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심경들의 나열
강해지기
어릴 적 부터 성격이 소심했다. 겁이 많았고, 무서운 것도 많았다. 자주 울었고, 겁쟁이라 놀림받았다. 눈물을 흘리는 내가 부끄러웠고, 겁쟁이라 놀림받는 것이 무서웠다. '남자답지'못해서 무시당하고 버림받을 것 같았다.
중학교 시절 끊임없는 학교폭력 속에서도 괜찮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고등학교에 장난으로 내 안경을 숨기고, 나에게 욕을 하고 내가 저항하면 나를 때렸던 일이 있었다. 아이들은 단지 으례하는 장난이라고 했고, 나도 장난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진지하게 반응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었고, 내가 화를 내면 그들은 '니가 어딜 감히 화를 내냐'고 나를 다그쳤다. 그래도 참아서 나는 조금은 '남자다운'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믿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었고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는 학교폭력도 없을 것이고, 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 원만한 교우관계를 가지며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술을 잘 먹지 못해서 술자리가 무서웠고, 처음보는 무서운 남성선배들과 동기들과 거친몸부림과 입씨름을 해가며 비위맞추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나와 비슷하게 과의 문화를 무서워하고,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친구들 몇몇이 모여서 학교를 다녔다. 그마저도 각자 군대를 가고 다른 일을 시작하면서 흩어졌다.
나는 그 사이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있는 사람들은 과사람들과 달리 나에게 거친 문화를 강요하지 않고, 평등하게 따듯하게 잘해주었다. 나이와 학번과 상관없이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내가 하는 학회의 자랑이었고, 농사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내규를 작성하고, 교양을 진행하는 것이 '우리' 농활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여기도 길은 아니었다. 스스로 길을 찾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길을 찾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일 것이다. 점점 학회의 민주적 운영은 나의 자랑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 학회원이 가장 숫자가 많고, 가장 집회에 많이 나오는 것이 나의 자부심이 되었다. "너희는 무엇을 하고있느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열등감과 질타를 받아야 했다.
누군가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영입하는 것이 '우리'의 확장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나의 입지 축소에 대한 두려움으로 표현되었다. 끊임없이 서로의 약점과 비판지점을 찾아내서 공격했다. "넌 사람을 못챙겨" "넌 학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 "넌 책임감이 없어"
극도의 긴장에서 하나둘 아파서 운동을 그만두었다. 고통을 호소하고, '우리' 속에서 최소한의 위로를 비롯하여 아무것도 서로 얻어가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쟤는 멘탈이 약해서 그래." "자기 관리를 못해서 그렇지." "이 운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물론, 이는 내 마음과 입의 소리이기도 했다.
불안
그러던 어느 날 내가했던 말의 대상이 내가 되었다. 그토록 지적받지 않고, 잘해보고 싶었지만 결국엔 무너졌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중단하고 방황하고 있다. 얼마 전에 갔던 정신과에서는 나를 '범불안장애'라고 정의했다. 내 생각의 일거수 일투족에 불안이 깔려있다.
길가던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면 그 손에 칼이 있다고 생각하고 불안하다. 교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 집단 폭행을 당할까 두렵다. 편의점에서 봉투값을 달라고 하면 화를 내는 손님에게 칼을 맞을까 두렵다. 내가 비오는 날 버스에 치여서 시체가 되어 세상을 뜰 것이 두렵다. 엄마와 싸운 애인이 길거리에 나앉아서 나무에 줄을 걸고 자살을 하는 상상을 하루에도 몇번씩 한다. 이혼한 아빠가 집 앞에서 칼을 들고 일가족을 몰살하는 것이 너무 생생하게 눈앞에 보인다.
학교폭력이 원인일 것이라 했다. 계속 긴장해있는 일들을 한 것이 원인일 것이라 했다. 초중고 생활기록부를 가져왔지만 그 곳에는 내가 받은 고통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교우와 관계가 원만하고 학교 생활을 성실히함.' 그것이 내 19년을 설명해주는 전부였다.
대학 이후에는 그런 기록조차 없다. 알음알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나의 모습,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 속에 있는 끔찍함만이 전부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여간 쉽지 않다.
병원에 다녀와서 약을 먹고 나면 불안이 조금 가라 앉는다. 불안 뿐 아니라 모든 기능들이 저하된다. 소화도 안되고, 몸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는다.
정신 정밀검사를 하려면 40만원이라는 돈이 필요해서 엄마에게 사정해서 신용카드로 할부를 했다. 40만원을 내지 못해서 지금 예약하지 못하겠다고 다음에 하면 안되겠냐고 원무과에 사정해야만 하는 기억은 어릴 적 급식비가 없어서 선생님에게 서류를 내야했던 나의 삶과 닮아 있었다. 내 삶은 그 때 이후로 하나도 나아지지 않을 것일까?
정신검사 결과가 나오고,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아마 군대를 현역으로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영원히 '정상인'으로 사회에 편입되지 못할 것이다. 직장 취직은 힘들 것이고, 어딜가나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는 꼬리표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분노와 저주
사실, '운동권' 이라는 낙인을 몇년 동안 받고 살아오면서 또 다른 낙인이 하나 생기는 것은 그리 개의치 않다. 나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 때 돈 몇푼 쥐어주고, 든든하게 마음을 지지하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는 것이 속상하고 힘들다. 애인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알약을 틀어넣어야하는 삶이 고달프다. 힘들 것을 알면서도 집으로 가는 애인과 인사하고 집에가는 길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과 마주하면 버스에 뛰어들어 삶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과도 마주한다. 내가 아파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조차 지키지 못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강해지고 싶다.
그런데 강해지는 것은 또 무섭다. 나를 괴롭혔던 중학교 옆자리의 어떤 악마(이 악마는 효자에 훌륭한 군인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돈 많은 집에 태어나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교사가 되고 의사가 되었던 아이들. 누군가를 아무리 괴롭혀도 '장난이었는데?' 한마디로 넘어갈 수 있었던 아이들. 그 아이들처럼 될 것이 두렵다. 내가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 힘든 사람들에게 내 삶을 다루는 듯한 섬세함과 따듯함을 줄 수 있을까.
한편으로 화도 난다. 나는 아프고 힘든데, 그들은 전부 잘 지낸다. 저주받아 죽었으면 좋겠지만, '평범'하게 살아간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일을하고, 가족들과 온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나의 가족은 돈으로 깨지고, 정신병으로 나뉘어졌다. 추석과 설은 이제 나에게 일하는 날에 불과하다. 이렇게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다녀도 먼저 미안하다고, 자신이 한 일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한마디 안하는 선배들이 싫다. 그것 한마디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작당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냥 저주나 받아서 평생 똑같은 고통을 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알고 있다. 세상은 절대적으로 불공평하다. 저들은 내가 힘든 만큼 힘들지 않을 것이고, 난 평생 그들보다 사회적으로 못한 삶을 살 것 이다. 돈과 가난에 치이고, 평생 약을 타먹으면서 겨우 잠에 들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저주라도 해야겠다. 그 다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