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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Oct 12. 2019

인심도 없는 편의점

편의점을 비롯하여 수 많은 서비스업 노동자들은 친절을 강요받는다. 시공간의 통제는 물론, 정신과 표정까지 고용주에게 완벽하게 통제 당한다. 특히, 백화점이나 영화관 등의 노동자들은 인사하는 기계로서의 삶을 강요받는다. 편의점은 어떨까.
물론, 편의점도 친절하면 좋다. 고용주들도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한다고 교육한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친절은 하면 좋은 옵션사항이지 의무사항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과도하게 친절한 편의점 노동자는 오히려 가게에 손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편의점을 인심 좋은(인심이 좋아야하만 하는) '동네 슈퍼'로 인식한다. 특히, 실질적인 매출을 담당하는 중년층의 고객들은 편의점에서 인심을 찾는다. 물건을 사지도 않고 한 번 뜯어본다거나, 비닐봉지를 서비스로 달라거나, 행사를 하지 않는 제품을 할인해서 달라는 등의 요구를 한다. 이런 고객들을 거절하지 않고, 친절하게만 대하면 포장을 다 뜯긴 물건은 팔지 못하고 창고에 처박히게 되고, 재고는 늘 맞지 않는다. 봉투값 때문에 수백만원씩 벌금을 물어서 가게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

'동네 슈퍼'는 대부분의 경우에 '노동하는 자 = 소유주'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노동을 한다. 실 소유주가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친지들이 일을 한다. 관리 시스템도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다. 반면에, 편의점은 9할이상의 경우에 소유주와 노동자가 다르다. 노동자는 자신이 노동하는 가게에 대해 단 1%의 지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손해가 발생하면 해고되거나, 임금이 삭감된다. 인심은 손해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더 높은 매출을 위해서 행할 수 있는 일종의 마게팅전략이다. 노동자는가게의 마케팅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없다. 당장의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해서 장기적으로 매출이 증가하더라도 당장의 손해가 발생하면 안된다. 노동자는 장기적인 매출의 증가로 부터는 아무런 추가 수입도 얻지 못하지만, 당장의 손해로부터는 즉각적인 처벌을 받는다.

상황은 점주들도 잘 알고 있다. 편의점에 처음 취직하면 배우는 교육의 대부분은 친절하게 대하는 기술보다는 손님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방법이다. 처음에 기본적인 인사와 계산 멘트 정도는 배우지만 그 이상의 교육은 하지 않는다. 계산 실수를 하지 않는 법, CCTV를 통해서 손님이 물건 훔치는지 안 훔치는지 감시하는 법, 환불 진상에 대처하는 법, 담배시재 틀리지 않게 계산하는 법 등을 집중적으로 배운다. 손님의 끝없는 요구를 단호하게 처내고,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일이 편의점에서 제일 중요한 손님 응대법이다.

편의점은 매우 좁은 범위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그 위치에 따라 대강의 매출이 정해져있다. 노동자가 친절하다고 1시간씩 차를 타고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오지 않는다. 오는 손님도 이 편의점에 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온다. 소비자가 선택해서 편의점을 오지 않고, 가게가 존재하기 때문에 손님이 오게되는 형식이다. 그렇다면, 편의점이 집중해야할 일은 오히려 정해진 매출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물건이 빵꾸나지 않고, 계산에 실수가 없어야한다. 어떻게 불필요한 손해를 줄여야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편의점 노동자의 친절은 오히려 가게의 매출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당장 기분 좋아서 베푼 친절 하나가 동네에 퍼지고, 어느 순간 당연한 문화가 된다. 20원 봉투값을 처음 받던 시절에 당시 일하던 가게는 봉투값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 어느새 모든 사람들이 봉투값을 내지 않는 일이 당연하게 되었다. 이후에 20원을 받게 되면서 손님들과 엄청난 갈등이 있었고, 싸움도 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손님과 싸우면 무조건 스스로만 손해 보기 때문에 최대한 손님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하지만 그 상황은 대부분 후에 독이 된다.

컵라면 2개사고 젓가락 20개를 달라고하는 손님들이 있다. 처음엔 젓가락이 여유로워서 줬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젓가락을 달라고 하기 시작한다. 화투를 치기 위해 천원짜리 오백원짜리를 엄청난 규모로 바꾸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도 한번 바꿔주기 시작하면 5만원짜리를 들고와서 본격적으로 하우스를 차리려고 하기 때문에 반드시 막아야한다. 이들을 단호하게 커트하지 못하면 결국엔 잔돈이 떨어져서 영업이 중지될 위기에 처하고, 젓가락이 부족해서 손님이랑 대판싸워야할 일이 생긴다. 결국 손해는 내가 본다. 점장은 노동자를 지켜주지 않는다. '왜 너는 그런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느냐'며 비난만 들을 뿐이다.

되도록이면 손님들에게 웃으면서 대하고싶다. 하지만 결국 이 가게에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다. 그 사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들은 가게에 손님이 들어오면 계속 신경이 곤두선다.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면 훔치지는 않는지 감시하고, 인간적으로 해줄 수 있는 요구들을 서운할 정도로 처내야한다. 법도, 고용주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으니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할 수 밖에 없다.

감정노동은 노동자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행위라고 많이들 말하지만 오히려 더 힘든 감정노동은 내 앞에 있는 인간에게 매정할 정도로 차갑게 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 무기력함과 미안함, 죄책감은 조금 힘든 날 억지로 웃어야하는 일과는 또 다르다. 결국 노동자가 진정으로 앞에 있는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고, 친절하게 웃어주기 위해서는 내 노동의 결과로서 내가 불이익을 받지 않는 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난 그런의미에서 감정노동자보호법은 근원적으로 노동자들의 감정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후적으로 일어난 일을 처벌하는 법은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노동자들이 고객과 갈등이 생기는 지점 자체를 줄여나가는 일이 더 필요하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고 했다. 포스기 앞에 노동자들은 곳간이 없으니 인심이 있을리 만무하다. 노동자를 탓하지 말고, 친절을 강요하지 말자. 노동자에게 곳간을 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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