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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l 22. 2019

결국 또 사람

"좋은 일 하는 것 아닙니다"를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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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 하는 거 아닙니다.' 제목에 끌려서 책을 구해다 읽었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은 이 말을 많이 듣는다. 1인 시위를 하다가도, 기자회견을 하다가도 어김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저 말을 던진다. "아이고 진짜 좋은 일 하시네요." 악의가 가득한 말도 아니고, 힘내라는 뜻에서 하는 말인데도 들으면 기분이 이상하다. 조롱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대상화당하는 느낌이기도 하다. 내가 뭐라고 떠드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다는 느낌도 받는다. '나쁜 말'이라는 쉬운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올라온다.  

그나마 노골적인 데모(?)를 하는 단체들은 노골적으로 욕을 먹으니 '좋은 일'이라는 표현을 들을 일은 잘 없다. 그런데 평화캠프라는 자원활동 단체는 사정이 좀 다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세상에 흔한 '봉사활동'단체로 비춰지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는 사회적 통념과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다. 그래서 이들이 세상에 던지는 다양한 메세지와 활동들은 두루뭉술하게 뭉쳐져서 '좋은 일'로 묶여버린다. 그런 단체의 활동가들이 '우리는 좋은 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고, 만들고 싶은 세상이기 때문에 하고 있다.'며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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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발달장애인과 더불어사는 삶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가 발당장애인이 아닌 자원활동가들이 평화캠프를 만나고서, 어떻게 고민을 시작하고 이어가고 있는지를 19명의 저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세상이 20년 전보다는나아져서 서점에 가면 장애학이나 장애에 대한 서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책들은 대게 학문으로서 장애, 장애인 정책 등에 대해서 다룬다. 장애인과 더불어사는 삶,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인간적 고민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말 소중한 책이다. 여전히 장애인을 비용으로 취급하고, '돈!돈!돈!'을 외치며 장애인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사회다. 그 추세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의 삶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봉사활동'이라 부르지 않고, 자원활동이라 부른다. 봉사동아리랍시고 군필자만 뽑고, 여성우대를 지껄이며, 장애인들보다 높은 곳에서 시혜적인 배품을 일삼는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생각과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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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과 장애인'의 함께 하는 삶이라는 테마로 글을 읽다가, 어느 순간 그 경계가 무너졌다. 비장애인, 장애인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었다. 새벽에 편의점에서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훔쳤다. 매 순간순간마다 너무나도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솔직한 마음들이 따뜻했다. 짧지 않은 글 속에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 인간이 서로 함께 걸어가기 위한 고민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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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어느 날에 평화캠프 자원활동을 신청했다가 신청자가 부족해서 아쉽게도 활동을 함께하지 못했다. 그 뒤로는 다른 활동을 하게 되어서 자원활동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폼나고, 눈에 띄고, 성과가 보이는 활동만을 하고 싶었던 나에게 책 속의 평화캠프 활동가들의 생각과 고민은 큰 울림을 준다. 좋은 정책도, 잘 쓴 논평도 중요하지만 결국 활동이라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운동의 기술적이고 전략적인 면만 고민하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들을 고민하지 않았던 그동안을 반성하게 된다. 책 덕분에 결국은 또 사람이라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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