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

by 바다

또 다시 우울이 찾아왔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우울의 원인이 환대 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왔음을 알았다. '환대'란 무엇일까. 환대란 누군가 나를 반겨주는 느낌이다. 여기서 누구는 개인일 수도 있고, 어떤 공동체일 수도 있다. 어떤 공간일 수도 있다. 그것이 자신을 안아준다고 느끼는 마음이 바로 환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이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으로 녹아있는 것도 환대의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최근에 환대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어디를 가도 같은 공간에 존재는 하지만 나는 매우 이질적이라 느낀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내 스스로가 나를 그렇게 느껴서 이기도 하고, 내가 속한 일정한 공동체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내가 느끼는 환대받지 못함의 스펙트럼 만큼이나 이유도 다양하다. 다만 그것의 결과는 하나이다. 나는 환대받지 못한다.


영화제를 가도, 강연회를 가도, 정기적인 모임을 가도, 학교 강의실을 가도 난 항상 이방인이다. 그 속에 있지만 그 속에 있지 못하다. 함께 하지만 함께 하지 못한다. 만나지만 만나지 못한다. 연락은 하지만 연락하지 못한다. 내가 느끼는 나의 상황은 이렇다. 나는 살아가지만 살아가지 못한다. 환대받지 못한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들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 우울들은 나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나는 만들지 못하고 만들어진다.


그 속에서 하는 일들도 모두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학교에서 수업듣는 것이 가장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수업 자체가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없다고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가장 환대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아는 사람이 1명도 없는 공간에서 하루 6시간~8시간의 시간을 혼자 밥먹고 글자를 읽고 핸드폰을 쳐다보면서 있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오늘은 왠지 그것이 끔찍하게 싫어서 마지막 시간에 출석만 체크하고 수업에서 도망쳤다. 계속 만들어지기 싫어서 30여분의 시간을 미리 땡겨서 내가 만들었다. 간만에 내가 만든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 틈에서 환대받고 행복해지고 싶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사람들과 공동체의 환대가 필요하다. 나의 힘으로 조금씩이라도 그것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연애는 끝이 났고, 모임은 지속되지 못했다. 어느 쪽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결과가 그렇다. 쌓여진 실패들은 공포가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꺼려할 것 같은 공포가 스스로를 휘감고 있다.


환대 받을 수 있을까. 환대받고 싶다. 내가 환대할 수는 없을까. 환대해줄 수는 없을까. 그런데 누구를, 무엇을, 내가 환대해줄 수 있을까. 환대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겠다. 그 첫번째가 자기 스스로가 되는 것이 최고의 선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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