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과 '읽기'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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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무엇이에요?" 처음 만나는 어색한 사이라면 한번쯤 하는 질문이다. 난 19년동안 망설임 없이, '잠자기, 게임'이라고 이야기해왔다. 어느 날 갑작스럭 변화가 생겼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학교 안에 있는 어느 카페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책 읽기요'하고 대답했다. 그 때 왜 갑자기 19년동안 해왔던 것과 다른 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되기를 준비하면서, 그것에 도달하면서 '책'과 '읽기'는 대단히 멋있는 일로 보였다.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과 '읽기'와 연관되어있다. 책을 많이 가지고 있고, 그것을 많이 읽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어려운 책을 읽어내고, 나는 들어도보지 못한 철학이나 사회과학 책들을 읽고 자유롭게 인용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부럽다. 지금도 그들처럼 읽고 말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내 글이 영향력이 생기길 바란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항상 읽지도 못하거나, 읽지도 않을 어려운 책들을 찾아다녔다. '책'과 '읽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돌아다녔다. 어이없을 정도로 두껍고 무거운 지젝의 <헤겔 레스토랑>을 빌려서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그 책은 단 한페이지도 펼치지 않았다. 지금도 플라톤과, 칸트와, 헤겔과 온갖 근대이성철학자들의 책이 책장에 가득하다. 읽지 않은,아니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책들은 늘어났고, 그에 대한 부담감과 죄책감도 늘어났다. 다른 한편에서는 뿌듯함과 만족감도 커졌다. 책장에는 책들이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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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가지고, 많이 '읽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몇 년간 나름대로 노력은 해왔다.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는 가까워졌지만, 읽는 것에는 여전히 하는 '척'만 하고있다.

이웃블로거 중에서 읽은 책에 관한 글만 쓰시는 분이있다.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책들을 읽고 꾸준히 리뷰를 쓴다. 그 분이 자신의 독서습관에 대해서 정리한 적이 있. 하루에 아무리 바빠도 3시간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는데만 시간을 투자한다고 한다. 하루에 3시간씩 매일 읽을 수 있으면 웬만한 책들을 다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하루에 5시간 씩! 아니, 남는 시간 전부를 책만 읽겠어!'라고 다짐을 했다. 다음날에 난 책을 1시간도 읽지 않았다. 1시간이라도 책을 집중해서 읽으려고 하니, 몸이 뒤틀리고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이 내 머리에 가득했다. 습관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읽고, 많은 것을 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올 때면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나는 사실 책을 자주 읽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읽지도 않는다. 의식적으로 정말 노력해서 자리를 잡아야 책을 읽는다. 내가 읽은 것처럼 떠들었던 책들도 읽지 않고 이런저런 개설서나 주워들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여전히 책을 읽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어려워한다. 책 읽기한 가끔은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마음 속에 있는 강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책은 읽어서 즐거운 이기 보다는 '읽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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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나에게 부담스럽고,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다만, '책'자체를 구입하고 모으는 것은 나에게 즐거운 일이다. 얼마 전에도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에 가서 절대로 읽지 않을 것 같은 희귀한 도서들을 구입했다. 주기적으로 중고서점에 들려서 몇만원씩 수십권의 책을 사들인다. 물론, 다 읽지 못한 책들이 산더미다.


우리는 소비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상에 산다. 배가 고프면 밥을 사먹고, 공부가 필요하면 강의를 결제한다. 기분이 안좋으면 미용실에 가거나 새로운 옷을 구입한다. 우리는 감정이나 욕구를 철저히 소비로만 해결한다. 나 역시 '잘 읽는 사람이 되고싶다'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는 나의 욕구들을 '책의 구입'을 통해서 해결한다. 책을 구입해서 집에 쌓아놓으면 그 자체로 내 욕구가 이미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지적능력이 늘어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저 자기 만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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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부터 나의 글쓰기와 말하기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1학년때 썼던 글의 느낌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든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의 주제가 점점 좁아지고,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음에 놀란다. '정체'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이 생기면 책을 더 구입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더 빌린다. 내 불안을 책을 위한 소비와 책의 소유로 매꾸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의 이런 특성은 꽤 오래된 것이다. 어릴 적부터 도벽이 있었다.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었다. 어릴 적에는 친구집에 있는 좋은 학용품, 새로운 연필을 몰래 가지고 나왔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주 대상은 '책'아니면 옷이었다. 지금도 어떤 불안이 찾아오면 소비를 하고, 나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게 되면 책을 구입하고 책을 가지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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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실패에 대한 불안'때문이다. 난 실패를 정말 두려워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잘하지 못하는 것과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 책을 읽으면서도 나보다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 널려있는데 내가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걱정된다.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소장하고는 있지만, 그 책들을 읽다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서 내 무식이 드러나는 것이 무섭다. 그것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책들만 읽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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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쓰고 나니 해운대 도서관에서 문자가 한 통왔다. 내일이 대여도서 반납일이라는 안내 문자다. 이번에는 4권의 책을 빌렸다. 두 권은 절반 이상 읽었고, 나머지 두권은 펼치지도 않았다. 2주라는 기간내에 제대로 볼 수 있는 책은 기껏해야 두 권인듯 싶다. 사실 도서관을 갈 때 마다 이 사실을 알지만, 재밌어보이고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생기면 마구잡이로 빌린다. 연체되는 것은 공공도서관의 다른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니 제 때에 반납하려고 한다. 내일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서 낑낑되면 도서관에 가야겠다. 무거운 가방은 나의 불안의 무게이자, 욕심의 무게이다. 업보를 지고 책방으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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