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동네를 지키고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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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신쥬디스태화 건물을 쭉 따라가다보면 LG유플러스가 있다. 왼쪽 작고 허름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화전국수'라는 이름의 작은 음식점이 있다. 서면에서 집회를 하거나, 행사를 하거나, 생활비가 떨어져서 밥 한끼 먹는 것이 두려워 질때면 들리던 곳이다. 국수 한 그릇에 2500원 500원 추가하면 곱빼기로 준다. 자리가 좁아서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보면서 밥을 먹어야할 때도 있고, 친구 두 명이서 갔다가 서로 다른 곳에 앉게 되기도 한다.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고 시설도 누추하다. 길 하나만 건너면 있는 깨끗하고 이쁜 전포동 골목의 음식점들과는 다르다. 화장실은 없어도 한 번 먹으면 바로 화장실 가야할 만큼 많은 양을 자랑한다. 음식값은 선불이고 카드는 받지 않는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다. 이 가격에 이 음식을 먹고 카드를 내미는 것이 더 죄스러운 일이다. 이런 저런 조미료로 잔뜩 절여진 깍두기와 음식들은 현대인이라면 어떤 사람의 입맛에도 맞는다. 어릴적 봤떤 만화 검정고무신에 나오던 '만찐두빵'가게와 같은 따듯함도 있다. 세대불문 나이불문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이라면 골목에 있는 이 곳에 간다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보금자리였던 화전국수가 없어졌다. 특별한 사정이 있지는 않은 것 같고, 화전국수가 위치해 있던 건물이 공사에 들어가면서 가게를 뺐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사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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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국수 뿐 아니라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서면에 갔던 날 이후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생겼다. 수 많은 만남과 집회의 장소 였던서면 구 쥬디스태화 파리바게트, 한 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늘 지켜봤던 신쥬디스태화 앞 떡볶이집 그리고 화전국수 까지 서면거리에서 오래되고 정든 공간들이 사라졌다. 파리바게트 자리에는 거대한 '왓슨'이 생겼고, 떡볶이집은 핸드폰 대리점이 되었고, 화전국수는 건물 짓는 펜스로 변했다. 만남의 광장이었던 서면 롯데리아는 문을 닫고 신발가게가 되었다. 최대한 가게를 빨리 접고 시기에 맞게 변화하는게 최고의 전략이라는 프랜차이즈 시대다. 몇년 만에 수 많은 가게가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화전국수처럼 한 가게가 오랫동안 남아있었던 것이 더 놀라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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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부터 부모님이 자가집(?)을 마련하지 못해서 늘 이리저리 이사를 다녔다. 그러다 보니 이사한 횟수만큼 다양한 공간에서 추억이 있다. 나의 초중학생시절의 집은 재개발되어서 래미안 아파트가 되었다. 아파트 단지는 온통 펜스로 둘러 쌓여있어서 우리 집 터가 있던 곳 조차 갈 수 없다. 고등학교 때 살던 집은 남아 있으나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아 내가 찾아가지 않는다. 여름마다 쓰러질 것 처럼 땀을 흘리면서 오르내렸던 끔찍한 언덕을 다시 오르고 싶지 않다.
추억과 정이 남아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쓸쓸해진다.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하기도 하고, 가난으로 인해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가는 박탈감도 느낀다. 유명인의 추억과 정은 보존되고 기억되어지지만, 나같은 평범한 시민의 추억과 정은 집값의 상승에 따라 자연스레 사라진다.
내 집의 터는 완전히 사라져서 아파트가 되었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건물들 덕에 과거의 기억들과 마주할 때도 있다. 오래된 아파트, 초등학교, 보건소, 테니스장, 버스정류장, 아파트 상가에 있는 만화방 등 나의 집은 아니었지만, 나의 집만큼이나 어릴 적 힘들었던 기억,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두 가지의 풍경들은 그 곳을 지나는 나에게 생경한 경험을 제공한다. 나는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성이 되어버린 나의 집터와, 여전히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는 내 삶의 주변부의 공간들 사이에서 생기는 간극은 적응되지 않는 어색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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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집값 상승으로 점점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추억과 정든 공간에서 떠나고 있다. 돈의 압박에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또 어제 재개발이 시작되어서 나는 떠나야할 것이다. 집이 사라지기 전에는 작은 구멍가게들이 사라지고, 분식점이 사라지고, 책방이 사라진다. 모든 것이 사라져서 '동네'의 기능이 마비되고나면 집이 사라진다. 그리고 사람이 떠난다.
화전국수라는 작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큰 가게가 사라졌다.그 곳 다음에는 작은 가게들, 분식점들이 사라라진다. 책방은 찾아볼 수도 없고 온통 유흥가게와 편의점만 남는다. 삶의 터전으로서 '동네'의 기능이 마비된다. 살아가는 사람은 없고, 들르는 '객'만 가득하다. 길거리는 쓰레기통이 된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과 쓰레기를 줍는 사람 딱 두 분류의 사람만 남는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그곳에 살지 않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그곳에 살 수 없다. 전자는 안전한 안식처로 떠나고, 후자는 더 열악한 악몽의 공간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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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동네을 지키고 싶다. 사람들의 삶을 밀어내는 강한 반중력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끌어당기는 중심을 만들고 싶다. 쓰레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춤추고, 편의점이 아니라 책방들이 마주보고, 쓰레기를 던지고 줍는 뫼비우스의 전쟁이 아니라 쓰레기를 덜 만들 수 있는 청결한 공간을 거닐고 싶다. 개발과 자본의 탐욕을 막아내고, 공간과 도심, 동네를 지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고민한다. 그것은 추억과 기억과 사람을 지키는 것이라 믿는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