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 이야기
태어날 때부터 털이 많았다. 아빠 왈 '너무 시꺼먼 것이 나와서 놀랐다'. 이 특성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되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털이 빨리 그리고 많이 자랐다. 정신차리면 다시 원상복구였다. '깨끗한 머리'를 지상명령으로 여기던 할머니와 아빠는 결단을 내렸다. '남자는 이마를 까야 인물이 산다. 그래서 머리를 민다' 그 결단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내 머리스타일을 지배했다. 난 태어나서 16세 3월까지 머리털을 길러본 적이 없다. 항상 10미리 반삭스포츠였다. 요즘 군인들 머리보다도 짧았다. 이마저도 미용실도 아니라 15년 내내 동네 목욕탕에 있는 이발소에 갔다.
유치원 졸업앨범부터 초등학교 졸업사진까지 키는 커지고 얼굴은 변하지만 머리털 모양은 그대로다. 머리털은 내 몸에 붙어있었지만 내 의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보기 좋음과 아빠의 남자다움의 합작이었다. 이발소에서 머리털을 미는 일은 즐겁지 않다. 알몸으로 머리털을 밀고있으면 동네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조롱했다. 완성된 머리털도 조롱의 대상이긴 매한가지라서 학교가면 한동안 놀림 받았다. 그 일도 한 10년이 넘어가니 익숙해졌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드디어 아빠와 할머니가 머리털에 대한 점유권을 나에게 넘겼다. 처음으로 앞머리가 이마를 가리고, 구랫나룻이라는 장소가 생겼다. 남들과 비슷한 머리가 생겨서 기뻤다. 이내 두발단속이 시작되면서 머리털은 다시 스트레스 덩어리로 전락했다. 두발 단속하는 선생들의 기준은 딱 할머니와 아빠였다. '지저분함' 같은 머리라도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머리를 잡았다. 생머리에 머리가 빨리자라는 나는 학생부장의 타겟이었다. 반곱슬이들은 상대적으로 단정해보이는 덕에 살아남았다.
스포츠반삭이 되지않는 선에서 두발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커트가 아닌 부분적 제거가 필요했다. 완전 생머리인 내가 옆머리 조금 뒷머리 조금 자르면 양 옆에 날개가 생긴다. 머리가 붕뜬다. 양옆을 날리고 뚜껑만 살아있는 이 형태를 '귀X컷'라고 불렀다. 난 그 머리의 선구자였다. 요즘은 이와 비슷한 머리를 투블럭이라고 부르는데 볼 때 마다 놀랍다. 10년 전만해도 조롱의 대상인 머리였는데 말이다.
내 나이 27살이니 15년을 스포츠반삭으로 살았고, 5년은 '귀X컷'이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펌을 하고 머리스타일이 생겼다. 이전까지는 스타일보다는 털 관리에 가까웠다. 4년간은 펌을하고 긴머리였고, 3년 정도는 투블럭펌을 했다. 중간에 가르마펌을 시도했으나 개그의 소재가 되었다. 완전 삭발도 한번했다. 어쨌든 내 머리털의 가장 최신형태는 두발단속당하던 시절머리에 펌을 한 정도다.
머리가 워낙 금방 자라고 미용실이 무서워서 자주 안가는 사람이라 금방 덥수룩해진다. 외형을 떠나서 머리가 무겁다. 앞머리는 걸리적 거리고 머리털을 타고 떨어지는 땀이 안경을 가린다. 폭염이 길어지고 심해지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너무 화나는 머리다. 바꾸고 싶다. 앞머리를 없애고 웬만큼 자라도 깔끔한 길이를 유지할 수 있는 짧은 머리. 현재 꿈꾸는 머리털의 이상향이다.
내 짧은 머리털의 상상력은 스포츠반삭에서 멈춰있다. 이상해 보이지 않는 짧은 머리는 무엇이 있을까. 머리털 스타일 고수님들의 조언이 필요하다. 아니면 계급제로 운영되는 비싼 미용실로 가보아야하는가. 일생의 고민이다. 앞머리가 너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