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울산,'산업'혁명

현대중공업 희망퇴직에 대한 생각

by 바다

http://www.ulsanfocu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344


울산 갈때마다 울산의 거대한 공장들의 불빛을 보면서 감탄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사람들은 생산과 자본주의, 물질의 풍요에 대해 떠올린다. 그것에 감탄하고 경외한다. 이는 지나가는 '객'인 사람들 뿐 아니라 그것을 직접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준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생산물과 분리되어 소외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했지만, 30만톤이 되는 거대한 배를 자신이 만들었다는 경험은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와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87년 현대엔진에서 시작된 거대한 규모의 노동자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은 이것과 관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조선소 한국의 기관산업을 맡아서 한다는 자신감, 그것들이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나오게 하지 않았을까. '나는 나의 몫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근로역군' '산업의 견인차'로 불리던 노동자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자존감을 되찾고자 길거리로 나왔다.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투쟁을 이어나갔다. 30만톤이 되는 거대한 배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세상으로 나와서 주인이 된다면,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호위호식하는 자들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세상이 변했다. 그 30만톤의 배를 만들던 사람들은 어느새 노동사회 속에서 기득권이 되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던 포부로 시작했던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이야기하는 것 조차 힘들게 되었다. 사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지고, 하청과 원청으로 나누어졌다. 87년을 겪은 노동자와 98년을 겪은 사람들의 생각과 존재의 차이가 나타났다. 더러운 공해산업, 비효율적인 산업, 인건비만 높은 산업이라는 비난 속에서 공장은 축소되고, 해외로 팔리고,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국에서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조선소였던 현대중공업에서 수만명의 하청노동자가 해고되었고, 지금은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퇴직을 종용하고 있다. 중공업이 위치한 울산의 동구는 말그대로 '초토화'되었다. 노동자들이 돈을 벌지 못해서 가계경제가 무너지고 지역경제도 함께 무너진다.


투쟁으로 돌파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조선업계는 정말로 위기에 봉착했고, 정부와 채권단은 제조업을 정리하려고 한다. 4차산업혁명의 시대, 플랫폼과 정보의 시대에 걸맞지 않는 너무 '중'한 산업이라 생각한다. 산업은 '중'하다고 하지만, 정작 그 속에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실제로 만드는 배의 양이 줄어드니 노동자들이 공장에 싸워서 들어가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한 기업과 한 노조의 싸움만으로는 한 노조의 사람들이 희생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 뻔한 싸움이다. 대안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산업은행을 움직여서 현대중공업을 준국유화해서 자금을 수혈하고 버티게 할 수 있다. 그런 의지가 있다면, 시민사회노동계와 함께 현대중공업만이 유일하게 삶의 터전이 이 공간에서 다른 어떤 산업과 상상력이 필요할지 고민 할 수 있다. 정부는 그 정도의 의지는 없다. 그 정도 각오로 덤벼든다면 제1야당으로부터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려는 것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희롱당할 것이다. 수 많은 미봉책들의 나열은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의 양보를 필요로 하고, 그 중에서 일정하게 배출되는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와, 무엇과, 어떻게 싸워야할 지도 보이지 않는다.


산업혁명이 수 많은 소작농들의 땅을 빼앗고, 그 자리에 양이 들어서면서 시작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혁명'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면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산업'이다. 사람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어떤 사업을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사람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4차 산업혁명은 금융지주들이 제조업의 자리를 빼앗고, 그 자리에 백화점을 만들고 그 안에 비정규직노동자를 가득채운다. 구시대의 정규직제조업 노조를 없애고, 노조없는 청정한 비정규직노동자들로 세상을 가득채우는 것이 목표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공포감만 가득하다. 그것을 자연의 섭리정도로 이해한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하지 못하도록, 비용이 아니라 '노동'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사회의 일자리를 어떻게 구성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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