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나를 실패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고약하게도 나는 나와 그를 끊임없이 비교했다. 키와 몸매, 성격, 직업,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잣대로 그와 나를 비교했다. 그 결과 나는 내 머릿속에서 그에게 철저히 패배했다. 갈기갈기 찢겨저 나가떨어졌다. 내 뱃살과 볼살들이 원망스러웠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가 입은 직장인들이 입을 법한 수트가 멋졌다. 최악인 것은 내가 그보다 유일하게 나을 수 있는 부분이었던 '사회운동'이라는 것도 내가 하지 않고있음 이었다. 그는 나의 모든 활동을 지지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겠다고 해준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 앞에서 '요즘 뭐하세요'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자리를 피했다.
내 과거를 알거나, 함께 했던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면 오늘과 같은 기분에 자주 빠진다. 그 기분은 되게 "나는 실패했나?"하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와 함께 했던 학회는 내가 제대로 노력하지 않아서, 외부 요건으로 사라졌다.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은 지금 사라졌다. 적어도 내가 사는 부산에서는 없다. 요즘 받고 있는 상담사 선생님은 내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가진 자원이 많고 다시 시작하려면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신다. 하지만 난 여전히 내가 실패한 인간이라고 느낀다.
난 여전히 과거의 실패의 경험에 둘러쌓여있고, 그 실패의 반복이 두렵다. 그래도 감정에 둘러쌓여만 있으면 나는 또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의식적으로라도 나를 다독여야 한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