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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May 26. 2020

<망한 가게 사장>

일하다가 만난 망해버린 호프집 사장. 

<망한 가게 사장>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었다. 주 3일 노동의 마지막 새벽. 여느 때처럼 들뜬 마음으로 마감을 준비했다. ‘띵동’ 모자를 쓴 남성이 가게로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담배겠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담배  쪽을 돌아봤다. 남성의 입에서 나온 건 ‘에쎄.. 말보루..’로 시작되는 담배 이름이 아니었다. 


“여기서 출발하는 심야버스 막차가 끝났나요?”


신선했다. 심야버스라니. 하단으로 통학하던 때에 어떻게든 집에 돌아가기 위해 하단에서 12시에 출발하는 심야버스를 탔었다. 새벽에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이란 편하지 않다. 막차가 끊기지는 않았을지, 집에는 온전히 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 지갑에 찜질방 가기에도 넉넉지 않은 돈뿐이라면 더더욱. 


“아.. 음.. 잠시만요. 알아볼게요." 


“아.. 아.. 정말 감사합니다.”


카카오맵으로 버스정류장을 검색했지만, 심야버스는 없었다. 끊겼거나, 노선이 사라졌거나 둘 중 하나인듯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그제서야 남자를 자세히 봤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였다. 외모로 나이를 판단하는 건 무례하지만, 사회의 때라는 것이 껴있는지라 나도 모르게 나이를 가늠하게 된다. 꼬장꼬장한 파란색 모자, 파란색 티셔츠, 검은색 트레이닝복 바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죄송한데.. 심야버스가 끊긴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아 끊겼구나..”


남자는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가득했다. 허탈함도 엿보였다. 헐떡이며 지쳐 보이는 그에게 직원용 생수를 한 모금 권했다. 


“이거라도 한잔 드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 물을 마셨다. 궁금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새벽 1시에 심야버스를 타러 뛰어오고 있었을까. 보통 사람들은 이 시간에 이동을 해야 한다면 택시를 부를 텐데 말이다. 그는 아마 택시를 부를 수 없는 경제적 상황에 놓인 듯했다. 그는 갑작스레 말을 꺼냈다.


“이 주변이 많이 바뀌었네요..”


“아 그렇죠. 이 주변이 워낙 공사도 많이 하고 해서 풍경이 자주 바뀌어요.”


“정말 그렇네요.. “


“제가 2년 전에 이 근처에서 노가다를 했었거든요. 저기 저 뒤 장산역 근처 오피스텔 공사장에서 일했어요. 그때랑 풍경이 정말 많이 바뀌었네요.”


“아.. 네..”


“제가 원래 하단 근처.. 그 동아대학교 앞에서 장사를 했어요. 집도 그 엄궁이었고..”


“아 저 하단에서 학교를 다녀서 좀 알아요. 동아대학교 졸업했거든요.”


남자의 표정이 내 말에 급작스레 밝아졌다.


“아! 그렇구나. 저 그 동아대학교 앞에서 호프집을 했었어요. 그.. 완전 번화가는 아니고, 1번가 쪽에.. 혹시 알아요?”


“아.. 그렇구나.. 근데 제가 술을 안 마셔가지고.. 호프집은 잘 모르겠네요…”


“아아.. 그렇죠 그렇죠. 술을 안 마시면 호프집을 알긴 힘들죠. 거기서 장사하다가 망해가지고 울산에 한동안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여기서 막노동했었고요.. 예전에 일했던 곳이 남아있나 싶어서 이 근처에 와봤는데 전부 사라지고 없더라고요.."


“아이고.. 그렇군요..”


“어디 잘 곳도 없고, 돈도 딱 8천 원 밖에 안 남아 가지고요.. 이거 가지고 찜질방이라도 가려고 했는데, 이 주변에는 이 돈으로 안되더라고요.. 되더라도 금방 나가야 해서..”


“요즘 8천 원짜리 찜질방이 잘 없을 텐데요…피시방 같은데 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


“피시방도 8천 원 가지고는 좀 어려워요. 제가 이 돈으로 3일 정도는 머물러야 하거든요.. 아 그래서 정말 죄송한데 현금 조금 있으면 조금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꼭 갚을게요.."


나한테 돈을 빌리기 위해 이리 빙빙 돌아왔던 것일까. 잠시 망설였다. 달말이라 생활비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한 푼이 아쉬운 나에게 5천 원은 작은 돈이 아니었다.  


“아 죄송한데.. 제가 현금을 안 가지고 다녀가지고요.. 죄송합니다.."


“아.. 그렇죠.. 요즘 현금 잘 안 쓰더라고요.."


“아.. 그럼 어디를 가야 되지..”


양심에 좀 찔렸다. 8천 원으로 3일을 버텨야 하는 사람 앞에서 생활비 걱정을 하고 있는 내가 좀 나쁜 놈 같았다. 부랴부랴 현금 지갑을 꺼냈다. 지갑엔 5천 원짜리 1장, 천 원짜리 1장이 있었다. 5천 원을 꺼내서 그에게 주었다.


“이거라도 가지고 가셔서 찜질방에서 주무세요..”


“아아.. 진짜 괜찮은데.. 제가 꼭 갚을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그..  번호라도 알려주시면 토스로 보내드릴게요.."


“아 진짜 괜찮아요. 그냥 편하게 쓰세요.”


“저 진짜 거지 아니거든요. 저보다 10살은 어린 사람한테 돈 받는 거 진짜 자존심 상하고 창피한데.. 진짜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핸드폰도 팔아버려서 당장 번호는 없고. 번호 적어주시면 꼭 토스로 보내드릴게요."


메모지를 꺼내서 번호를 적어서 그에게 전해줬다. 그는 이내 자리를 정리하고 가게를 나설 준비를 했다. 


“제가 꼭 토스로 보내드릴게요. 토스로 3만 원으로 보내드릴 테니까. 꼭 받으세요. 정말 감사해요.”


“네네. 조심해서 가세요.”


번호를 적어주면서도 내 번호를 어디 악용하지 않을까 고민을 했다.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절박한 가난은 사람을 무엇이든 하게 만드니까. 특별한 신념이 없고,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인간은 절박한 순간에 쉽게 악행을 꿈꾼다. 요즘 세상에 핸드폰 번호 가지고 뭘 하겠나 싶어서 이내 신경을 껐다. 


5천 원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5천 원이면 단골 카페 레모네이드 한 잔인데, 음료 마시는 것보다는 기분 좋았다. 기쁨이 끝나고 나니 궁금했다. 그는 어쩌다 여기 와서 8천 원으로 3일을 버텨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내 어찌 그 사정과 기분을 다 알겠냐만. 내 경험에 빗대어서 보면 참 절망스러울 듯했다. 이전에 아빠의 칼부림이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지 않던 나날이 반복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은 나에게 정말 큰 절망을 안겨주었다. 돈이 없어서 새벽까지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고, 어떤 날은 24시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힘들고 지쳐도 집에 들어가는 일보단 나았다. 


그도 어쩌면 갈 곳은 있으나, 도저히 갈 수 없어서 발걸음을 돌리는 길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집은 있으나 그곳에 들어갈 자신도 떳떳함도 없는 상황. 공간으로서 집도 필요하지만, 그 집에 들어가서 '내 집'이라고 자부할 만큼 자신에게 떳떳하기가 더 어렵다. 


내가 다녔던 학교 앞에서 호프집을 하다 망한 전직 사장이라 하니 가슴이 찡했다. 망한 자영업자의 미래란 그의 말처럼 ‘창피한 것’이다. 이 와중에도 사업은 쉽게 안 해야지라고 다짐하는 내 마음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5천 원을 건네준 내 손은 칭찬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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