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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Nov 17. 2019

[빌런시리즈 3탄] 성질급한 인간들

'한국인'하면 떠오르는 건 무엇일까. 근면성실?(이건 사실 권리의식이 바닥인거고) 많은 흥? 매운 음식을 잘 먹는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걔 중에 장점으로 부각되는건 일을 빠르게 처리한다는 점이다.

무용담처럼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중동에서 도로 건설을 한다.유럽업체는 3개월이 걸린다고 했는데 한국업체는 2주면 끝낸다고 했다더라. 진짜로 2주만에 끝내서 그 뒤로는 그 동네 도로건설은 한국 업체가 장악했다더라. 이건 문대통령께서 친히 중동이나 다른 나라가서 공식적인 썰로 풀고도 있더라.

공사기간을 줄이려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극단적으로 늘려야하고, 해야할 검사나 점검이 줄어든다. 한국 경제 기적의 화신인 현대 정주영회장이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에 터널공사에서 노동자가 많이 죽어서 작업을 거부했다. 노동자가 죽어가는 현장에 자신이 삽을 들고 나서서 노동자들을 독려해서 사지로 내몰았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이를 기술문제로 치부하기에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수백미터에 달하는 빌딩을 짓는데 노동자들이 수십명씩 죽어나가는 걸 보면 기술과는 무관한 듯 하다. 사람이 죽어도 일을 한다는 입장만이 있을 뿐이다.

무튼, 한국인의 이런 빠릿빠릿을 추구하는 의식은 전 세계에 무슨 자랑처럼 널리널리 퍼진다. 가게에서도 일하다보면 전 세계인에게 물건을 판매하는데 유독 한국인들만 보이는 모습이 있다. 담배하나 구입하고 카드를 받아서 포스기 입력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을 내밀고 다리를 덜덜 떤다. 처음엔 니코틴이 떨어져서 금단 현상이 도진 꼴쵸의 모습인가 했다. 다음에 보니 이런 인간들은 소주를 사나, 도시락을 사나 똑같다. 카드를 내 손에 주기도 시간이 아까운지 버튼도 안 눌렀는데 지혼자 카드 꼽아놓고 계속 다됐냐고 물어본다.

비슷하게 생긴 술이나 음료들은 하나하나 찍는게 원칙이라 봉투를 펼치고 소주나 맥주를 하나하나 찍고 있으면 손발을 달달 떤다. 도저히 못 견디겠으면 포스에 찍지도 않았는데 지 마음대로 물건을 집어넣는 놈도 있다. 더 적극적인 놈은 "이거 그냥 똑같이 생겼는데 한번에 찍으면 안되요?" 라고 친히 지껄이기도 한다. 난 무시하고 "비슷하게 생긴 물건들이 많아서요 손님^^"말한뒤 바코드를 찍는다. 계산이 끝나면 무슨 전쟁나서 대피라도 해야하는 듯 뒤쳐나가는데 그러다가 넘어져서 소주병 깨는 인간도 한 둘이 아니다. 아무리봐도 대피물품으로 소주는 아닌데 말이다.

'성질 좀 급한게 무슨 문제냐' 할 수도 있지만. 이런놈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리듬을 무시한다. 내가 이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음료을 하나하나 찍고, 담배 찍고 카드를 오래 동안 꼽고 있는건 다 이유가 있다. 손님 엿 먹일려고 그러지 않는다. 손님은 최대한 빨리 내보내는게 행복한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나. 급한놈들 소원대로 대강보고 찍고, 카드 꼽자마자 빼면 결제가 안 되기도 하고, 재고가 틀리기도 한다. 그러니 욕먹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그렇게 한다.

누가 봐도 빨리 뛰쳐나가겠다는 신호를 풍기면서 앞에서 다리 떨고 팔휘두르고 있으면 신경이 날카로워 진다. 물건 넣고 있는데 같이 물건으로 손이 들어와서 부딪히고 세워 놓은 소주가 무너지면 화가난다.

성격이 정말 급한데 그걸 온몸으로 제어해서 티를 안내는 성인군자면 모를까. 대부분의 인간들은 온몸으로 티를 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계속 불안하게 한다. 급한놈이 상급자면 밑에 사람들은 계속 눈치를 보고 긴장상태에 놓인다. 그러니 실수도 많아지고 사고도 많다. 그러면 그 급한놈은 수습하느라 더 급해진다. 그야말로 악순환.

성질이 급한 놈은 자기 마음의 속도에 맞추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서 타인의 속도와 리듬을 무시한다. (이건 나도 그러지만...) 같이 밥먹는데 혼자 밥 다먹고 입행구고, 앞에서 핸드폰 쳐다보고 있는 놈들이 대표적이다. 앞에 사람이 그러고 있으면 밥먹고 있는 사람은 자기 리듬을 잃고 밥을 빨리먹 게 되고, 많이 넣게 된다. 그래서 체한다. 그러면 먼저 다 먹은놈이 말한다. "누가 잡아가나 뭐그래 빨리먹노 천천히 묵지"

'이봐요. 앞에 앉은 양반이 잡아가려고 해서요..'

여하튼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개인의 리듬을 존중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게 스킨쉽 등에서도 마찬가지라 처음보는데 다짜고짜 어깨동무하거나 하는 인간들도 대게 성격이 급하다. 타인의 리듬, 안전거리 등등을 완전 무시한다. 사회적으로 보면 패악질에 가까운 일들을 많이 한다.

이들은 그래서 자기 속도를 좀 줄이고, 타인과 맞추려는 노력을 하는 재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성격이 급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을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운다. 나도 어릴적부터 밥을 빨리 먹으면 학교에서 상도 주고(진짜 밥빨리 먹는 어린이상이 있었다.) 엄마와 친구들이 칭찬도 해줬다. 항상 가장 빨리 먹고 나만큼 빨리 먹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밥을 빨리 먹는건 내 위장에도 안좋고, 타인과 만나는 일에도 최악인 습관이다.

특히 빠르게 하려는 습관은 남성문화에서는 최고의 능력 중에 하나다. 빠르게 랩을 하고, 빠르게 펜비트를 하고, 제일 먼저 밥을 먹고, 심지어는 욕도 빨리하는게 멋진놈이다. 이런 놈들이 자라서 타인의 속도를 이해하거나, 입장을 이해하는 공감을 할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편의점이나 가게와서 계산할 때는 직원의 리듬을 존중해라. 음식점에서는 직원의 바쁨을 배려해라.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땐 그 사람의 속도와 맞춰라. 이게 안되는 놈은 사회생활이 불가능한거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 불가능하게 만들어야한다. 인간이 들된거다.

feat. 쓰다보니 내 이야기네요. 천천히 한다고 하지만 더 배려하면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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