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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Sep 07. 2020

3. 피하지 않는 고양이

#90일간의글쓰기대장정 #그냥쓰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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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획되고 획일화된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아서, 가끔 퇴근 코스를 바꾼다. 직진만 하면 집에 갈 수 있지만 괜히 동네를 빙빙 돌아서 귀가한다. 새로 발견한 길을 어슬렁거리다가 고양이들을 만났다. 한 마리는 도로 중앙선 위에, 두 마리는 건너편에 마지막 한 마리는 내가 걸어갈 경로 중간에. 중앙선에 있는 고양이가 움직이지도 않고 있길래 사고라도 날까 싶어서 살짝 다가갔다. 다행히 고양이는 후다닥 길을 건너서 피했다. 

고양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다가 내 앞에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내가 꽤 가까이 접근했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의아했다. 동네 길 야옹이들은 일정 거리에 사람이 들어오기만 해도 후다닥 사라지거나, 소리를 내며 울기 마련이다.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를 좋아해서 그러나 싶어서 잠시 지켜봤지만, 노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듯하여 마음을 접었다. 걱정과 불안이 DNA에 새겨진 인간이라 더 깊은 걱정으로 파고들었다. 녀석이 나를 피하고 싶지만, 사고가 나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노려보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까 중앙선에 있던 녀석을 보니 아주 없을 만한 일도 아닌 듯했다. 녀석 다리나 꼬리 주변을 유심히 봤지만 짓눌려있거나 피를 흘린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안심하고 걸어가다 문뜩 든 생각. 녀석이 그 동네에서 제일 강한 야옹이가 아닐까. 가장 강한 녀석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 법. 나머지 고양이들이 녀석이 있는 곳 건너편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인 거다.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집에 오는 길 녀석 덕분에 심심하지는 않았다. 부디 그 야옹이들도, 나도 평온한 밤이 되길.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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