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부를 많이 안해서 감수성이 부족하다 생각했다. 다시 생각한다. 감수성이 부족해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늘 스스로를 폭력의 피해자로 규정지었다. 난 폭력의 피해자다. 그 사실이 내가 폭력적인 문화에 저항하거나 반하는 감수성을 가지게 해주지 않았다. 난 폭력에는 더 큰 폭력으로. 힘에는 힘으로. 학교 양아치를 지역조폭이 제압하고 조폭을 검사가 제압하는 광경을 즐긴다. '사이다 영상'이라고 떠돌아다니는 폭력 영상을 보며 꽤나 큰 쾌락을 느낀다.
난 압도적인 힘이 작동하는 순간에 희열을 느낀다. 노동자 집회에서 눈물이 흐를 정도의 감동을 받는다. 거대한 조직이 동반하는 거대한 힘에 반응한다. 굴러다니는 한남마초들보다는 나은 인간이라 믿지만 실상 그들과 나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의리있는 깡패의 신화' 정의로운 깡패의 영화를 보면 속이 후련하다. 부하에게 쌍욕을 하며 머리를 내려찍는 형사반장의 이야기가 익숙하다. 법복과 정장으로 상징되는 사법권력의 행사가 흥미롭다.
난 마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폭력성을 동반하는 단일한 대오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다. 운동은 조직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나에게 조직은 '조직폭력'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내 감수성을 구성하는 이 폭력성이 평등, 다양성, 개별성에 대한 극도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다른 운동은 다른 감수성에서 출발해야한다. 다른 삶도 마찬가지. 나에겐 새로운 감수성 공부가 필요하다. 평등하고 다양한 개인들의 연합으로서의 조직. 각각의 개별성을 뭉개버리지 않는 조직. 폭력을 동원하지 않는 운동. 맹세와 충성보다는 합의와 토론 그리고 책임으로 움직이는 운동.
머나먼 여정이겠지만 일단 폭력을 끊어야겠다. 폭력 중독을 치료해야겠다. 화합과 통합이 싫어 폭력을 유발했던 과거가 떠오른다.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는 분명 맞은 사람이지만. 내가 때리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때리지 않는 사람부터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