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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Apr 08. 2020

[책 서평]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시티 픽션'

[책 서평] 시티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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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시티 픽션'을 읽었다.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한국 도시괴담 모음집'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의 수도.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소해 보이지만 소름 끼치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글을 한 편씩 정리하며 읽지 않아서 하나하나 제대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도시인의 불안과 탐욕'이 단편 소설들을 이어주고 있다. 재산 증식, 투기, 성공. 의심. 불안이 주제와 스토리는 다른 글 여기저기 녹아있다.

한편으론 배경이 '서울'이기 때문에 재산 증식, 투기, 성공이 중요한 주제로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서울은 사람이 모이고, 자본이 모이고, 자산이 증식하는 도시다. 한국에서 2번째로 큰 대도시라는 부산은 서울의 욕망을 목표로 살아가기 쉽지 않다. 저런 욕망을 목표로 하기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 한다. 서울을 제외한 모든 도시들의 목표는 서울로 가거나, 서울이 되는 일뿐이다. LCT나 마린시티가 대표적인 서울이 되려는 부산의 몸부림이다. 부산에서 사는 능력 있는 사람들은 해운대가 강남이 되고, 센텀시티가 테헤란로가 되길 바란다.

배경이 서울이 아닌, 서울 출신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주인공의 설정과 이야기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큰 성공에 대한 꿈은 버린 지 오래된 사람들. 그저 도시에서 버티면 살아가는 일이 유일한 목적인 사람들. 집을 살 가능성도, 구매한 집이 큰돈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진 사람들. 무기력과 희망 없음이 소설의 주제가 되지 않았을까. 큰 욕망도 희망도 없으니 불안과 의심도 상대적으로 적지 않을까. 소설로 쓰기는 그리 재미없고, 힘 빠지는 주제들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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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그려낸 세계관의 아이디어가 흥미로웠다. 시간 감각이 느려져버린 언니의 이야기. 서울 도심 속 섬에서 나타난 의문의 존재. 정치인이 통째로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

소설을 한 번도 써본 적 없지만 꼭 한번 써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 돈으로만 전염되는 전염병이 퍼진 사회 이야기. 이 바이러스는 오로지 지폐와 동전에만 서식하고 그 돈을 매개로 전염된다. 이 전염병이 퍼지면 죽어나가는 건 어떤 사람일까. 아마 편의점 노동자, 마트 캐셔, 한국 조폐공사 직원들, 시장에 장사하는 할머니, 라이더들. 신용카드만 쓰는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노동자. 노인. 현금에 익숙하거나, 복잡한 온라인 결제를 이용할 수 없는 계층의 인간들만 죽어나간다. 카카오페이와 페이코, 삼성전자의 주가가 상승하고 부자들은 다시 돈을 번다. 이런 세상에 세뱃돈을 주고받는 명절은 한민족 암살의 날이 되고, 축의금은 신랑 신부를 행복한 상태로 보내버리려는 의도. 조의금을 내는 일은 부관참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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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만 해도 도시는 나에게 긍정적인 의미였다. 깨끗하고, 정리정돈되어있고 편안한 곳이 '도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는 부정적인 공간이 되어왔다. 세균을 전염시키고, 욕망을 옮기고, 투기를 하고, 사람이 죽어나간다. 서로를 의심하고, 개인은 끝없는 불안에 시달린다. 인류가 갑자기 도시에서 벗어나서 집단 귀농을 하는 일 따위는 없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라는 공간을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의미로 다시 전유할 수 있을지. 그 씨앗은 어디에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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