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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Nov 22. 2018

지적해방의 길은 함께 읽는 책 속에 있다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을 읽고서

대학에 들어와서 4학년 까지 인문학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의 학회장을 4년 내리 했었다. 주로 사회과학책이나 인문학책들을 읽고서 발제를 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것이 내가했던 모임의 주된 방식이었다. 발제는 다양한 사람들이 되어왔지만, 나는 학회의 토론의 질서를 위해서 나의 생각을 중심으로 해서 학회를 진행했다. 처음엔 이런 방식이 효율적이었고 학회가 하나의 목표로 모아져야한다는 생각에 이 길이옳은길이라고 단정 지었다. 나는 이 질서 속에서 학회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그 지식을 다른 학회원들에게 일방향적으로 전파하는 지식의 전도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토론의 질서가 잡히고 3년차 학회장을 하던 때였다. 학회원들이 나의 진행방식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했다. 너무 독단적이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 것을 막는 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에 학회의 질서와 효율적인 토론을 위해서는 아무 말 대잔치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항변했다. 서로의 줄다리기 끝에 학회원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학회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해산되었다. 결국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 타협 없이 버텼던 결과는 덩그러니 혼자 남은 나의 모습이었다.     

 

학회를 쉬면서 1년 가까이를 어떻게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최근에도 이런 고민을 하던 참에 이 책과 만났다. 책에 따르면 내가 학회를 진행해왔던 방식은 전형적으로 바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자는 스승(선구자, 퍼실리에이터, 모임의 장)의 역할은 사람들을 일정한 틀 내에서 스스로 새로운 지식과 부딪히도록 하는 것이지 지식을 쥐어짜서 그들의 뇌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지식을 넣어주기는 커녕 그들을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지식만 받아들이는 바보로 만든다고 경고한다.   

   

처음에 저자의 주장을 마주하고 나서는 나이브한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분명 스승이 필요하고, 좀 더 많이 아는 스승이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차에 그 생각이 틀렸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일주일에 20시간이 넘는 수업을 듣지만, 그 속에서 배우는 것보다 오히려 내가 혼자서 1시간이라도 책을 읽으면서 내가 습득하는 지식양이나 깨달음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온 것은 태어나서 엄마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학의 교수님에 이르기까지 항상 어느 곳에나 지식을 주입하는 스승들이 나에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스승이 항상 존재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스승에게서 지식을 배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승이 항상 존재하기는 했지만, 나는 항상 스승에게만 지식을 배우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샀던 백과사전을 혼자 들고서 수십 번을 똑같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해되지도 않는 어려운 과학용어들을 머리를 쥐어짜면서 수십 번씩 읽어서 겨우 이해했었다. 그렇게 지식을 터득한 과정은 추후 내가 공부를 하면서 공부 방법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지능을 통해서 지식을 배우고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것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평등하다. , 누구나 지식을 배울 수 있다.


 다만, 그 보편적 지능의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서 일정한 지식의 틀에 계속해서 부딪힐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스승이나, 선구자의 역할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지식을 배우는 것을 지적 해방이라고 까지 표현한다. 우리가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누구나 해방에 이를 수 있다니 너무나도 신나는 일이지 않은가!  

   

저자는 이러한 지적해방은 모든 인간에 대한 신뢰,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지적능력에 대한 신뢰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다. 내가 학회를 하면서 가장 주요하게 놓치고 있었던 것은 함께 학회를 하는 학회원들의 지적능력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그들의 지적능력이 마음껏 펼쳐지면 해방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커녕 혼란에 빠져서 학회가 온통 망가져 버릴 것이라는 공포에 빠져있었다. 결국 지적능력의 해방을 이뤄내지 못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붕괴했고, 학회공동체는 무너졌다. 이는 내가 인간의 지적능력을 신뢰하지 못한 댓가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한 동안 무심했던 사람들과 하는 책 모임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간의 지적능력을 최대로 끌어내는 모임을 할 수 만 있다면 그 속에서 함께 하는 모두는 해방을 맛볼 것이다.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이 책을 만나고 난 뒤로 내 꿈은 모두 함께 자기해방을 이뤄내는 인문학공동체가 더 많이 생겨서 더 많은 이들이 자기해방을 맛보는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모두 함께 자기 해방을 맛볼 수 있는 길이 책 속에 있다.    

  

함께! 즐겁게!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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