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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n 19. 2019

<홍세화의 공부> 리뷰

"공부하세요!" 선생님의 일갈


출처 : 웹진 다들 - 서울 평생교육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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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다보면 누구든 '스승'이라 부를만한 사람과 마주하게 된다. 의무교육 시절에는 강제로 매학기마다 스승이 생겼고, 대학에 와서는 매 시간마다 스승이 생겼다. 그러다 수업이 끝나면 먼지처럼 사라졌다. 이렇듯 강제로, 의무로 생긴 스승들은 있었지만 내가 진정 스승이라고 따를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딱히 롤 모델이라 부를 만한 사람없이 20여년을 살았다. 대학생이 되었고, 학회에 가입했고 책을 읽고 공부를 했지만 그 속에도 스승은 없었다.

내가 담당하는 활동이나 역할은 늘어났지만 그 속에서 롤모델이나 스승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움직이면서 난관들을 헤쳐나가기도 하고, 그 무게에 쓰러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난관을 맞이해서 쓰러져 있었다.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다. 늘 피곤해서 방에 누워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은 이미 반납할 날짜를 한참 넘겨서 책상 위에 쌓여있었다. 이미 연체된 기간이 아까워서 한자라도 읽기 위해서 책 한권을 집어들었다.

책의 제목에는 '홍세화'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홍세화'라니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내가 속해있는 정당의 전 대표였고, 한국에서 진보적 지식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그가 바로 홍세화다. 홍세화라는 이름을 참 오랫동안 들어왔고, 몇번 직접 모셔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그의 책을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았고, 모셔서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이야기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늘 같은 말을 한다고 비아냥거리면서 비꼬기도 했었다. 그는 한국사회에 경각심과 울림을 주는 지식인이었지만 나에게 울림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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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는 연일 감탄만 했다. 홍세화라는 한 사람이 보여주는 일관성에 감탄했고, 인간 이성에 대한 그의 신실한 믿음에 감탄했다. 예전에 홍세화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같은 이야기 반복 한다고 비아냥 거렸지만 실은 그것은 그의 사상과 삶의 일관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항상 자유로운 개인들, 사유하는 삶에 대해서 예찬해왔고 그를 실천하기 위해서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어왔다. 이것에 대한 그의 생각이 바뀐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몇년이 지나서 홍세화 선생님을 다시 모셔도 같은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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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홍세화 선생님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공부하자'는 것이다. 선생님이 사람공부라고 부르시는 인문학과 세상공부라고 부르는 사회학을 두루 공부하자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존재를 풍부하게 하는 길이라는 점을 수십페이지에 걸쳐서 강변하고 있다.

선생님은 또 인문학과 사회학을 이야기하면서 정치에 관한 이야기도 한다.인문학은 인간 개인에 대한 존엄과 존경에 대한 것들이고 사회학은 국가와 권력,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이 두가지 학문 중에서 어느 하나만 공부해서는 현재의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문학을 통해서 개인과 존엄에 대해 아무리 이해하고 강변해도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만큼의 해결만 만들 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사회학적인 사고를 통해서 국가와 권력에 대해 사유하고 공동체를 만들고 고민해야한다. 반대로 권력에 대한 학문인 사회학에 대해서만 고민하며 정치를 한다면 자신과 생각이 다른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리고 그들의 존엄을 짓밟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 또한 경계해야하는 부분이다.

생각이 다름을 적으로 만들지 않고, 권력을 추구하되 상대를 존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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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회학적으로 권력의 구조에 대한 탐구하고 실제로 그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과정에서 과열되고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을 낙인찍고 배제했다.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은 원래 잔인하고 자비가 없는 것이라 굳게 믿으며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권력추구의 실패였고, 인간적 소외감이기도 했다. 내가 낙인찍고 괴롭혔던 사람들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 낙인찍히고 괴롭힘을 당했다. 이 악순환을 극복하려면 나부터 낙인을 그만두고 괴롭힘을 그만두어야 했다. 사람을 정파나 사상으로 분류해서 '덩어리'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역사와 생각과 판단을 가진 개인으로서 대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은 "저 집단은 원래 저래" "안봐도 어떻겠지"같은 낙인찍기와 단정적인 표현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불만과 질문이 있으면 질의하고, 그것에도 부족하면 재차 질의하고 이야기하는 태도를 견지하려고 한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진보정치, 시민사회는 이런 낙인과 배제가 극심하다. 이 악순환들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대안적인 문화가 필요하다. 조직의 장들이 공식적이지도 않은 비공식 모임에서 어떤 결정을 하고 대중 활동가들에게 그것을 통보하거나, 정치적 계산에 따라서 대중공간에서 열심히 준비해왔던 것들이 무너져버리는 모습을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공개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논의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면서 잘 움직이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 목숨을 건 활동가들이 강고한 결의로 돌처럼 지키는 조직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율하면서 서로 연결되어서 함께 서로를 지켜나가는 운동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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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종이책과 책방이 이 시대에도 유효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공통의 텍스트로 의견을 조율해 나가면서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은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초석이 된다. 홍세화 선생님도 말과활 이라는 아카데미와 잡지도 발행하시고, 소박한 자유인이라는 자유인 공동체도 운영하고 계신다. 결국 이런 모임들이 늘어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 더 건강한 방법으로 행복하게 세상을 바꾸는 길이 되리라 믿는다. 홍세화 선생님 만큼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의 발자취를 잘 따라가면서 '소박한 자유인'들의 세상에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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