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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n 17. 2020

싸우고, 연대하는 이에 대한 이야기.

희정. <여기, 우리, 함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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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정당 운동. 사회운동. '운동'이라 꼬리말이 붙은 일을 5년 정도 했다. 그 기간 동안 가장 고민이 되었던 순간은 '연대'를 할 때였다. ‘연대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다양한 의미로 ‘연대’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에 하나의 의미로 정의하는 것은 내 수준에선 힘들다. 그렇다면 나에게 개인적으로라도 다가오는 의미가 있었을 텐데. 그마저 흐릿하다.


‘연대’를 고민하는 순간보다 연대를 ‘하는 순간’은 편했다. 적어도 고민은 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악, 적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단지 그 명확한 악에게 다가가서 싸우면 될 뿐이었다. 소리 지르고, 방패를 발로 차는 일을 했다. 폭력성을 드러내고, 조금의 스트레스 해소도 되는 그 순간. 나에게 그 순간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명료했다.


 어려움은 적이 물러가고 소강상태가 된 순간에 등장했다. ‘행동’이 끝난 자리엔 적막과 어색함이 맴돌았다. 많은 연대자들이 경찰 방패를 뺏는 일에는 능숙했다. 악에게 분노를 던지고, 대치하는 일에 ‘프로’였다. 하지만 10년째 경찰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간담회라는 이름의 이야기 듣는 시간이 있었지만, 형식적이라 느껴졌다. 가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청년이라 동원 당하는 느낌만 있었을 뿐. 그 존재와 연대하고 있다는 감각과는 멀었다. ‘당사자’라 부르기도 하고 ‘싸우는 사람들’이라 지칭하기도 하는 사람들. 경계를 두고 ‘우리’의 영역에 들어와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지 몰랐다. 그 부분에서 나는 철저히 ‘아마추어’였다.


대부분의 나날을 분노하고 싸웠다. 가끔 오는 적막은 연대하러 온 ‘우리’끼리 보내며 해결했다.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은 나날에 고민했다. ‘연대’는 무엇인지. ‘연대자’와 ‘싸우는 사람’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가끔 적극성이 부족한 내 성격을 탓하기도 했지만, 여기는 대학 동아리 친목 모임이 아니었다. 개인의 성격을 넘어선 ‘연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하던 날에. 세월호 유가족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던 순간에. 청소노동자가 지하철역에 자리를 펼치는 공간에. 택시, 생탁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시작할 때. 장애인들이 시청 앞에 밤샘 농성을 시작하던 날에도. '연대'의 이름을 걸고 그 자리에 있었지만, 늘 고민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나는 도대체 여기 왜 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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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연대'는 일상이다. 직업으로 하지 않더라도, 운동사회에서 연대는 기본이자 가장 큰 미덕으로 치부된다. 싸우는 사람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혼자만의 힘으로는 싸우기 힘들다. 싸우더라도 ‘오래’ 싸우기 힘들다. 그래서 연대를 한다. 연대가 필요하다. 하루라도 더 버틸 수 있게, 하루라도 더 외칠 수 있게. 밥차로 식사를 지원하기도 하고, 의료적 지원을 하기도 한다. 모금을 해서 투쟁 기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운동에서 연대는 너무 중요하다. 운동하는 사람이냐 아니냐의 구분은 ‘연대하느냐 안 하느냐’로 나누어졌다. 연대하는 사람은 곧 운동하는 사람이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연대’는 보통 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첫 출근길에 기자회견에 '연대'하고, '연대' 행사 기획 회의에 참석한다. 단체별 분담금을 입금하고, 저녁에 열리는 '연대' 집회에 참석한다. 매월 큰 투쟁의 날에 '연대'를 위해 전세 버스에 몸을 싣는다. '연대'하는 삶이 일상화되는 것은 얼핏 좋아 보이거나, 위대한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위험하다. 나의 경우에는 위험했다. 가슴 뛰는 연대의 순간은 늘 있지만, 일상이 되어가며 목적도 이유도 흐릿해진다. '연대'하지 않으면 어색해서 길을 어슬렁거리며 팔뚝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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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가 되어가는 속에서 싸우는 사람과 연대자 사이의 조심스러운 차이에 대해 고민을 게을리하게 된다. 일상이 되는 업무에서 차이를 발견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인지도 못하는 속에서 '불쌍한 노동자'를 도와주러 가는 나를 만난다. 너무 나의 일처럼 느껴지는 집회에서 싸우는 사람들보다 앞서서 공권력과 싸우다 싸우는 사람들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싸우는 논리와 근거에 대해 자료는 찾아보지만, 그 마음과 삶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멀기만 하다. 어색하다. '대의' 속에 이루어지는 연대라고 하지만, 그 안에 살아있는 개개인들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든다. 싸움의 최전선에 머리를 들이밀고  ‘투사’로 불리는 모습에는 반응하지만, 좌절하고 무너지는 아주 당연한 인간적인 몸부림에는 당황한다. 긴 싸움에 얼룩진 노조 깃발에 연대를 하러 가지만, 깃발을 쥐고 있는 노동자의 손에 새겨진 상처에 대해서 무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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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깃발을 쥐고 있는 노동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다고 '불쌍한' 노동자의 강변을 줄줄 받아 적지 않는다. 의심하고, 회의한다. 그들을 시혜적으로 내려다보지 않고, 평등한 존재로서 대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공감하려 노력하되, 하나가 되는 것을 경계하며 거리를 둔다. 싸우는 사람과 어떻게 만나고 관계 맺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매 장마다 가득하다.


그 고민은 싸우는 사람들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연대자’라 부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다시 물어본다. “왜 연대하세요?”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싸우는 사람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될 정도가 되어서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 과거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팔을 걷어붙이고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밥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연대자와 싸우는 사람 사이의 평등한 연결을 꿈꾸는 사람. 100명에게 물어본다면, 100가지의 대답과 이유가 나올 만한 이야기다.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들은 ‘연대’하지 않는다. 알려고 하지 않거나, 무시하거나, 무관심하다. 그러니 ‘연대’하는 사람들은 개개인의 특별한 계기가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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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알려진다. 싸움이 처절해서든, 승리해서든.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서든. 상대적이지만 그곳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덜 알려진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의 싸움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니, 중심이 되기 어렵다.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대하는 이야기가 덜 중요하지도 않다. 우리 모두가 싸우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지만, 누구든 연대하는 사람은 될 수 있으니까.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가득하면 결국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불쌍하고 특별난 사람들 이야기라 치부하기 마련이다. 그들에게는 싸우는 이들 옆에 나와 비슷한 싸우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싸우지 못해도 함께 서 있을 수 있음을 약간이나마 배울 수 있다. 가끔은 누가 싸우냐 보다, 누가 연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난 그래서 함께 연대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사회에 더 필요하다고 믿는다. 어쩌다 연대를 하게 되는 사람은 있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단발적인 시혜가 되기 십상이다.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저렇게 안되면 좋겠다’는 삶의 알리바이를 가져가는 일은 사회에서 자연스럽다. 싸우는 이들의 대상화하고 내려다보지 않고 ‘함께’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중하다. 내 일이 아닌 것에 어떻게 ‘우리’라는 표현을 쓰고 ‘함께’간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대체 ‘연대’를 왜 하는지에 대해서.




* 줄친 문장.


"내가  발 딛고 사는 곳이다. 오체투지 정도의 일이 아니면 오지 않는 카메라를 떠올린다. 카메라에 찍힌 모습을 언론에서 접하는 순간 사람들은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잠시일 뿐이다.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을 나의 역할로 삼지만, 듣는 이야기는 토막일 뿐이며 머무는 순간은 짧다." p6


"고개를 돌리지 않고 빠르게 걷는다. 동네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그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어올까 봐. "요즘도 그래?" 하고 물어볼까 봐. 낮에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속에 있어도, 세상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그는 답 없는 싸움을 하는 답답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수군댄다. 뭐가 저리 꼬여서, 드세서, 한심해서 포기를 못하고 계속 저러는 건지." p7


"싸우는 사람들은 하늘에 오르고, 땅에 온몸을 붙이고, 수십 일을 굶고 나서야 세상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질문을 받아내기 위해 그런 일을 한다. 그러나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들은 답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들은 묻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지나치고 감내하고 넘어가는 일들을 들춰내 묻는 사람." p9


"그럴 때가  있다. 잘 지내냐는 말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 그 질문을 던져올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는 날들. 그렇게 혼자가 된다. 사람들은 그걸 고립이라 부른다.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잘 지내려고 한다. 싸우는 사람들은 승리하려고 한다. 승리만이 잘 지내지 못한다는 의심을, 싸우는 동안 받은 무시와 멸시ㅣ의 눈빛을, 내 안에 자리 잡은 모호한 죄책감을 털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나 승리는 한 번에 오지 않고 싸움은 길어진다." p10


"잘 지낼 수 없는 사람들은 '잘 지내요?'라고 묻지 않는 사람 옆에 있고 싶어 한다. 자신의 처지를 길게 설명하여 납득시킬 필요가 없는 사람. 세월호 참사를 겪은 유가족을 만나 그들의 구술을 기록해온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세월호 부모님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지 않는다고. 안녕할 수 없는 사람에게 안녕을 묻지 않는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내줄 수 있는 작은 품이다." p10


"사람들은 함께라면 춥지 않다고 말하지만, 실은 춥다. 외롭게 춥지 않을 뿐이다. 솔직히 외롭기도 하다. 결국 나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연대란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일이라고 하지만, 함께 젖는다고 싸움에서 꼭 이기는 것은 아니다." p11


"그럼에도 함께 비를 맞는다. 이 무용하면서도 가치 있는 일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연대란 함께 도모하고 함께 이행하고 함께 책임지는 것이다. 왜 '함께'하느냐고 물으면 때로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게요. 왜 함께하는 걸까요?'" p11


"내게 연대자란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던진 질문에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어떤 답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의 옆으로 왔을까." p13


"어차피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몸이다. 다른 세상은 없다. 그러니 지금 최선을 다해 버티는 것이다. 싸우는 데 뭐 그리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할까." P27


"싸움은 무언가를 '지킨다'라는 말과 함께한다. 그 '무언가'는 생존권, 정의, 의리로 말해지기도 한다. 모든 싸움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P40


"그 결과 노동시간이 많게는 하루 16시간에 이르렀다.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으니, 택시는 더 빨리 달린다. 돈 되는 손님을 받으려고 한다. 택시는 총알이 되고 난폭운전의 상징이 됐다. 시민 안전을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제일 먼저 목숨을 위협받는 이는 노동자 자신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1명이 택시 운전사라고 한다." P41


"세상은 택시 노동자들의 스피커 볼륨도 조절했다. 불친절 꼰대 기사로만 이미지를 가두고, 어떤 변명도 사정도 말하지 못하게 한다. 어떤 집단의 스피커 볼륨을 낮추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말하는 자에게선 권리를 빼앗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P55


"세상이 하찮게 취급한 누군가의 격변기를 그냥 지나치는 일이 쌓이면, 결국 내 삶에 소리 없는 격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일하는 사람이니까." p57


"밥은 힘이 있어요. 장기 투쟁 사업장은 해결이 안 돼서 싸움이 길어지는 곳이잖아요. 밥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차려먹을 힘조차 없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알고 같이 밥을 먹자 그래요. 그럼 알게 되는 거죠. 나를 잊지 않았구나." p66


"즐거운 일이 일어나기 위해선 누군가가 자리를 지키고 품을 내야 한다. 풀잎은 밥통 차량인 1톤 탑차를 몰았다. 운전만이 아니다. 주재료 손질, 식기 정리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사람은 밥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리고 밥이 지어지는 과정은 노동 없인 이뤄질 수 없다." p68


"우리는 이러저러한 모습을 흔들림 없이 지켜보는 사람이에요. 다 목격하지만, 평가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그냥 있어주는 존재." p70


"밥차도, 연대자도 잠시 머물다 떠나간 장소를 지키며 이 순간을 자신의 인생으로 안고 가야 하는 투쟁 당사자들. 그 무게를 지닌 이들에 대한 존중을 일희일비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는 태도로 표현하는 걸까." p70


"고기에는 권력이 있다. 인간이 생물종을 줄 세우듯 고기에도 위계가 있다. 밥이 보살핌과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을 환기시켜주는 존재라면,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 가진 권력은 그 감정을 더 부각시켜준다." p73


" 현장과 나를 맞춰간다. 당신도, 나도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다." p73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p73


"궂은 날씨에도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먹이는 일만 일이 아니다. 먹어주는 행위도 일이다. 입맛이 없을 수도, 입에 안 맞을 수도 있다. 길에서 먹는 밥이 꿀맛일 리가 없다. 먹는 사람도 먹어주는 것이다. 밥을 해오는 마음을 알기에. 서로가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 하는 행위가 뜻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에 어쩌면 당사자들도 연대를 하는 것일지 모른다." p74


"타인의 노동이 눈에 보이는 순간 우리의 연결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그 연결이 나를 배부르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으로 시작된다면, 그건 정말 '따신'일이겠다. 밥처럼." p74


"정작 서러운 것은 라면이 아니라, 라면을 먹는 생활에 치여 하나둘 떠나간 동료들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겁 없어 보이는 그이지만, 인생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제일 무서웠다고 한다.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할 수 있으니까. 떠나가는 동료를 잡지 못했던 그때와 다르니까.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한다고 했다. 떠나가지 않는 일. '떠나가지 않음'이 어쩌면, 그의 즐거움일 것이다." p81


"연대자는 떠나야 하는 게 맞잖아요. 투쟁은 끝나야 하니까." p81


"이 밥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누구든 싸움을 멈추고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p81


"여태까지 내가 생각한 연대란 뭐였을까?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에선 약간 시혜적인? 내가 좀 여유가 있어 나눠준다? 그날 경험으로 내가 그리던 연대가 공상적인 것이었다는 걸 깨닫고, 연대에 대한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던 거 같아요." p85-86


"타인을 편리한 방식으로 상상하지 않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철학자 수전 웬델의 저서 <거부당한 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다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상상할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의 주체성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넓히려면 그를 하나의 주체로 올곧게 인식해야 한다. 나와 같은 일상을 누리고 서로 관계 맺는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보인다. 밥을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는 행위는 상대를 제대로 상상하겠다는 노력이다." p86


"사람은 평등할 때 존귀하다. 밥상을 차려 대접하려는 마음, 거리에서도 정성껏 먹어주려는 마음, 밥을 짓는 노동을 같이하려는 마음, 밥상 앞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마음. 그 마음들의 공평함이 사람을 존귀하게 한다. 마치 밥처럼." p90-91


"서울대는 서울대끼리의 평등이 있고, 연고대는 연고대끼리의 평등, 서울 4년제 대학은 4년제끼리의 평등이 있다." p142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다니는 일터를 '회사'라고 부른다. 그렇다. 회사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회사에 다닌다'라는 이야기가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제조업에 종사하는 생산직 노동자가 '회사'에 다닌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 보고는 '공장 다닌다'라고 말한다. 육체노동자의 직장은 '회사'가 될 수 없다. 이들이 하는 일은 '노동'이다. 그런데 '공장에 다니는' 생산직 노동자들은 자신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부르지 않는다. 자신은 회사에 다닌다. 자신이 하는 일도 '노동'이 아니다. 그러면  누가 노동을 하나? 건설 현장 같은 곳에서 하는 일이 '노동'이다. 하지만 건설 현장 사람들도 자신의 일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자신들의 일을 '노가다'라고 비하할지언정, 그것은 '노동'이 아니라 '기술'이다. 이들 역시 '노동'은 건설 현장에서도 날품을 파는, 기술이라고는 가진 것 없다고 여기는 단순 일용직에게 해당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P143


"언제 어디서나 '노동'을 한다는 사람은 따로 있다. '나'는 아니다.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사람도 따로 있다. 그건 '나'다" P143


"객실 청소는 '그런' 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인사이동을 통해 '모욕'을 느낀다. 회사는 그들이 받을 모욕의 정체를 안다. 그런데 나는 발령을 받고 울었다는 이에게 공감하면서도 의문했다. 청소 업무는 '울 일'인가. 눈물 흘린 사람을 지탄하는 게 아니다. 누가 감히.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리고 읽는 사람들도 판촉 팀장을 컨시어지부로 발령 냈다는 문장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판촉 팀장을 '벨보이'로 보냈다고 하면 놀라워한다. 이 둘은 같은 말이다. 노동의 위계는 직위나 고용 형태(비정규직), 직무, 공간 모든 곳에 존재한다. 암묵적이고 광범위하다." p144-145


"실직하면 가장 먼저 날아오는 우편물이 (직장 보험에서 변경된) 지역 건강보험 납부 고지서다. 지불 없인 생존도 없다." p149


"기다리는 일은 잘린 사람들에게만 힘든 일이다. 집세도 식비도 공과금도 어느 것 하나 기다려주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들만 기다려야 하나,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이 떠났다." p153


"여기 나가도 어차피 비정규직이다. 이 말이 제 마음을 흔들어놓은 거예요.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쫓겨날 거다. 지금 가면 도망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도망친 곳은 어차피 비정규직이다." p157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대체 가능'이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사람." p160


"'대체 가능한' 일회용 사람에게 '선택'을 맡기는 회사는 없다." p161


"선택에는 고려가 따른다. 무엇을 고려할 것인가를 또다시 선택해야 한다. 노동조합에 남은 22명은 선택 과정에서 '우리'를 고려한 적이 더 많은 사람들이다. 나 하나 나가면 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타인을 고려하며 자신의 선택을 내리는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고유한 주체가 되어갔다. 누구도 그 자신을 대체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p165


"이 사회는 버틸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기를 쓰며 버티면 다른 목적이 있거나 뭘 노리는 사람으로 매도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버틸 수 없다는 걸 아니니까. 버틸 수 없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그것을 우리는 '구조'라고 부른다." p168


"물론 싸움의 동력은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인 나와 너, 우리다." p168


"그런 돈을 포기하고 벌이 없이 몇 년을 싸우는 일이 고단하다는 것을 떠나 스스로에게 얼마나 잔인한 결심인지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싸움에 뛰어든 사람은 가족에게 등 돌린 사람이 된다.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비난은 잔인하지 않다. 죄책감이 잔인하다." p173


"자신들이 싸우는 이유는 가려지고 악쓰는 모습만 비칠까 봐 걱정한다. 세상이 '아줌마'의 '막무가내'를 조롱하니까. 그러고 보면 '아줌마'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씩씩할 수 있을까 싶다. 중년 여성에 대한 매도와 무시가 이렇게 공공연한데. 무시에서 벗어나려면 '돈'이 있거나 '돈'으로 형성한 젊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자원이 없다. 3교대 근무와 고속도로 매연 속에서 그들의 젊음은 사라졌다." p178


"책임질 '가정', 그러니까 버틸 이유가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는 환경이라고 했다." p179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부르지만 대부분 '누군가'가 '일정 시간 훈련'과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속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개척하든 전수 받든, 노하우를 쌓고 숙련해야 한다. 그러니 '세상에서 내 일이 제일 어렵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단순 반복 업무'라는 용어는 세상에 그런 일이 다수 존재한다는 환상을 만든다. 대체 가능한 사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대체 가능성, 유연성, 탄력성이라 부르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네 글자로 읽힌다. 고용 불안." p183


"수납 노동자들에게 시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시키는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자 멈췄다." p191


"세상이 특정 집단의 희생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비정규직이니까. 잘리고 불안한 것은 이들의 숙명이니까. 대체되지 않을 능력을 키우지 못한 사람(단순 업무 종사자)에게는 희생이 당연히 요구된다고 했다.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사라질 수 있다." p199


"수십 년에 걸친 수납원들의 노동이 없었으면 지금의 도로공사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p199


"대량 해고를 두고 정부 관계자나 펜을 가진 사람들은 4차 혁명 등을 들먹이며 이것이 첨단의 문제임을 말하려고 하지만, 이는 노동에 대한 편견과 비하라는 오래되고 낡은 패러다임의 반복일 뿐이다." p200


"자신들이 옳기에 싸워도 즐겁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싸우는 노동자들이 즐겁다고 한 말을 고스란히 믿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즐거움이란 뭘까. 우리는 행복과 불행으로 인생을 나누는 법을 배워왔다. 다른 가치로 나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 행복하지 않으면 '시발 비용'이건 무엇이건 돈을 주고 행복을 구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도로공사 정규직의 1인당 평균 보수가 8,100만 원(평균 근속연수 16년)이라는 기사를 봤다. 많이 받아 나쁘다고 말하는 것도, 부럽다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행복을 거리를 두고 볼 뿐이다. 떳떳함은 왜 행복만큼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가치가 되지 못할까. "행복하세요?" 그래도 나는 미련이 남아 톨게이트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p201


"불안하지 않아. 그래도 사람인지라 내가 어떻게 복귀해 싸워야 할지 걱정은 하지.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가 싸우던 힘이 어디서 나왔겠느냐고. 내 속에서 나온 거잖아요. 싸움의 원천은 내 속에서 나오는 거거든." p203


"경찰이랑 대치하고 있을 때, 옆을 이렇게 보면 옆 사람과 서로 얼굴 쳐다보게 되고, 동료 얼굴 보고 웃어요. 그러면 그 동료로 나를 보고 웃어요. 아, 우리가 같이 성취해 손잡고 들어갈 수 있겠다고 느낄 때 힘든 게 싹 녹는 거 같아요." p204


"우리가 지키려는 했던 것은 단지 '직접 고용' 네 글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 네 글자였다." p204


"그래도 그 네모난 한 평짜리 세상, 톨게이트 수납 부스에서 즐거웠다고 했다. "부스 안에서 모든 책임은 내가 갖는 거야. 그 작은 세상에서 내가 주인이 되는 거고." 다른 이도 그랬다. "부스 안에서 마시는 커피가 제일 맛있어요." 오롯이 내 공간이라서 그런 것이었다." p207


"시험 쳐서 직접 고용으로 들어오라고오? (...) 왜 시험이 유일한 방법이어야 합니까? 수납 일은 우리가 프로예요. 시험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라고요." p210


"나는 이편이 더 마음에 든다. 말도 없이 집을 나와 자식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겠다고 호언하는 것보다는(많은 '아버지 노동자'들이 이 서사를 버리지 못한다.) p209


"연대와 지지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싸우는 이들과 같은 공간을 쓸 필요는 없다. 나에게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행위는 같은 '시선'에 놓이는 일이었다. 때로는 시선은 상처가 된다." p217


"입장에  따라 시각이 달라진다. 콜트 콜텍 노동자와 예술가들의 입장은 같지 않았다. 부정해보아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연대를 한다지만, 각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각자 다른 위치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자리한 위치가 다르면 보는 것 역시 달라진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 차이가 서로를 만나게 했다. 한 공간에서 다른 쓸모를 보고 다른 지점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관계가 시작됐다." p222


"좋은 이웃이 되는 전제 조건은 '측은 지심'을 갖지 않는 것. 관계는 평등해야 발전하는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위아래를 만들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 어쩐데'라는 시선은 '저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시선을 거쳐 '이제 그만하지'로 연결된다." p224


"아무리 이웃어어도 위계가 없는 진공 상태를 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먹었다. 쉽사리 친해지진 않기로, 관계가 평등해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기에,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고 인정하고 평등해지는 시간을 기다렸다. 굳이 과하게 친절하려고 하지 않았고 섣불리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p224


"나를 덜 외롭게 하는 이가 친구이고 이웃인 것이다." p227


"연대를 이렇게 결론 맺는다. 자기 삶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연대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가 나를 성장시키고, 서로의 존재가 북돋움이 되어 나의 삶을 지켜준다." p232


"콜트 농성장에서 예술과 노동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각자 선 자리가 달라 서로가 필요했던 것처럼, 예술과 노동도 각자의 자리에서 주고받음이 가능해지자 경계를 오고 갈 수 있었다. 해고 싸움을 하며 기타를 처음 잡았다는 노동자들이 붓을 잡는다. 노동이건 예술이건 모두 사람 손을 빌려 함께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p233


"새벽 3시는 불교에서 예불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변환의 시간이다. 달래고 위로하고 기원하고 예견한다. 어둠 속에서 새벽을 기다린다. 싸우는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새벽을 맞는 꿈을 꾼다." p234


#영화<꿈의 공장>


"꼭 오라는 말이, 좋았던 시절이 기억나니 보고 싶다는 말 같았다." p238


"싸우는 사람들 근처에 서면 묘한 죄책감이 든다. 부채감이라고 할까. 함께 비를 맞는 일을 연대라 하지만, '우리'는 '그곳'을 떠나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간다. 저들은 여전히 비를 맞고 있는데 나는 집에 가서 뽀송한 이불을 덮는다. 그렇다고 농성장 침낭 속에 들어갈 수도 없다. 여기 이곳에 내 일상이 있으니. 그럼에도 함께 비를 맞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나와 그들의 처지가 온전히 같을 순 없다. 다름이 부채감을 만든다." p239


"그에게 왜 연대를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 사람의 일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도 참혹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더는 안 보고 싶어서 간다고 했다." p243


"그분들 싸우는데 젓가락이라도 들 수 있다면 좋은데, 마침 제가 할 수 이는 콘텐츠가 있는 거죠. 음악이라는. 아주 단순한 맥락이죠. 나름대로 떠들고 소음을 일으키고, 젓가락 두들기며 노래하는 거, 용역과 싸울 때 악다구니 쓰는 거와 같은 맥락이죠. 투쟁에 양념을 치는 느낌?" P246


"음악이라는 기술 재능이 있으니, 이를 '써먹어' 싸우는 사람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들의 공동된 정서다. 음악은 무기죠." p246


"사람을 조직하고 행사를 기획할 줄 아니까. 투쟁 현장을 보면 저기 가서 도움을 줘야지. 할 줄 아니까. 어떻게 보면 책임감이지만 한편으론 자만심인 거예요." P249


"지금도 여기 아침에 문을 여는 가게를 보면, 사람들이 하루 장사를 준비하려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눈에 보여요. 하루 13, 14시간씩 일하는 사람들. 빚과 월세의 무게에도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발버둥 치는지. 그런 앎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거죠." p250


"이 사람이  쫓겨나서 슬프겠구나 정도가 아니다. 이 사람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기울인 숱한 노력과 삶, 그리고 그 삶을 위협하는 원인을 알기에 슬픈 거다." p250


"그가 화가 나는 건 세상 때문이다. 재개발이 완료되고 고층 건물이 올라간 동네가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바닥'이 그의 눈앞에 보인다. 인생을 살다가 바닥에 몰리게 되는 사람들끼리 멱살 움켜잡고, 선하게 살 수 없게 하는 세상이 있다." p255


"강도를 당해 쓰러져 있는 사람이 천사일 수 있다. 쓰러진 사람이 있어야 돕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를 함께하게 함으로써 하늘의 뜻을 이루게 했다는 이야기다." p256


"그들은 같이한다. 비슷한 고민, 동일한 활동을 하는 동료가 옆에 있다. 그들 말대로 좋은 동료와 고민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덕분에 오늘의 소모가 내일로 미뤄진다. 조금은 줄어든다. 하지만 해결책은 따로 준비해야 한다. 좋은 사람과 함께 고민한다. 소모되는 일을 없애기 위해선 무엇이든 필요하다." p260


"한 시간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과 느끼는 온도가 다르고, 계절이 다르고, 일상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다. 세상과 타인이 되어 거리에 선다." p278


"세 차례나 같은 사람을 해고시키는 회사가 드문 까닭은 세 번을 복직해 돌아오는 노동자가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경우 첫 해고 때 포기한다. 그러니 두 번, 세 번은 없다. 그들이 당한 세 번의 해고는 매번 싸워 이긴 결과다. 자기 자신을 지킨 결과, 그 결과가 점점 잔인해지는 것은 그들 탓이 아니다. " p279


"뭐 하나 갑의 자리에 놓일 게 없는 사람이 이토록 당당하다. 갑질이 통하지 않는다. 잘릴까 봐 겁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잘려봤으니까. 그런 사유로 해고하는 일이 부당함을, 아니 부정당하면 싸워 다시 돌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아니까. 부조리를 가늠하는 눈과 '깡'이 생겼으니까." p 29


"위기는 일상이 됐다. 인생이 위기이고, 늘 자신을 관리하는 삶이 일상이 됐다. 실업과 실직은 자기 관리를 하지 않아 생긴 결과이고, 비정규직은 어느새 '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p284


"김양순은 말한다. '내가 사표 내고 싶을 때 낼 거야'. 회사가 숫자 계산을 하며 내보낼 때가 아니라 자신이 더는 ㅣ일을 하지 못하게 될 때, 그때 나가겠다고 했다." p286


"나도 억울한 거야. 동화된 거지. 이게 타인의 죽음이 아닌 거예요. 우리도 젊었지만 더 어린 죽음을 아주 가까이에서 겪으니까. 이 감정은 무얼까. 동화라 표현하기에는 과하고, 공감이라 하기에는 약하다. 이런 감정을 느끼기에 사람들은 연대를 한다." p324


"서로 실존으로 만나는 것 같은 때가 있어. 나도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성장하고 위로받고. 내가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혜경은 나한테 그런 존재라 생각해요. 날 엄청 깊이 있게 믿어주는 사람. 그게 엄청 소중한 거더라고요. 내가 힘들 때 혜경한테 전화를 하면, 목소리만 듣고도 힘들어서 전화했구나 말해줘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감동이죠." p325


"나의 손을 잡아준 사람을 찾아 돌고 돌다 보면 결국 모두가 손을 맞잡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 손이 '나'를 변하게 한다." p333


"절망이든 피해든, 세상에 변하지 않고 멈춰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절망적 상황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절망만을 부각시키는 시선이 피해를 고정시킨다. '아픈 사람', '가련한 피해자', '비통한 부모', '눈물짓는 어머니'의 모습으로만 그들을 묶어두는 말은 당사자를 세상과 만나지 못하게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묶어둔 대상을 오래 보지 않는다. 고통에 머무는 사람을 오래 보는 일은 내키지 않으니까. 잠깐 보는 존재이니, 이들의 삶을 볼 필요가 없다. 세상은 두 피해자의 부모가 울지도 주저앉지도 않고, 토론회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속닥거리는 장면을 볼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p338


"사람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이 될 수는 없는지를 생각한다. 반올림을 만난 후 한혜경은 '엄마 나 수술 시키지 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지원과 이해는 사회의 몫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연대를 하는 거겠지. 곁이 될 용기가 없어, 당사자의 옆에 늘 있을 자신이 없어, 내가 사는 사회가 곁의 노릇을 하길 바란다. 그런 사회를 바라기에 오늘 연대를 한다." p340


"대학생에게는 전태일의 친구가 되는 것이 어느 정도 '내어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시간과 품을 들여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아는 일. 하지만 어쩌면 전태일의 세상은 그에게 '알지 않아도 되는' 세계다. 특정 세계를 '알 필요도 없는, 몰라도 되는 일'로 만드는 힘은 구조에 있다. 그렇다면 알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아는 것은 판단과 선택, 그러니까 정치의 문제다. 어떤 사건, 사람, 세계를 알아가는 일에는 판단과 선택이 따른다.


누구와 친구가 될 것인지도 선택의 문제다. 사람들은 각자의 필요와 이유에 따라 친구를 맺는다. 다양한 방식과 위치에서 맺는다. 다만 전제를 둔다. '나는 네 편'이라는 것. 편도 들어주지 못할 거면서 어떻게 친구가 될까.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을지 선택해야 한다." p344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시키는 이 말은, 실은 세상이 양쪽으로 나뉘어 있음을(또는 그렇게 인식함을) 반어적으로 보여준다." p345


"노동자를 그저 만나는 일조차 꾸준함이 요구된다. 만나는 것, 보태는 것, 내어주는 것, 자신의 연대를 그 가운데 무엇으로 인식하든 내주어야 하는 게 있다." p353


"내 마음을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곳에 두기 위해서는 뛰어야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무엇을 보태거나 내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머물 수 있다. 뛰는 일에 흥미가 있다면 다행이다. 함께 뛴다면 더 좋다. 그렇게 버틴 자리에서 관계를 맺어나간다."p354


"한 사람에게 닥친 법적 문제는 언제 끝나나. 그 사람의 억울함이 끝나야 끝난다. 시효도, 판결도 끝이 아니다. 법이 수학공식이 아닌 이유는 법을 적용받는 대상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식에 맞춰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p360


"나는 전태일과 조영래가 실제로 만났다면 친구가 되었을지 의심한다. 더 많이 내어준다고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내어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위계도 알기 때문이다. " p362


"단기 계약직은 회사 내에서 상사 욕을 하지 않는다. 같이 상사 욕을 할 정도의 관계는 어느 정도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데, 그럴 만한 상대가 없다. 계약직 동료가 적은 아니다. 다만, 언제 어디로 어떤 사람이 옮겨갈지 모른다. 업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쉬는 시간에도 이야기해야 할 만큼 주도적으로 쥐고 있는 업무가 적다. 서로 협조할 것도 적다. 마이크로 노동이라 했던가." p366


"정규직 노동자는 해고되고, 비정규 노동을 하던 이는 사라졌다. 두 사람은 닮은 꼴이다. 고용 형태가 다른데도 자꾸 나풀나풀 가벼워지라는, 아니 저렴해지라는 노동시장의 요구를 받다 보니 닮아버렸다."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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