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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May 12. 2020

'불안정' 비정규직 노동자

위태로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

'정규직'이 되어본 적 없는 노동자라 도리어 '비정규직'이 뭐 그리 나쁜지 잘 모른다. 경영학과 자본이 말하는 자유로운 노동의 선택, 효율적인 노동의 분배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가끔씩 비정규직의 설움을 느낄 때가 있다.


노동운동계에서 비정규직 앞에 '불안정'이라는 수식이 꼭 붙는다. 비정규적이지만 불안정하지 않은 일도 있다. 소수의 전문직이나, 전문경영인 같은 직업들. 그 경우에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기 위해서 비정규성을 활용한다. 스케줄을 짜고 스스로 사장이 되어서 1인 자영업을 해서 수익을 얻는다. 성공한 자영업자 혹은 프리랜서.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비정규직 직업들은 '불안정성'에 더 큰 방점이 놓여있다. 그들은 비정규직이라고 불리지만 일하는 주기가 전혀 비정규적이지 않다. 비정규직으로 20년 동안 청소노동자의 이야기, 비정규직으로 20년 동안 일한 경비노동자의 이야기는 흔하다 못해 당연하게 여겨진다.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라서 2년 이상 고용할 경우의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고 있지만, 업체를 바꾸거나 1년 11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재작성하는 방법으로 이들은 20년 동안 정규적으로 일하면서 비정규직으로 남게 된다. 비정규직이지만 정규적인 스케줄로 일을 하는 이들은 그럼 정규직과 무엇이 다를까. 바로 안정성에 있다.

이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일하지만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 해고 스케줄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불안정하다. 그들의 해고는 제도나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 정규직의 지위도 끊임없이 불안정해져서 대기업들도 50줄이 넘어가면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을 고민하는 시대지만 적어도 20년의 근속은 보장받을 수 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20년을 일해도 그다음 해 1년의 근속을 보장받을 수 없다. 자신이 속해있는 하청업체가 사라지거나, 아파트 주민들이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하거나, 사장이 편의점이 아닌 다른 사업으로 전환한다면 당장 다음 달에 노동자는 해고된다. 4대 보험이 가입되어있는 직장이라면 실업급여라도 받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저 자신이 모아놓은 돈들로 먹고살 수밖에 없다. 바로 전달에는 노동자였지만, 그다음 달에는 바로 길거리로 나앉게 되는 삶이 '불안정'비정규직의 삶이다.

이들은 퇴직할 수 없고 오로지 해고될 수 있다. 정규직들은 정년을 채워서 퇴직하거나, 해고되더라도 '퇴직'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가식적인 자율성이라도 보장해주지만 비정규직은 퇴직이 없다. 오로지 해고뿐이다. 이 해고는 가장 가까운 관리자의 입김에 의해서 결정된다. 일의 숙련도나 전문성이 아니라 관리자와의 관계가 해고의 척도가 된다. 관리자와 친하면 남아있고, 갈등이 생기면 해고된다.

오늘은 월급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사장님이 나에게 임금 명세서와 함께 '돈 보냈다'는 톡을 보냈다. 그 뒤에는 유제품 유통기한 꼼꼼하게 챙겨달라는 문장이 따라왔다. 가슴이 덜컹했다. 이전 편의점에서도 빠뜨린 부분에 있어서 점장이 '꾸중'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도 해고되지는 않았지만 두려웠다. 현재 일하는 가게의 사장님의 성격상 그냥 좀 더 신경 써달라는 정도 말이겠지만, 몇 번더 반복된다면 해고가 될지도 모른다. 해고가 될 리가 없다는 위안은 하지만 제도적으로 안정적으로 내 근속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전혀 없다. 사장님의 사장과 기분에 따라서 내 일자리가 너무 쉽게 위협받는다. 노동에 안정성이 없다.

내 마음에 있는 불안에서 비롯된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번 주에 출근했을 때 유통기한 체크하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쓰면 될 일인지도 모른다. '불안정'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란 늘 이런 불안에 노출되어 있다. 내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해고가 될 수 있다. 실수를 딛고 만회해서 성장하고 숙련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일의 불안정성은 결국 노동의 탈숙련화, 비숙련화된 노동을 양산한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숙련할 시간도 기회도 없이 해고당한다. 가게가 어렵다고, 실수를 한다고, 싹싹하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너무 쉽게 잘려나간다.

나는 11월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 제대를 하고서도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 나는 편의점 일이 좋고, 이 가게가 좋다. 조건도 좋고, 보람차다. 하지만 안정적이지 않아서 늘 이직과 다른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편의점 노동 같은 불안정한 '알바 노동'이 무시당하는 건 이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일터에서 숙련과 전문성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없다. 다음 달의 근속조차 예측할 수 없는 공간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늘 고민이다.

나는 과연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44659.html

추신. 얼마 전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경비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했다. 아파트 입주민이 그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고, 허위 진단서로 그에게 누명을 씌웠다.  그는 꾹꾹 눌러쓴 유서에서 자신은 억울하다고 쓰고 삶을 등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은 발뺌만 하고 있다. 그 가해자가 인간쓰레기여서 노동자를 함부로 대한 것이 크다. 하지만 그는 그가 근무하는 회사나 대기업 회장에게도 똑같이 무례하게 대하고 폭행하지 않는다. 경비노동자는 때리고 욕해도 되니까 그렇게 한다. 노동자를 '머슴'취급해도 저항하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으니까. 법이 그렇고, 세상이 그렇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고, 경비 관리직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든 노동조합이든 강제성을 가진 힘이 생겨나길 바란다.


'임계장'이라는 책을 쓴 60대 노동자는 자신은 몸이 허락하면 계속 노동하고 싶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노동에 조건을 건다. '존엄하게 대우받는 노동'을 평생 하고 싶다고 말한다. 노동자가 존엄하게 대우받고, 권리를 보장해준다면 노동자들은 그 안에서 분명 창의성을 발휘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나도 몸이 움직이는 한 계속 노동을 하고 싶다. '임계장'의 저자가 제시한 조건에도 동의한다. 난 존엄하게 대우받는 노동을 평생 하고 싶다. 내 꿈이다. 난 내 노동과 삶이 존중받길 원한다.


https://youtu.be/fILPDff8X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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