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 Sep 07. 2020

4. 노가다

#90일간의글쓰기대장정 #노가다  #그냥쓰기


-

이전에 활동했던 정당의 간부가 모종의 이유로 사퇴를 했다. 나와 아주 관련이 깊은 이유였기에 내심 기뻐했다. 그 뒤로 쭉 얼굴 볼 일이 없었다. 어쩌다 소식을 전해 들었다. '노가다'를 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옳다구나 했다. 그 간부 인생의 현주소가 '노가다'라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만족스러운 '처벌'이었다. 땀이 흐르고 흘러 몸에 찌드는 것. 그 냄새가 새겨지는 것이 내가 느꼈던 분노에 대한 대가라고 너무 자연스레 믿었다.

내 아빠도 꽤 오래 '노가다'를 했다. 건설 현장에서 벽돌을 옮길 땐 '노가다꾼'. 공공근로를 할 때는 '이 씨'. 엄마가 일하는 가게에서 밤새 경비 노동을 할 때는 '상민 씨' 정도로 불렸지만. 본질은 '노가다꾼'이었다. 처음 아빠가 노가다를 하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뻤다. 아빠가 노동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벌어온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돈에 허덕이며 창피하고 부끄러워야만 했던 나에게 큰 희소식이었다. 실은 아빠 탓으로 날려버린 것도 아닌 아빠의 전 재산. 그것을 모두 잃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 그중에서도 육체노동. 그 노동은 나에게 '형벌'이 되어있었다. 그건 나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별로 인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나도 얼떨결에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 순간 편의점 따위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20대 초반을, 대학생 시절을 성실히 살아내지 않은 벌을 받고 있다고, 내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열심히 살고, 성실히 살았으면 '노가다'가 아니라 머리를 쓰고,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어야 하니까. 내 머릿속에 노동은 형벌, 죄악, 처벌 뭐 그런 것이었다.

군대에 다녀와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하다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거나, 쿠팡맨이 될지도 모르는 생각을 할 때면 아찔하다. 육체노동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노동자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고, 사측을 규탄하는 싸움도 했지만. 우리 편의점에 오는 경비 노동자분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쓰지만. 결국은 내가 그들처럼 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에. 베풀 수 있는 친절이 있을 뿐. 내가 더 좋은 조건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일이다. 참혹할 만큼.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노동 자체를 혐오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노동자는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지만, 내가 노동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늘 스스로를 '활동가'로 분리시키고 살았었다. 그들과는 다르니까. 노숙인을 도와주고는 싶지만 노숙인이 되고 싶지는 않은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육체노동을 하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일은 불안정하다. 5천이 넘는 연봉,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하는 연금, 따뜻한 내 명의의 집. 그런 것들. 흔히 말하는 안락한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디 숨겨진 선산이라도 발견되지 않는 한. 그것은 노동자의 탓이 아니다. 사회가 그들의 노동을 저 평가하고, 불안정한 처지에 몰아놓고 있을 따름이다. 

불안정한 삶이 두려워 떨고 있는 내 마음을 노동하는 사람, 노동 전반에 대한 혐오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비겁한 일이고, 정확한 표현도 아니다. 노동자는 누구도 잘못을 해서 처벌받고 있지 않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저 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3. 피하지 않는 고양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