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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Sep 16. 2019

 '불친절'한 노동자

적절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편의점은 소비자들에게 서비스와 물품을 제공하고 이윤을 챙기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을 하면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법과 통념상 문제 없는 물건들을 준비해야한다. 실제로 편의점 노동은 손님을 상대하면서 물건을 판매하는 일과 물건을 체크하고 진열하는 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있다. 이 중에서 손님을 상대하는 서비스 제공은 흔히 말하는 감정노동이다. 감정노동은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하는 노동'이다. 내 기분이 좋든 나쁘든 손님에게는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야하는 일이 감정노동이다.

편의점 알바가 '불친절'하다는 썰은 이제 하나의 밈이 되었다. 어딜가나 불친절한 편의점 알바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편의점 뿐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며 감정노동을 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불친절'의 딱지를 받는다. 이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뒷감당을 고용주가 해준다는 믿음이 뒷받침 되어야한다.  물건을 깨도 내 책임, 컴플레인이 들어와도 내책 임, 아무도 나의 신분이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은 "잘모르겠어요" 뿐이다. 이러면 소비자는 또 답답하다. '직원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콜센터만 연락만해도 가입할 때는 일사천리이던 일처리가 가입 이외의 서비스를 문의하면 여기 물어봐야하고, 전화를 돌려야하고, 다른 업체에 물어봐야한다. 가입하면 노동자에게 이득이지만, 그외의 전화가 가지는 위험성은 모두 노동자가 감당한다. 그러니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답변을 할 수 밖에 없다. 노동자에게 주인의식이나 책임성 따위를 요구하려면 이 사람들의 처우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어야한다. 내가 사실대로, 소신대로 말해도 다치지 않는 노동조건, 적어도 그것을 보상해주고 책임져주는 고용주가 좋은 서비스 제공의 출발이다.


노동자의 인성이나, 말투 따위를 가리기전에 이 사람들의 신분을 먼저 고려해야한다. 지금 나의 신분만해도 본사에서 가맹을 내준 편의점의 사장 아래에 고용된 파트타이머다. 무엇을 책임질 수 있겠나. 나는 여기 20원짜리 봉투하나 마음대로 줄 권한도 없다. 아무런 권한도 주지 않으면서 책임만 몰빵시키니 '주인 의식'따위가 생길리가 없다. 결국 좋은 서비스의 제공을 위해서 해야할 일은 아침마다 노동자들에게 시키는 예절교육이 아니다. 그 시간과 비용으로 고용을 안정화해주는 일이 가장 첫번째가 되어야한다. 그 다음은 서비스 제공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모두 전가하지 않고 고용주, 회사가 책임지는 제도다. 이 두가지가 갖추어져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은 날이갈 수록 높아져간다. 어떤 인간은 가게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없다고 직원에게 면상에 대고 쌍욕을 했다. 그 뒤로도 찾아와서는 직원을 쫓아다니고 희롱해서 직원이 울고 난리가 났다. 그 인간은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가끔 가게에 와서는 이제는 '하겐다즈'있다고 이제야 말을 듣는다며 딸과 아내 앞에서 자랑질을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비자의 권한이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일어난다. 돈만 내면 사람도 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이 끝도 없이 늘어나고 강해지는 동안, 노동자들은 그 앞에서 끊임없이 무력해졌다. 그나마 정규직이었던 감정노동 서비스직들도 온갖 핑계로 하청 비정규직이 되었다. 최소한의 비빌언덕조차 무너지고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생겼지만, 애초에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고용주에게 자기가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일 자체가 넌센스인 직장도 널리고 널렸다.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이 다수인 서비스업종은 당연히 포함된다.

또한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 = 저임금인 한국사회에서 감정노동자들은 더 오래 일하고, 더 적은 동료와 일한다. 임금이 적으니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회사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노동자의 고용을 줄인다. 노동자의 숫자로 인한 이윤창출이 크지 않은 업종이니 더더욱 사람을 적게 고용한다. 편의점만해도 1인고용이 거의 제도화 되어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진상은 존재한다. 진상을 부릴 때 마다 감옥에 모조리 집어넣지 않는 이상 진상은 등장한다. 그렇다면 임금을 올려서 노동자들이 진상을 비롯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시간 자체를 줄여야한다. 임금을 올리고, 일하는 시간을 나누어야한다. 사람을 더 고용해서 노동하다가 큰 타격을 입으면 교대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한다.  

새벽3시퇴근인데 2시반에 진상할아버지한테 당하면 5시까지 잠도 못자고 멘탈이 흔들린다. 내가 아직 도가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화가나거나 정신적으로 흔들리면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10시간동안 꼼짝없이 혼자 일해야하는 상황에서 봉투값에 분노해서 칼든 할아버지가 가게에 처들어오면 피할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아무리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잠시 쉴 수도 없이 손님을 계속 받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재생산조차 쉽지 않다.

결국엔 감정노동을 비롯하여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요구되는 노동은 줄이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미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의점 밀도를 자랑하고, 자기 집 1층에 있는 편의점 가기도 귀찮아서 편의점 음식까지 배달을 하겠다고 설치는 세상이라 그 뱡향으로 가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미 줄어들기는 커녕 끊임없이 늘어나는 이 서비스 노동들에게 최소한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권한을 주어야한다. 고용을 보장하고, 충분한 재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서 그들에게 '친절'을 요구해야한다. 한국에 난립하는 온갖 서비스 노동의 규율들은 인건비를 줄이고, 회사의 책임을 줄이고 그것을 철저히 노동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물론, 일하는 입장에서 '구조'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진상'도 줄여나가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진상부리는 놈들을 쉽고 빠르게 잡아 넣어야할테고, 개인사적으로는 함부로 타인에게 반말을 한다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하지 말자. 요즘 지하철역사를 가보면 '누군가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지만, 한국은 '가족'이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바글거리기 때문에 문구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당신의 집주인, 당신의 채권자, 당신의 상사의 자녀일 수 있습니다. 미리미리 조심하세요' 로 바꾸자.

노동자에게 '친절'을 요구하지 말자. 우리는 물품을 제때 제공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전달하면 끝이다. 노동자에게 온갖 부당한 사회적 관념을 뒤집어 씌어서 '친절'을 요구하는 폭력을 그만두자. 나는 당신의 자녀도, 노예도 아니다. 자녀여도 노예여도 그러면 안된다. 그러니 '아! 나보다 나이가 어린줄 알고 ㅎㅎ'따위의 변명은 이제 그만하자. 당신은 그냥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가 없는 사람인거다. 그렇게 나이들고 돈떨어지면 주변에 사람떨어져서 고독하게 떠나간다. 부탁드린다. 인간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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