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 Sep 17. 2019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서평

다시 한번 관계 맺기에 도전하자.

우울증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모를 효과는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집중이다. 우울해지면 세상 모든 일이 자신의 탓처럼 느껴지고, 세상의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로지 '내 이야기'로 치환된다.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사회도, 공동체도 끼어들 틈이 없다. 실상 그런 고민들은 대부분 자신의 탓이 아니거나,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을 붙잡고 고민하면 비로소 완전한 우울의 굴레에 빠진다.


우울증이 심해지는 날이면 완벽하게 객관성을 상실한다. 나의 실수도 내탓, 남의 공격도 내탓,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쓴 글 하나도 자신에 대한 저격이라도 느껴진다. 세상 모두가 자신만 바라보고, 공격하려는 준비를 하는 듯하다. 일상을 유지하기 어렵다. 결국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나만의 공간에 문을 잠그고 누워서 눈물을 흘릴 뿐이다. 이런 순환에 빠지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간다. 만나면 자신의 힘든 이야기, 우울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사람과 오래 만나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아픈 사람의 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계속 들어주어야만 하는 의무도 상대에게 없다. '외롭다'라는 느낌이 들면 '친구를 만나볼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거나, 쓰레기여서 사람들이 떠나가는 구나.' '그냥 혼자 이렇게 살다 죽어야하는 구나'와 같은 생각만 하게 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 굴레에서 뛰쳐나오기란 너무나 힘들다. 결국 주변의 지지과 응원이 필요한데, 이 굴레는 그 최소한의 관계마저 파괴한다.

병원을 다니고, 상담을 받고 우울감을 조금 조절할 수 있게 되어도 한번 부서진 관계를 되돌리긴 어렵다. 우울감이 사라져도 우울할 때 반복했던 행동과 말이 습관이 되서 나타난다.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불안감이 끊임없이 생각을 잠식한다. 나도 한동안 이런 경로에 빠져있었다. 이 경로 속에서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했다. 그래서 계속 책을 읽었다. '소심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우울증의 패턴은 무엇인지'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행동과 말을 해야하는지'가 적혀있는 책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그렇게 더 나에게 강하게 집착했다. 이런저런 책과 책사이를 넘나들다가 SNS상에서 본인을 사회심리학자라고 소개하는 저자를 만났다. '비대해진 자아가 더욱 위험하다'는 칼럼을 읽고 너무 공감이 되서 그 분의 책을 전부 구매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구입한 책 중에 첫번째 책.

책은 '인간은 하드코어한 사회적 동물이다'는 명제로 출발한다.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은 여기저기서 많이 하지만 '하드코어'라니 어느 정도일까. 저자에 따르면 인간에게 사회적 관계, 인간 관계는 생과 사의 문제다. 인간의 정신과 신체는 관계의 안정성을 매우 강하게 추구한다. 연인과 헤어지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관계에서 소외된 경험은 인간의 정신과 신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신호를 받아들이면 인간은 극도의 불안상태에 빠진다. 심박수가 빨라지고, 스트레스 수치가 엄청나게 증가한다. 반면에, 위기의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손만 꼭 잡아줘도 심박수가 안정되고, 스트레스 수치가 감소한다. 태초부터 부족 생활을 하면서 생존해오며 진화한 인간이라는 종은 무리에서 소외당하고, 관계가 끊어지면 그대로 죽었다. 이는 수천년이 지난 현대인류의 몸속에도 각인되어 있다. 사람과 함께 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 중에 하나다.

책은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인간이 관계와의 연결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많은 예시와 연구를 통해서 보여준다. 뒷 부분에서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되는 몇가지 노하우도 알려준다. '관계'는 매우 고등한 지적활동이라 생각했지만, 책에서 나온 연구성과들을 보면 매우 본능적인 활동에 가깝다. 생존을 위해서 색과 외모로 우량 유전자를 찾아내고, 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것을 신체적 반응으로 느끼도록 해준다. 일방적으로 관계가 끊긴 상황에서 인간은 '죽음'에 가까운 상태를 놓이기도 한다.

여러 가지 실험이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반가웠던 점은 '관계'에 대한 고민을 인간이라면 당연히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소심하거나, 우울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당연히 사랑받고 싶어하고, 주위 관계들과 잘 지내길 원한다. 이건 본능이다. 책 내용에 따르면 인간은 원만한 관계 속에 있을 때 가장 높은 행복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고, 안정감을 주는 공동체에 있을 때 행복해진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돈을 버는 일이나 권력을 획득하는 일보다도 주위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더 써야한다.

관계를 맺는 일이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일인 이상 세상 어딘가에 분명 나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끊긴 관계가 있더라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은 그 순간에 성장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새로운 세계란 말은 새로운 관계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서, 사람들과 멀어져서 불안하다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세상엔 좋은 관계를 본능적으로 원하는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내가 좀 더 노력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관계를 찾으러 다니면 반드시 만날 수 있다. 지금 관계로 인해서 외롭고 불행하다면, 다른 일로 그 불행을 매꾸려고하거나 뒤로 미루지 말자. 관계의 불행은 좋은 관계로 풀어야한다. 더군다나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일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다른 일에 조금 힘을 빼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나누고, 눈을 맞추는 일에 힘을 쓰자. 분명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또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