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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May 12. 2020

김영하 산문집 '보다'

<김영하 산문집 ‘보다’>


김영하 산문집 '읽다' '말하다' '쓰다' 3권을 읽었다. 셋 중에 독서에 관한 이야기인 '읽다'는 어려웠다. 정확히는 생소했다.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고, 즐기지도 않다 보니 소설, 그것을 구성하는 뼈대인 이야기에 대해 써 내려가는 책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꾸역꾸역 책장을 넘겼다. '마담 보바리'나 톨스토이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나에게는 우주공간을 다루는 SF만큼이나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을 읽지 않았어도 소설 읽기 자체를 좋아한다면 고전에 대한 정보를 몰라도 소설이 가지는 보편적 감각은 느낄 수 있었겠지만, 난 그도 아니었다.

'말하다'는 '읽다'에 비해서 즐겁게, 편히 읽었다. 이미 유튜브에서 들었던 강의의 대본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는데, 강의 내용과 묘하게 표현이 다르기도 하고 내용이 추가되고 사라지기도 해서 원래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구나 하고 좀 더 잘 알 수 있었다. 작가에 대해 좀 더 내밀하게 만난 느낌이라 반가웠다. 강의 듣다가 아쉽다고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대답도 일부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은 말하는 일이 즐겁지 않고, 두렵기까지 하다던 김영하의 말이 엄살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말보다는 글을 쓰는 일에 대해 더 작가가 즐겁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직업이 '작가'겠지만 말이다.

'보다'는 편의점에서 일하던 중에 2~3시간 만에 단 번에 읽었다. 손님이 적어서 책에 집중할 수 있었고, 평소라면 지루했을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몰입했다. '보다'에는 작가가 쓴 칼럼(을 무엇이라 정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신문 사설에서 만날 수 있는 글)을 정리해서 모아 놓았다. 소설이나 강의보다 칼럼이나 사설면의 글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편안하게 읽었다. 눈이 익숙했다. 어투와 글의 주제 모두 신문 사설면에 늘 등장하는 하는 것들이었다. 칼럼은 내 정치적 지향과 취향에 적합하거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지적하는 맛이 있어야 즐거운데, 작가의 글은 내 지향과 일부 비슷하지만 생각도 할 수 없는 부분을 지적했다.

영화에 대해 써 내려가는 글이 그러했고, 시간과 자유에 대한 내용은 익히 많이 들어는 본 개념들이었지만 김영하가 쓴 표현들이 더 적확하고 명확했다. 최근에 방송에 나오는 김영하는 세상사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그것을 은유로 잔잔히 드러내는 느낌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콕 짚어서 하나하나 생각을 펼친다.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보다는 '문제지 않은가?'는 뉘앙스가 강하다고 느꼈다.

난 전자처럼 두리뭉실하게 끝나는 글을 즐기지 않으므로 이 책이 솔직하다고 느꼈고,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가 이 책을 '에세이집'이라고 표현하는데, 그의 표현에 따르면 난 이런 에세이 혹은 칼럼이 좋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금도 되고 싶다. 에세이나 칼럼만 주야장천 읽으면 (그마저도 많이 읽지 않지만) 에세이나 칼럼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알았지만, 오히려 내 삶에서 현장이라 부를만한 공간에서 일정 수준 이상 버텨내고, 단단히 벼려진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에세이든 칼럼이든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했다.

책 이름이 '보다'인 것이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제목만 보고 김영하의 여행기쯤 되나 했는데, '사회비평 에세이'의 느낌을 풍기는 책이었다. 작가의 후기를 보면서 조금 해소가 되긴 했다. 작가 후기에서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 따르면 '제대로' 본다는 것은 생각을 동반하고, 그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생각을 적는 일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그 대상이나 사회에 대해 써야 한다. 쓸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접근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나라면 어떻게 써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세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시작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정연하게 써내도록 스스로를 강제하게 된다. 그렇게 적은 것을 다시 보고 고치는 것이 그 마지막이다. 이 순환이야말로 한 사회와 세상을 온전히 경험하는 방법이 아닐까."라는 말도 하고 있다. 생각하고 쓰고, 수정하는 일이 세상을 온전히 경험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결국 '본다'는 행위는 눈을 비롯한 오감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을 날 것으로 남겨두는 일이 아니라 그 감각들을 내 나름의 필터로 정돈해서 밖으로 꺼내놓고 수정하는 과정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난 이 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과 상상력이 좋았다. 특히 택시와 대중교통이라는 주제의 글의 초반부에서 김영하가 택시에 대해 하는 생각이 기발하고 생각을 진짜 잘 비튼다고 감탄했다. 한국사회의 기준에서 많이 뒤틀린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

# 남겨놓고 싶은 문장

"이때의 자유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정치적 개념이라기보다 강력한 저항이 없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제 뜻을 이루겠다는 힘의 논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p20

"충분히 팔 수 있었던 상품을 양심 때문에 차마 팔지 못한 내 동료 같은 사람은 미국식 자유가 횡행하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도 하지 말라는 칸트적 도덕률은 이런 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유롭게 타인을 이용해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사람, 타인을 목적이 아닌 도구로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p20 ~p21

“빙고. 부자를 정말 부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 대한 무지다." -p25

"이렇게 작은 집에도 슬리퍼가 필요해? / 그의 말에는 그 어떤 공격성이나 비아냥의 기운도 없었다. 그의 의문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천진함이야말로 그가 가난을 거의 경험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p28

“부자들은 이제 빈자들의 마지막 위안까지 탐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선택의 여지없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가 누군가에게는 선택 가능한 쿨한 옵션(무소유) 일뿐인 세계, 세상의 불평등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p31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숙련이라는 장벽은 이미 사라졌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정규직들은 이런저런 장벽을 쌓기에 여념이 없고 똑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들은 사회를 향해 울분을 토해낸다." -p45

“지금의 대중은 윤리적 생존 대신 생존의 윤리를 가르쳐줄 아버지를 선택한 것이다. ….. 영화 내내 희생자처럼 보였던 그가 이 모든 일의 주체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모든 일을 이미 저지르고도 시침 뚝 떼고 있는 대중의 무의식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웃음은 조용히 암시하고 있다."-p52

"진짜 욕망은 타인의 욕망으로 은폐돼 있다. 은폐돼 있는 욕망이 어찌 만족을 알겠는가." -p73

"아이는 자기를 덜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쓴다고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게 확실한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하기보다는 자기를 마뜩지 않아하는 부모의 마음에 드는 게 생존에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혹은 그녀)가 자기를 버리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은 부모는 바로 그것 때문에 아이에 대해 힘을 갖게 된다. 나쁜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아이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p76

"인간사가 정의와 무관하다는 걸 발견하게 될 때마다 씁쓸하다. 아이가 자기를 덜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더 노력한다거나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반대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를 사랑하지 않은 부모는 아이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어려서 불행하게 자란 사람일수록 연인과의 관계가 더 원만하다면 얼마나 바람직하까. 그런데 불행히도 인간사는 정의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기득교나 불교 같은 종교들은 정의의 실현을 사후 또는 내세로 미룬 게 아닐까." -p78

“남의 위험은 더 커 보인다. 반면 자기가 처한 위험은 무시한다. 그게 인간이다… 로마인들은 화려한 연회를 열 때마다 노예가 은쟁반에 해골바가지를 받쳐 들고 손님들 사이를 지나다니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 같은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게 연회의 흥을 더 돋우었기 때문이다. 해골바가지를 보면 술맛이 더 났던 것이다. 로마인들은 변태였나? 아니다. 지금도 그 전통은 핼러윈으로 면면히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그날이 되면 해골과 좀비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죽은 자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밤새 술을 마셔댄다. 핼러윈의 상징, 속을 파내고 불을 밝힌 호박은 즉각적으로 해골바가지를 연상시킨다. 죽음과 종말을 떠올리면 현재의 삶은 더 진하고 달콤해진다. 로마인들은 이천 년 전에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보는 것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그렇게 결합돼 있다." -p90~91

“노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혼자 죽는 것이라고들 답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누구에게도 자신의 죽음이 인지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버려지는 무연사가 가장 두렵다고 한다. 그들은 마치 죽은 뒤에도 살아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에피쿠로스가 이천삼백여 년 전에 통찰했듯이 그런 상태를 바로 죽음이라 한다. 그러므로 혼자 죽든, 함께 죽든 혹은 가족들 앞에서 죽든, 죽음은 우리를 똑같은 상태로 인도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무와 침묵의 세계다.

그런데 '혼자 죽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노인들의 말은 그냥 어리석기만 한 것일까? 혹시 그들은 죽음이 아닌 '혼자'를 강조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인간이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것이라고 읽을 수는 없을까? 죽음은 개별적이다. 탄생은 어미의 고통과 함께하지만 죽음은 홀로 겪는다. 요컨대, 우리는 모두 혼자 죽는다." -p93

“우울증 환자들은 인간이 혼자라는 것, 죽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운명이라는 것을 냉철하게 직시한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현실적이다. '혼자 죽는' 고통을 미리 맛보고 있는 그들에게는 삶이 이미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죽음으로 이 절대 고독을 끝장내고자 한다." - p94

“우주 공간은 죽음에 대한 은유로 쓰기에 딱 좋다. '거기 있다'는 것은 알지만 가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거대한 무와 침묵의 세계로." - p95

“늘 네 곁에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저 찬란하지만 유한한 것들을 죽음이 찾아오기까지 마음껏 즐기라." - p98

“삶이 이어지지 않을 죽음 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청미래, 2012)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 p115 ~ 116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끝없이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바로 우리 일상일 것이다." - p123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고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입니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힘이 들지요."

"비록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어도 좋은 아버지였다고 자부합니다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전파상 주인은 일갈한다. 무슨 소리야? 아이에겐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다.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다.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을 뿐.'" -p170

"가족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되 누구의 말이든 주의 깊게 듣고 보편적인 윤리에 호소한다. 네가 딸이니까 이래야 한다. 당신이 엄마니까 이래야 한다는 당위의 언어는 함부로 동원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구성원에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것을 조심스럽게 요구한다. 가족과 타인을 가르는 기준이 급속히 희미해지는 시대, 그런 아버지가 미래다." -p171

“가정을 해보자. 술을 마시지 않는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밤이 늦기 전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아주 바쁜 사람들이거나 응급한 일이 있는 사람들만 심야의 택시를 이용할 것이다. 손님들은 모두 제정신이니 얌전할 것이고 기사들도 취객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승객들은 시트에 밴 담배 냄새가 자기 옷에 밸까 걱정할 일 없이 쾌적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대중교통이 완벽한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늘 앉아서 이용할 수 있는 버스나 지하철이 그물망처럼 도시를 연결하는 나라의 택시는 부유층이나 이용하는 사치재일 것이다.

범죄 없는 나라의 택시는 또 어떨까. 밤늦게 택시를 타는 여성들이 겁먹을 일이 없을 것이다. 기사를 믿고 잠이나 한숨 푹 자고 나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택시 기사가 대기업의 정규직만큼의 수입을 올리는 나라는 어떨까. 난폭 운전이나 과속은 시켜도 안 할 것이다. 자칫 사고라도 나면 좋은 일자리를 잃을 테니까." -p172 ~ 173

“아무도 좋아하지 않지만 언제나 거기 있는 존재, 그것이 택시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택시는 교통수단 세계의 연옥이라 할 수 있다." - p173

“여집합은 스스로 자신을 규정할 수가 없어 여집합이다." -p174

“연옥은 천국과 지옥 중간에 있다. 로마 가톨릭이 연옥을 창조해낸 것은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만으로 사후세계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연옥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세계다. 지옥처럼 괴롭지도, 천국처럼 행복하지도 않다. 연옥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그곳에 머무는 기간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는 데 있다. 또한 연옥에 머무는 자는 스스로 그곳을 탈출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머무는 곳, 거기가 연옥이다" -p177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우선은 자신이 예측 가능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탐정의 눈으로 자신의 일상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이다. 출근길을 바꾸고 안 먹던 것을 먹고 안 하던 짓을 하며 난데없이 엉뚱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점차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되어갈 것이다. 이런 엉뚱한 연습에서 얻어지는 부산물도 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감수성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 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내버려 둔 존재, 가장 무지한 존재가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p184~185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p209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정연하게 써내도록 스스로를 강제하게 된다. 그렇게 적은 것을 다시 보고 고치는 것이 그 마지막이다. 이 순환이야말로 한 사회와 세상을 온전히 경험하는 방법이 아닐까."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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